서열 밀린 우두머리 사자, 급격히 축 쳐지는 이유?

지위 상실, '실망의 중심' 활성화-급성 우울증... "과한 경쟁심, 우울증 예방·치료 악영향"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무리에서 제왕 행세를 하던 우두머리 사자나 호랑이가 젊은 도전자에게 패한 후 급격히 힘과 정력을 잃고 노쇠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는 뇌 속의 특정한 매커니즘과도 연관했을 수 있다는 통찰이 나왔다. 향후 우울증 예방과 치료에 적용할 수도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무리에서 제왕 행세를 하던 우두머리 사자나 호랑이가 젊은 도전자에게 패한 후 급격히 힘과 정력을 잃고 노쇠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단순히 나이가 많이 들어서 급격한 노화가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상실이 급성 우울증을 초래한 탓이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도 갱년기나 노년 등의 남성이 겪는 우울증과도 연관이 있다.

이런 과정이 단순히 사회성의 문제를 넘어 뇌 속의 특정한 매커니즘과도 연관했을 수 있다는 통찰이 나왔다. 《셀》에 발표된 중국 저장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27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을 통해 이 과정을 관찰했다. 두목 생쥐가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생쥐에게 무시당하면 우울증에 빠진다. 이 때 연구진은 쥐 뇌의 시상상부와 뇌줄기가 만나는 부위에 위치한 ‘측면 하베눌라(LHb)’가 활성화한다는 것을 규명했다.

◆서열 밀린 두목 쥐, 활동 포기… ‘실망의 중심’ LHb 활성화 관측

저장대 의대 신경과학과 후하이란(胡海岚)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런 두목 쥐가 서열이 낮은 쥐에게 도전을 받게 됐을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두목 쥐가 하루에 열 번 씩 4일간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쥐의 도전을 받게 했다. 옆으로 빠져나갈 통로를 차단한 비좁은 튜브 안에서 서열 낮은 쥐와 맞대면하게 만들었다.

두 마리의 수컷 생쥐가 좁은 공간에서 만났을 때 발생하는 단순한 교전원칙을 활용했다. 원칙은서열이 낮은 생쥐가 양보하는 것이다. 야생에서건 실험실에서건 생쥐 무리는 뚜렷한 서열구조를 형성한다. 특히 실험실 상황에선 서열이 가장 높은 수컷들의 독재 시스템이 구축된다. 한 마리 또는 소수로 이뤄진 두목 쥐(알파 쥐)는 먹이와 암컷에 대해 특권을 누린다. 일반 쥐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소변을 볼 수 있는 반면 두목 쥐들은 아무 데서나 오줌을 싼다.

연구진의 실험에서 두목 쥐가 서열 싸움에서 밀리는 모습 [자료=《Cell》, ‘Neural mechanism underlying depressive-like state associated with social status loss’]
연구진의 실험에서 두목 쥐가 서열 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위)과 뇌의 LHb 활성화 정도. [자료=《Cell》, ‘Neural mechanism underlying depressive-like state associated with social status loss’]
두목 쥐들은 처음엔 서열이 낮은 쥐에 맞서면서 자신의 자리를 고수했다. 그러나 4일째가 되자 뒤로 물러서게 됐다. 그와 더불어 두목 쥐의 사회적 지위도 떨어져 구석에 위치한 따뜻한 둥지를 독차지하던 것을 포함한 VIP 특권을 상실했다.

이렇게 생쥐들의 사회질서가 격변을 일으키자 한때 지배적이던 두목 쥐들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설탕물에 대한 갈망이 줄었다. 또 물탱크에 쥐를 떨어뜨리고 생존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발장구 치는지를 지켜보는 ‘설치류 절망 실험’에서도 더 일찍 헤엄치기를 포기하는 것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이런 두목 쥐의 뇌에서 발생한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섬유광도계(fiber photometry)라는 기술을 적용했다. 활성화될 때마다 형광 단백질을 발현하도록 유전자 변형이 이뤄진 신경세포가 형광 빛을 발할 때마다 이를 감지할 수 있는 광섬유를 쥐의 뇌에 이식했다. 연구진은 또한 특정 신경세포에 빛을 비춰 그 신경세포의 활성화를 촉진하거나 잠잠하게 만들 수 있었다.

연구진은 특히 측면 하베눌라(LHb)를 집중 관찰했다. 지름 3㎜의 작은 기관이지만 삶이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가장 활성화된다 하여 ‘실망의 중심’으로 불린다. 직장에서 좌절감을 맛보거나 냉동실에 숨겨둔 아이스크림을 누군가 빼먹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활성화되는 기관이다.

두목 쥐가 서열싸움에 밀리면서 보이는 행동 방식과 그 사이에서 의LHb 활성화 정도. [자료=《Cell》, ‘Neural mechanism underlying depressive-like state associated with social status loss’]

◆ “승리 향한 과도한 경쟁심이 우울증 예방·치료 악영향”

연구진은 두목 쥐가 좁은 튜브 안에서 서열 낮은 쥐에게 밀렸을 때 그들의 LHb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인간의 우울증에서 볼 수 있는 패턴과 유사하게 폭발 패턴으로 빠르게 발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빛으로 이 신경활동을 잠잠하게 만들거나 항우울제인 케타민을 투약하는 경우 해당 쥐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관찰됐다. 심지어 그들은 예전의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는 것도 관찰됐다.

이러한 결과는 우울증 치료가 악순환의 중단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고 후 교수는 밝혔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가 LHb의 신경세포를 광란으로 몰아넣는다. 이어 LHb는 의사 결정 및 감정 제어와 관련된 신경경로를 차단해 우리의 근성을 약화시키고 우리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좌절감과 실패가 증가하면 LHb는 더욱 활성화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울증과 비슷한 주기를 보이게 된다고 후 교수는 설명했다.

논문을 검토한 미국 스탠포드대 나이르 에셸 교수(신경과학)는 이 연구의 접근법이 “똑똑하고 강력하다”면서 후 교수의 가설 또한 직관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그 결과를 인간읭 우울증에 적용하는 것에선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이번 실험은 암컷이 아닌 수컷에게만 효과를 보였다. 여성의 사회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에 대한 설치류 유사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여성이 우울증 진단을 받을 확률이 두 배나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암컷 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데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후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가 인간에게도 잠재적 도움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항상 이기는 데 너무 익숙해지지 않도록 노력하세요.” 기대치가 높을수록 더 세차게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22)01576-8?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0092867422015768%3Fshowall%3Dtrue)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가 인간에게도 잠재적 도움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항상 이기는 데 너무 익숙해지지 않도록 노력하세요.” 기대치가 높을수록 더 세차게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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