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암 진단 이후.. ‘부부’란?

[김용의 헬스앤]

부부는 애증이 교차하는 사이지만, 한 사람이 큰 병에 걸리면 가장 절실한 존재가 된다. [사진=게티이미지]

“평생 표현을 않던 남편이 ‘고맙다’, ‘당신밖에 없다’는 말을 하더군요…”

50대 주부 A 씨는 대장암 투병으로 부쩍 쇠약해진 남편을 보면 짠한 느낌이 든다. 가부장적인 성격의 남편은 평생 직장 일을 핑계로 바깥을 떠돌았다. 집안 일과 자녀 교육은 오롯이 A 씨의 몫이었다. 남편은 A 씨에게 살갑게 대한 적이 거의 없다. 무뚝뚝한 남편의 전형이었다.

집에서 ‘강한’ 척만 하던 남편이 몇 개월 전 대장암(3기) 진단을 받았다. 혈변이 나타나도 가벼운 치질로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남편이 화장실을 나오며 툭 내뱉었다. “피가 자주 나오네..” 평소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던 A 씨가 정색을 하고 “병원에 가자”고 했다. 매일 밤 늦게까지 고기·술 회식에, 바쁘다는 핑계로 건강검진을 건너뛴 게 화근이었다.

갑자기 ‘암 통보’를 받으면 대부분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한다. ‘강한’ 남자도 마찬가지다. 급속하게 약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럴 때 누굴 가장 먼저 찾을까? 건강할 때는 데면데면 대했던 아내의 존재감이 커진다. 의사와 면담할 때도 부부가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집안 대소사조차 상의 않던 남편이 병세에 대해 의논한다. “얘들한테 언제 알릴까?” 아내의 의향부터 물어본다. 이제부턴 집안의 ‘선장’은 아내다. ‘암’이라는 거친 풍랑을 헤치고 나갈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

오랫동안 ‘싱글 라이프’를 즐기던 사람이 가장 힘들 때가 몸이 아플 때라고 한다. 더욱이 암이라는 큰 병까지 얻으면 ‘옆지기’가 절실하다. 나이든 노모나 형제, 자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한계가 있다. 간병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병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상의할 상대가 없다.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서 다 해야 한다. 평생 독신주의를 강조하던 사람도 암에 걸리면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부가 ‘암’이라는 거센 풍랑을 만나면 건강한 배우자도 흔들릴 수 있다. 병든 배우자를 지켜보며 본인도 심신이 고단해진다. 무엇보다 병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큰 문제다. 최근 국제학술지 미국 의사협회 저널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남편 또는 아내가 암 진단을 받으면 배우자도 정신장애(우울증 등)가 생길 위험이 높다는 논문이 실렸다. 약 350만 명(평균연령 60세)의 의무기록을 분석해 평균 8.4년 간 추적 관찰한 대규모 연구결과다.

특히 암 환자의 배우자는 암 진단 첫해에 우울증, 약물 남용, 불안장애 등 정신장애를 겪을 위험이 30%였다. 치료가 어려운 췌장암 진단을 받은 사람의 배우자는 정신장애 위험이 41%,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의 배우자는 31%였다. 환자가 사망하면 배우자는 정신장애 위험이 29%였다. 특히 아내가 암으로 사망한 경우 남편이 정신장애에 빠질 위험이 48%로 치솟았다.

암 환자는 수시로 마음이 요동친다. 암도 문제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몸을 갉아 먹는다. “암을 이기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다가도 이내 의기소침해진다. 힘들게 곁을 지키는 배우자에게 괜한 짜증을 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환자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장기간 계속되면 배우자의 심신도 지쳐간다. 배우자는 ‘마음 간병’이 더 힘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환자, 배우자 모두 우울증을 얻어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한국인이 80대까지 살 경우 10명 중 4명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발표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남자가 기대수명(80.5세)까지 생존하면 39.0%가 암에 걸릴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여자(86.5세)는 33.9%였다. 오래 살수록 그만큼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평생 ‘강한’ 남자를 자처했던 남편이 아내가 암으로 사망하면 무려 48%가 정신장애를 겪을 위험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흥미롭다. 아내는 29%이니 여자보다 약한 존재가 남자인 셈이다. 암뿐만 아니라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편이 시름시름 앓을 확률이 높다는 조사결과가 많다.

부부는 평생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교차하는 사이다. 수십 년 동안 살을 맞댄 배우자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중년, 노년의 부부는 옆지기의 존재가 더욱 절실하다. 남편 또는 아내가 갑자기 암 진단을 받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 간병’ 시기가 앞당겨져 ‘중-중 간병’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마워”, “당신밖에 없어…” 건강할 땐 표현에 인색했던 남편은 본인이 가장 힘든 순간 비로소 아내에게 ‘표현’을 했다. 부부는 그런 사이일까? 부부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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