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아들의 굴레, 우장춘의 인고는 궤양으로 남았다
[허두영의 위대한 투병]
아버지가 죽었을 때 우장춘은 5살이었다. 생계가 막막한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나카(酒井なか)는 가사도우미로 일하기 위해 두 아들을 고아원에 맡겨야 했다. 조선 말을 배우거나 김치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이 일본인처럼 살았다. 도쿄제국대학에 다닐 때 친했던 조선 유학생 김철수에게서 아버지의 엄청난 범죄를 처음 들었을 때, 그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당시 조선인으로 우장춘(禹長春)이 할 수 있는 것은 성(姓)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일본 아내 와타나베 코하루(渡辺小春)와 결혼할 때도 꿋꿋했다. 조선인 사위를 반대하자 오히려 아내가 친정을 버리고 따라 나왔다. 조선인으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그를 후원하던 일본인이 데릴사위로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장춘은 끝까지 ‘단양 우씨’를 고집했다.
1935년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이을 만큼 대단한 논문, ‘배추속(Brassica)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을 발표했다. 다윈이 ‘종의 진화’를 설명했다면, 우장춘은 ‘종의 탄생’을 밝힌 것이다. 이 논문에서 우장춘은 유채(油菜)가 배추와 양배추의 자연교배로 태어난 잡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논문의 저자는 영어로 ‘Nagaharu U’였고, 그가 제시한 ‘종의 합성’ 모델은 ‘우의 삼각형’(U’s Triangle)이라 불린다.
일제강점기에, 그것도 일본에서 ‘조센징’(朝鮮人)으로 살려면 귀도 닫고 입도 닫고 얼마나 참아야 했을까? 어릴 때 고아원에서 따돌림 당하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짓밟혀도 끝내 꽃피우는 길가의 민들레’를 보여줬다. 하도 무뚝뚝한 아들의 얼굴이나 성격 때문에 ‘불독’이라는 별명까지 얻자, 어머니는 친구들과 어울리라고 하루 한 잔씩 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참고 참던 증세는 결국 위와 십이지장에 깊이 숨어있던 궤양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당뇨까지 겹쳤다. 1959년 수술을 3번이나 받았지만, 병세는 돌이킬 수 없었다. 한 해 2번 수확할 수 있는 벼를 개발하기 위해 병상에서 봉지에 담은 싹을 관찰하던 그였다. 임종하기 전에, 이기작(二期作) 벼를 보지 못하고 먼저 죽게 됐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십이지장 궤양] Duodenal Ulcer. 十二指腸 潰瘍
십이지장의 점막이 염증으로 상해 움푹하게 패인 상태다. 밥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나 가슴뼈 아래 명치 쪽이 아프며, 장에 피가 새어 나와 검은 똥이 나올 수 있다. 헬리코박터 균이나 흡연으로 점막에 생긴 상처가 점막 아래까지 깊어져 생긴다. 저절로 낫기도 하지만 쉽게 재발하며, 심해지면 십이지장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