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말은 절대선인가?

[박문일의 생명여행] (43)‘First, Do no harm’의 의미와 한계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말은 절대선인가?
‘해를 끼치지 말라’는 과연 진료실에서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원칙이어야 할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행위에서 “해(害)를 끼치지 말라”가 먼저일까? 아니면 “선(善)을 행하라”가 먼저일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은 환자에게 피해가 예상되는 진료를 피하라는 것이고, “선을 행하라”는 것은 피해가 예상되더라도 더 큰 이익이 있다면 우선 진료를 하라는 것이다.

의사들이라면 의대 의료윤리학 시간에 배웠던 라틴어 ‘프리뭄 논 노체레’(Primum non nocere)`라는 문장이 생각날 것이다. 이 문장은 그리스어로 이루어진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중의 ‘나는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온전한 ‘Primum non nocere’라는 문장은 미국 예일대 의대 교수였던 워딩턴 후커(Worthington Hooker)가 1847년 그의 저서 《의사와 환자 (Physician and Patient)》에서 처음 소개했다. 영어로는 ‘First, Do no harm’이며, 우리말로는 ‘우선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면서 사회에 갓 나온 초보 의사들의 선택은 ‘해를 끼치지 말라’가 먼저일 것이다.

‘해를 끼치지 말라’는 과연 진료실에서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원칙이어야 할까? 필자는 가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해를 끼치지 말라’는 원칙은 문제가 없지 않다. 이에 따르면 환자가 처한 환경 또는 질환에서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지 않거나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를 끼치지 말라’는 원칙은 의료진으로 하여금 진료 시 자신의 개입이 미칠 수 있는 환자에 대한 피해를 우선 상기시킨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그 진료행위가 이익이 예상되지만 해를 끼칠 위험도 있을 때, 대부분의 의사들은 ‘해를 끼치지 말라’라는 문장을 호출하며 진료행위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해를 끼치지 말라’는 언명은 의사들이 무의식적으로 이해하게 된 히포크라테스 선서내용이다. 의사의 진료실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진료행위는 양날의 칼이다. 모든 치료법은 잠재적인 해가 있을 수 있으며, 의사는 환자에게 왜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지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의사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텍사스에서 가정의학 진료를 하고 있는 케네스 레크로이(Kenneth Lecroy)는 《미국가정의사학회지(AFP·American Family Physician)》 편집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오늘날의 의사들은 ‘Primum non nocere’를 좀 더 우호적인 관점에서 ‘이익이 위험보다 클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나도 환자에 대한 이점이 위험보다 크다고 느껴왔는데, 알고 보면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도움 때문이었다. 나는 겐타마이신 처방으로 환자의 신장을 손상시켜, 급성 신부전까지 진행되었던 경우를 경험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나는 요즘 사소한 약을 처방할 때도 해를 입거나 심지어 사망할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그의 편지는 다음의 내용으로 이어진다.

“대다수 의사는 환자들이 자신의 진료행위를 모두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진료한다. 그러나 많은 환자와 모든 의료과실 변호사는 여전히 ‘먼저 해를 끼치지 말라’는 말을 고집한다. 치료에 좋지 않은 결과가 있으면 무조건 의사가 잘못한 것이고 손해를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논리라면 의사가 처방해서 해를 입힐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처방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수술 후 만약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면 절대 수술해선 안 된다. 우리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100%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은 ‘하지 않는 것’ 뿐이다. 나는 의료계가 환자를 돌보는 데 있어서 높은 수준의 우수성을 계속 유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계가 잠재적인 이점보다 잠재적인 위험이 더 클 때도 치료법을 계속 사용할 것을 권고해야 한다. 나는 또한 ‘Primum non nocere’라는 오래된 거짓말을 버릴 것을 제안한다.”

이런 편지에 대하여 AFP 편집인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덧붙였다.

“‘Primum non nocere’라는 원칙이 잘못 적용될 수 있다는 레크로이 박사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리스어로 작성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가 라틴어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느슨하게 번역되면서, 환자에 대한 도움에 대한 강조가, 피해를 피한다는, 보다 현대적인 개념으로 대체된 것 같다. 이 개념은 해를 입을 위험을 피하면서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다는 이상주의적, 심지어 비현실적 지각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심지어 미국의 인구학자인 쉘턴(Shelton JD) 박사도 《미국의사협지회(JAMA)》 2000년도 12월호에 “The harm of ‘first, do no harm'(‘해를 끼치지 않음’의 해로움)” 주제의 칼럼을 발표하면서 ‘First, do no harm’의 개념을 한탄하고 이 개념이 어떻게 윤리적으로 의사의 손을 묶을 수 있는지를 인정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은 의사라는 직업의 뿌리 깊은 핵심 원칙인, 그리고 의사가 될 때부터 선서하였던 “해를 끼치지 말라”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이제 의사들은 “선(善)을 행하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갓 의사가 된 초보 의사들은 사회에 나와 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더욱 성숙하고 전문적인 의사가 되어간다. 물론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초보 의사의 단계를 지나온, 경륜 쌓인 의사들이라면 이제 “해(害)를 끼치지 말라”보다는 “선을 행하라”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전에 우리 사회도 이런 용감한(?) 의사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융통성 있고 성숙한 의료문화의 바탕을 이루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것이 결국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특히 위급한 생명을 다루는 응급의료 체계의 발전을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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