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간병.. 눈동자만 움직이던 그가 희망을 쏘다

[김용의 헬스앤]

승일희망재단의 가수 션(왼쪽)과 박승일 공동 대표. [사진=승일희망재단]

“루게릭병 환우는 두 번 아파한다. 움직일 수 없는 몸 때문에 한 번, 그리고 자신 때문에 고통받는 가족들 때문에 또 한 번…”

루게릭병 환자 박승일은 저서 ‘눈으로 희망을 쓰다’에서 “루게릭병은 간병으로 인해 가족들까지 죽을 만큼 힘겹게 몰고 간다”며 자신을 ‘물귀신’에 비유했다. 온몸이 마비돼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었던 그는 24시간 간병하는 가족들의 고통에 더욱 비통해 했다.

유럽 등 서구 국가는 루게릭병 확진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가족이 아닌 국가가 간병한다. 루게릭병은 가족이 보살필 수 있는 ‘간병 수준’을 넘어선 질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루게릭병 환우들은 온몸이 마비돼 24시간 누워 지내는 자신을 죽을 만큼 힘들게 간병하는 가족들 때문에 눈물짓는 경우가 많다.

루게릭병은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성인에게 갑자기 찾아온다. 몸의 근육들이 하루하루 조금씩 힘을 잃어간다. 처음에는 중병인지 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점점 다리에 힘이 빠져 자주 넘어지고, 혼자 밥을 먹거나 옷 입는 일조차 버거워진다. 그러다 음식을 삼키기도, 말하기도 어려워진다. 위루관(위에 직접 음식을 주입하는 장치)을 달아 음식을 먹고 숨 쉬는 일조차 인공 장치에  의존하게 된다. 발병 1~2년 사이 몸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어 버린다.

치료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엄습한다. 가족은 24시간 간병을 위해 사회-경제 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은 가족 구성원 모두를 절망에 빠지게 한다. 간병하는 사람은 2~3시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추어 둬야 한다. 새벽 1시, 새벽 4시경 일어나 환자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몸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도 누군가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기관절개 부위 소독, 가래 제거에 이어 호흡기가 잘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한 자세로 오래 누워 있으면 저리고 눌려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세를 바꿔 줘야 한다. 힘이 약한 여성 간병인은 이 일이 참 어렵다. 기도관에 연결된 공기주머니의 공기량도 들여다봐야 한다. 기관 부위와 위루관 부위의 소독에 이어 물을 주사기로 공급해 수분을 보충해 준다…

환자가 깨면 관절이 굳지 않게 손-다리-발 마사지, 팔 올리기-내리기 등 관절 운동을 도와줘야 한다. 양치와 세안 등 청결도 중요하다. 가래를 제거하는 석션이나 호흡기 관리 등 의료 행위는 의료인이 해야 하지만 다른 간병은 거의 가족이 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중증 루게릭병 환자를 받아주는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이 거의 없다. 간병의 부담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전문 간병인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지난 21일 루게릭병 환우를 위한 희망의 소식이 전해졌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120억 원 가량 드는 루게릭병 요양센터 건립비를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중증·희귀질환 치료 지원 강화를 위한 정책 간담회’를 열었다. 루게릭병 환우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비영리재단법인 승일희망재단이 발로 뛴 끝에 여당과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낸 것이다.

루게릭 요양센터 조감도. [사진=승일희망재단]
승일희망재단의 공동 대표가 가수 션과 루게릭 환우 박승일이다. 가수 션은 “루게릭병과 중증·희귀질환 환우의 입원을 받아주는 요양기관이 없어 가족이 24시간 간병하고 있다”며 각계에 호소해왔다.

승일희망재단은 2011년부터 요양센터 건립을 목표로 모금을 해왔지만, 최근 3년간 코로나19 유행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건비와 원자재비가 급격히 오른 반면 기부금은 급속히 줄고 있어 어려움을 맞고 있었다. 션은 요양센터 건립이 난관에 봉착하자 국회와 정부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한 끝에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됐다.

션은 농구선수 출신 박승일 전 현대 모비스 농구단 코치가 루게릭병과 싸우면서 쓴 책을 읽고 건립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루게릭병 환우를 위해 여러 차례 기부하면서 요양병원 건립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박승일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눈동자를 이용, 안구 마우스로 세상과 소통하며 루게릭 요양센터 건립 운동을 펼쳤다. ‘승일희망재단’도 박승일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박승일은 한때 국내 최연소 프로농구 코치로 주목받았지만, 루게릭병으로 오랜 시간 절망감과 싸워야 했다. 그는 “나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위해 살고 싶다. 그 누군가는 바로 루게릭병 환우”라고 말한다. 24시간 병상에 누워있지만 단 한순간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눈 깜빡임으로 루게릭병을 세상에 알렸다.

션과 박승일 두 사람은 10년 이상 루게릭 요양센터 건립에 매진해왔다. 이제 박승일이 눈동자로 쏘아 올린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온몸이 마비된 내 몸보다 더 아파했던 간병 가족들의 눈물을 닦을 수 있게 됐다. 그들이 흘린 눈물이 루게릭병 환우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한 것이다. 션과 박승일 두 분의 집념에 박수를 보낸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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