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에 ‘선 긋기’가 중요한 이유

[박문일의 생명여행] (48)휴식을 넘어서 치유로서의 경계 설정

직장과 일상의 경계선을 지킬 때 건강한 삶을 일궈갈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학교 재직 때 잠시 교환교수로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길지 않은 외국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은 우리와 많은 점에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것이었다. 동서양 문화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자신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하여 대단히 민감하다. 건강과 관련된 그들의 프라이버시 개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의대 연구실에 인도 출신 연구원이 있었다. 그와 친해져 이것저것 실험실 실무에 관련된 조언을 받던 중 하루는 메모지를 건넸다. 거기에는 자신의 일주일 간 일정이 요약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자신이 쉬는 시간을 빨간 글씨로 강조한 것이었는데, ‘Rest’가 아니라 ‘Healing’으로 표시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Rest는 휴식이고 healing은 치유의 뜻이 아닌가. 또한 그 시간에는 전화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곁들인다. 이것이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쉬는 시간이 방해받지 않도록 경계를 설정한 것이다. 할 일 목록 중에 휴식시간을 빨간 글씨로 강조하여 표시하고, 미리 자신의 친구들은 물론, 같이 근무하는 연구원들에게 알려주어 방해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피로로부터의 치유(healing) 시간임을 명백히 알려준 것이다.

이것을 외국 사람들은 경계설정(Boundary setting)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셋팅은 이웃 사이의 울타리처럼 자신의 개인적 또는 정신적 공간을 보호해 준다. 그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행동의 신체적, 정서적 한계에 대해 어린 시절의 가족관계에서부터 이런 경계를 배운다. 연구에 따르면, 건강하고 유연한 경계를 가진 가족에선 각 구성원이 고유한 관심과 기술을 가진 별개의 개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웰빙, 자제력 및 자존감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가족 간의 경계에는 다음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명확한 경계를 가진 가족은 더 잘 기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며, 물론 경우에 따라 세 가지 주요 유형 사이를 이동할 수 있다.

– 명확한 경계 : 경계가 명확하게 명시되고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 가족 내에는 따뜻함, 지원 및 안정성이 있지만 각 구성원은 독립적이고 자신의 필요를 전달하며 개인의 관심사를 개발할 수 있다.

– 경직된 경계 : 경직된 경계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고, 열리지 않는 벽처럼 닫혀 있어 유연하지 않다. 가족 내와 외부 세계 모두에서 참여가 적고 고립이 더 많다. 가족 구성원이 필요 사항을 전달하고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 열린 경계 : 열린 경계는 명확하지 않으며 흐릿하거나 느슨할 수도 있다. 가족 개개인이 자신의 필요 사항을 충족시키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상호 의존성 특성이 있다.

경계는 또한 ‘건강한’ 경계와 ‘건강에 해로운’ 경계로 구분될 수 있다.

‘건강한 경계’는 가족의 각 구성원이 서로 자신의 필요사항을 전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필요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한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아니오”라고 말할 때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욕구와 필요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으며, 자신의 필요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동시에 존중한다. 다른 사람의 가치, 신념 및 의견이 자신과 다르더라도 존중하며 융통성이 있을 수 있지만 건강에 해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타협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경계이다.

‘건강에 해로운 경계’가 있는 곳에서는 정상적인 관계가 손상된다. 따라서 사람들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는 역기능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아니오”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따라서 자신의 필요와 욕구가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개인적인 가치, 신념 및 의견을 쉽게 타협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조종하는 행위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건강에 해로운 경계는 빠르게 학대로 바뀔 수 있다. 신체적, 성적, 정서적 학대가 그것이다. 어렸을 때 학대당한 사람들은 건강한 경계를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은 종종 개인적, 물리적 경계를 통제하지 못하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경계는 사람의 삶에서 정지 신호로 생각할 수 있다. 정지 표지판을 배치하는 위치와 선을 넘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항들은 주위사람들의 신념, 가치관, 문화적 관습 및 가족 전통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경계를 설정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명확하고도 단순한 목표설정이다. 그리고 경계영역은 작게 시작해야 한다.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핵심은 작게 시작하여 한 번에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한계를 설정하면 삶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 우선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곤한 상태인 번아웃(burnout)을 방지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일을 하면 누구나 번아웃하게 된다. 육체적으로 견디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경계를 설정하면 우선 육체적인 번아웃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일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면 서서히 화가나고 이윽고 분개하기 십상이다. 분개가 쌓이면 분노감정으로 치닫게 된다. 따라서 경계를 설정하면 정신적 번아웃도 방지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경계설정은 건강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직장에 너무 오랜시간 있게 된다면 그것은 건강하지 못한 경계이다.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더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 주변과 자신과의 건강한경계를 설정하면 더 많은 균형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일이다.

새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시작돼야 하겠다. 우선 자신의 건강을 지킬수 있는 경계를 설정해 보기를 권한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건강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무너져서는 안되겠다. 자신의 경계선은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남긴 유명한 어록이 있다. ‘전투에 패한 지휘관은 용서할수 있어도 경계를 못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경계하지 못한다면 아무도 자신의 건강을 지켜주지 못한다. 건강을 지킴에 있어서 경계설정은 단순한 휴식(rest)이 아니라 치유(healing)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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