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단체의 빈곤포르노에 대한 논란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최근 많은 자선단체의 광고를 보면 거의 한결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얼굴을 보여주고 아이의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제시하면서 당신의 조그마한 도움이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말로 끝난다. 그런가 하면 주말 오후 공중파방송에서는 몹쓸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나 어른들이 나와 자신이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시청자들의 기부를 요청하는 방송이 나온다.

참고로 이러한 방송이나 광고를 사회학적 용어로 빈곤포르노라고 한다. 여기서 빈곤포르노란 기부모금 캠페인이나 미디어에서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 대중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불러 일으켜 모금이나 지지 등을 유도할 목적으로 쓰이는 사진이나 영상물 혹은 그것으로 동정심을 일으켜 모금을 유도하는 일을 말한다. 이러한 모금방식은 1980년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부모금 캠페인이나 자선단체들이 이러한 모금방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더 많은 모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의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진들이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한 학생들에게 5달러를 지급하면서 안내문을 읽고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을 부탁하였다. A안내문에는 ‘말라위에서는 3백만 명이상의 어린이가 식량부족으로 고통받고 있고 잠비아에서는 극심한 물부족으로 옥수수 생산량이 급감하여 3백만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앙골라는 400만명이 집을 떠나야 했다. 에티오피아에는 1100만명이상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설명하였고 B안내문에는 어린 소녀의 사진과 함께 ‘로키아는 일곱 살로 아프리카 말리에 살고 있다. 아이는 몹시 가난해 굶주림과 아사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당신의 기부는 로키아의 생활에 보탬이 될 것이다. 당신이 도와준다면 세이브 더 칠드런은 로키아의 가족과 로키아에게 음식, 교육, 의료 등을 제공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결과적으로 A 안내문을 읽은 학생들은 평균 1.16달러를 기부한 반면 B 안내문을 읽은 학생들은 평균 2.83달러를 기부하였다. 이렇게 B안내문이 기부에 효과를 거둔 이유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사람들은 해당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할 책임과 동정심을 느끼지만 통계적인 수치만을 제시하면 이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구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많은 자선단체들은 모금에 좀 더 효과적이라는 이유로 단순히 통계자료를 보여주기 보다는 기아에 시달리는 어린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금캠페인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 이러한 모금광고는 모금효과를 높이기 위해 시각적으로 일부러 빈곤함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동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국제구호단체가 에티오피아 시골마을의 열악한 식수환경을 알리고자 국내의 한 방송사와 동행취재에 나섰는데 제작진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하여 마을의 가축들이 물을 마시는 작은 연못에 현지 아동을 데려갔고 아동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였다. 아이들은 더러운 물을 마시기 거부하였지만 제작진은 물이 없어 더러운 물을 먹는 현지 상황을 알리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면서 연출된 촬영을 고집했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찍기 위해 다른 아이에게 눈물을 흘릴 것을 종용했지만 거절당하자 한 제작진이 아이를 꼬집어 눈물을 흘리게 하고 촬영을 강행하였다고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출처: ‘돕는 것은 좋지만… 개도국 어린이 인권침해 말아야’ 국민일보 2014.9.16 보도) 특히 자선단체들 사이에서 모금경쟁이 심화되면서 이들의 모금 캠페인 영상과 메시지는 더욱 자극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둘째, 이들은 이미지로 빈곤을 표현함에 있어서 주로 어린이들의 고통과 배고픔을 영상화하는데 상세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린아이, 구걸하는 듯한 눈, 부풀어 오른 배, 굶주린 모습 등 무분별하게 인간의 몸과 비참함, 슬픔과 공포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사용하면서 마치 포르노와 같다는 비판을 받는다. 셋째, 이러한 모금캠페인들이 아프리카 일부의 극단적 사례를 시각화하면서 마치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이러한 빈곤과 기아의 땅이라는 차별과 편견을 고정화한다. 특히 이러한 영상에서 피촬영자들은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남아 있으며 이러한 광고를 보는 시청자들은 이러한 사람들보다 우월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다섯째, 국내지원사업의 경우 모금캠페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이 수혜대상자라고는 하지만 이런 방식의 캠페인은 수혜자와 가족들의 민감한 사생활 노출 및 초상권 더 나아가서 명예훼손 등 개인과 가족의 인격권과 존엄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자선단체들이 모금의 효과성이라는 측면 때문에 빈곤포르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재정 및 존속을 위해서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을 돕기 위해서 모금은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구호개발과 인도적 지원활동을 하는 NGO단체 연합체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아동권리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아동이 빈곤이나 기아의 상징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하고, 굶주리고 병든 아동의 이미지를 이용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 빈곤과 기아, 질병에 대한 자료를 활용할 때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통계자료를 사용하고, 상황을 연출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잘 지켜지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통령 영부인과 관련하여 빈곤포르노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빈곤포르노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생긴 것은 긍정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자선단체들이나 여러 사회단체들의 개인의 얼굴이나 개인정보를 이용한 모금캠페인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의 장이 열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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