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류 열풍, K-팝 다음은 K-메디?

[원격의료, 세계인의 삶 바꾼다] (5)-1 베트남, 한국기업 디지털 헬스기업에 신시장 될까?

“안주를 많이 먹거나 식사를 거하게 하지 않으면 소주 자체는 살이 잘 안 찝니다. 베트남 음식이 대체적으로 한국인에게 기름지기도 하고 더운 나라에서 많이 걷거나 운동하는 게 쉽지 않기도 합니다. 영석 씨도 식이 조절과 운동을 지속적으로 노력하셔야겠지만, 식욕억제제를 처방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웬 선생님, 베트남에서 처방할 수 있는 비만약이 있을까요?”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

“베트남에도 식욕억제제와 같은 약들이 있습니다. 한국처럼 종류가 다양하진 않습니다만, 처방할 수 있는 약품은 몇 가지 있습니다. 강 교수님 그리고 영석 씨, 이들 종류의 약 처방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베트남 하노이 아이메디케어 소속 의사 우웬 낭 또안)

(베트남=하노이) 베트남 하노이에 8년째 거주 중인 교민 김영석(38) 씨는 길어지는 해외 생활 동안 늘어가는 몸무게에 고민이 크다. 체중 관리에 나름 신경을 쓰지만 30대 중후반에 들어 체중은 줄지 않고 몸에 무리도 왔다.

그는 하노이 신도시 지역인 ‘미딩’에 있는 한인병원 아이메디케어 병원을 찾았다. 베트남 실정에 비해 최신 장비와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 강북삼성병원 의료진과 원격으로 협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담당의 우웬 낭 또안 씨는 김 씨의 몸 상태와 체중 관리 상황을 점검하고 한국에 있는 강재헌 교수는 주기적으로 원격협진을 하면서 약물 처방 등 중요한 결정을 조언한다.

◆베트남 정부, ‘TeleHealth’ 통해 의료·보건구조 개편

최근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전 국가적으로 원격의료를 도입하고 안착시켜 주목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베트남인에게 원격진료는 흔한 일상이다. 한밤 중에 갑자기 아프거나 평상시 다양한 병치레까지도 원격진료로 해결한다.

베트남 정부는 원격의료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베트남 보건부는 2019년 원격의료(Telemedicine)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선언하고 ‘텔레헬스(TeleHealth)’라는 정책을 성공적으로 브랜드화했다.

텔레헬스는 베트남 정부가 열악한 의료·보건 인프라 상황을 뒤집기 위한 묘책이다. 베트남은 남한 면적의 약 3.3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가 정글과 강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고 인구는 1억명에 가깝다. 지난 30년간 영유아와 청소년·청년층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고령 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탓에 재정을 투입해 대면 진료 방식으로 의료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의료 접근성과 지역 또는 병원에 따른 의료 역량 차이는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이다. 베트남 전국에는 1500여 개의 주요 병원 네트워크가 있다. 수도인 하노이를 비롯해 호찌민, 다낭 등 주요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하노이를 비롯한 주요 도시도 의료 서비스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병원은 환자들로 붐비고 의료진은 부족하다. 인구 70%가 사는 시골이나 정글 지역에선 진료소나 상주 의료진이 없거나 부족하다. 2000년대부터 베트남 병상 점유율은 이미 100%를 초과했다. 정부는 2011년부터 사립 의료원을 허용했지만 의료 여건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베트남 의료계는 과감하게 ‘디지털 전환(DX)’을 선택했다. 텔레헬스 시스템은 △원격진료로 거주지와 의료 인프라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든지 의사의 진료를 받고 △원격협진을 통해 전국 의료진의 임상 역량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베트남 하노이 시내의 여러 종합병원들 모습. 가장 위의 사진이 미국 메이요 클리닉의 베트남 하노이 지원이다. [사진=최지현 기자]
◆원격협진·AI 진단 보조… K-메디, ICT 기술 활용 협력사업 활발

베트남은 한국 의료계에는 기회의 땅이다. 베트남 의료·보건·제약 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컨설팅기업 피치솔루션은 베트남의 의료시장(민간지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6.6% 수준으로 보고 연평균 10.7%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9년 170억 달러에서 2022년 230억 달러로 급성장한다는 추정이다.

다국적 제약사는 물론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의 병원·보건기관도 베트남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는 현지 제약회사를 인수해 의약품을 유통하고 있다. 미국 최대 의료센터인 ‘메이요 클리닉’은 하노이 센터를 운영 중이다. 일본 정부는 1400병상 규모의 베트남 최대 병원인 박마이병원 등 주요 병원 시설에 대해 지속적으로 원조와 지분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 도쿄대 의대병원은 2020년 하노이 에코파크 신도시에 병원 설립을 통한 직접 진출을 공식화했다.

한국 병원과 기업도 베트남 의료시장의 문을 지속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우리 의료계의 베트남 진출과 관련한 컨설팅과 지원을 하고 있고 각종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적인 전략 도출도 꾀하고 있다. 진흥원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베트남 하노이에 현지 지원 센터를 세우고  ‘K-병원’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동안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ICT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국제의료본부가 진행 중인 ICT(정보·통신 기술) 기반 해외 진출 지원사업이다.

강북삼성병원과 아이메디케어의 사례도 해당 지원사업의 하나다. 강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미래헬스케어추진단을 꾸린 강북삼성병원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1월까지 ‘ICT 융합 한국형 의료서비스’ 구축 시범사업을 수행했다.

베트남 타이응웬 삼성전자 복합단지를 중심으로 삼성전자 임직원, 한국 외교관 등 교민이 이용할 수 있는 비대면 원격 협진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베트남 부속의원, 아이메디케어, 베트남 호치민 삼성하늘병원 등과 협력해 비대면 원격협진 장비를 설치했다. 환자는 일상적인 건강관리와 질병에 대해 현지 의료진의 직접 진료를 받으며 강북삼성병원 의료진은 원격협진 장비를 통해 현지 담당의에게 진단을 조언하는 방식이다.

현지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코로나19 상황에서 105건의 원격협진과 모바일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호평을 받았다. 사업단 측은 그간 시범사업을 통해 이 의료 서비스의 효과 및 효율, 안전성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식 서비스를 위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진료비를 현실화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환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선 한국과 베트남 양측의 민관이 함께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베트남 하노이 세인트폴 종합병원에서 AI 내시경 검사 장비를 사용하는 모습. 오른쪽 모니터에서 AI 소프트웨어가 환자의 병변에 동그라미 표시를 그려준다.(왼쪽 위·아래) / AI 내시경 검사 장비 설치 사실을 전면에 내건 베트남 하노이 세인트폴 종합병원의 홍보물(오른쪽) [사진=웨이센·강북삼성병원]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사업단은 국내 AI(인공지능) 의료기술 전문기업인 웨이센과 함께 베트남 현지에서 ‘K-디지털헬스케어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국제의료본부가 지원하는 ‘ICT 기반 의료시스템 해외진출 시범사업’을 통해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 된 종합병원 중 한 곳인 세인트폴 종합병원에 웨이센이 개발한 AI 소화기 내시경 검진 시스템인 ‘웨이메드 엔도(WAYMED endo)’를 설치하고 강북삼성병원 의료진은 현지 의료진의 관련 진단에 자문하거나 정기적인 역량 교육을 실시했다.

장비 설치 이후 2000건 이상의 검사를 하며 현지 의료진은 웨이센의 AI 소화기 내시경 검진 시스템의 기술력을 확인했다. 중증환자 20여 명에 대해선 강북삼성병원 의료진이 자문했다. 세인트폴 종합병원에서 직접 장비를 사용했던 쩐 꾸옥 데 소화기내과장은 “일본 올림푸스, 후지필름 등도 AI 진단 보조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지만, 웨이메드 엔도는 내시경 장비와의 호환성이 매우 우수하고 사용하기 쉽다”면서 “의료진이 놓칠 수도 있는 작은 크기의 병변을 확인하도록 도와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KT는 올해 초 자사의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교두보로 베트남을 점찍고 베트남 최고 권위의 의과대학인 하노이의대와 협력하며 대규모 직접 진출을 공식화한 상태다. 올해 말까지 구체적인 사업 형태와 기반을 준비 중이지만, 현지 교민들 사이에선 KT의 첫 사업 모델이 원격협진을 통한 건강검진 시스템이 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실제 지난 11월 24일에도 KT 디지털&바이오헬스사업단은 하노이의대병원을 찾아 협력 타임라인 설정 등의 관련 협정을 추가 체결했다.

◆ ‘K-메디’ 물결, K-POP 처럼 가능할까?

한국 의료산업계의 이런 움직임은 이전에 베트남 직접 진출을 노렸던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양국의 행정 체계와 규제, 시장 구조의 상이함에서 오던 위험성을 피하는 한편 시장 상황에 맞춘 유연한 전략이다.

하노이에서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 컨설팅을 하는 이종국 JK파트너스 대표는 “기업이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는 게 베트남 시장 진출”이라며 “베트남은 외국 기업으로선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행정 규제 체계를 가지고 있어 직접 진출은 많은 어려움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충분한 자본과 역량이 부족하다면 직접 진출보다는 우회 진출을 추천했다. 베트남 보건부가 지난해부터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의료시설에 대한 민간공동투자(PPP) 허용 법안’을 우리 기업과 병원이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베트남 의료시장에 다양한 기회가 펼쳐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베트남은 최근 케이팝(K-POP) 등 한류가 유행하는 상황 역시 강점이 될 수 있다. 현재 베트남 사회에서 한국 문화는 고급 선진 문화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과자는 어떠한 제사상에도 반드시 올라야 하고 삼겹살, 양념갈비는 ‘특별한 외식 메뉴’가 됐다.

의료계에서도 ‘한국풍’은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현지에서 ‘K-메디’는 베트남 소비자의 호감을 사고 있다. 실제 웨이메드 엔도를 사용하는 세인트폴 종합병원은 이를 병원 홍보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의료관광으로 대표되는 부유·상류층의 고급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 역시 중요하다.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에 집중했던 수요를 일부 흡수할 가능성도 높다. 원격협진 시스템을 의료관광 서비스의 보완재로도 활용할 경우 저렴한 수준으로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메디케어에서 강북삼성병원과의 원격협진을 받은 베트남인 튀(32) 씨는 한국 의료진과의 원격협진 경험을 호평했다. 튀 씨는 “원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원격진료의 장점에 더해 여러 명의 의사가 같이 진료한다니 크게 안심이 된다”면서 “비대면 장비를 통해 해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외국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되니 다시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베트남 의료시장의 발전 방향을 꿰뚫는 열쇠는 원격의료를 비롯한 디지털 헬스케어다. 한국기업과 병원, 정부도 이런 점에 주목해 발빠르게 대응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경쟁력을 뛰어넘는 역량과 속도를 보여줘야 한다.

튀 씨가 베트남 하노이 아이메디케어에서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와 원격협진을 진행하고 있다.(윗줄 오른쪽) / 아이메디케어에 설치된 강북삼성병원의 비대면 원격협진 장비(윗줄 왼쪽) / 튀 씨의 아들이 코로나19 사태 당시 아팠을 때 사용했던 베트남 현지의 원격진료 어플 ‘닥터애니웨어'(아래) [사진=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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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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