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가 되면 무엇이 절실할까?

[박문일의 생명여행] (41)의사 교육에서 인문학의 필요성

의사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헬스클럽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 중 의사 부부가 있는데,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 분들과 가까운 지인에게 물어보니 외동 아들이 며칠 뒤 수능시험을 본다고 한다. 집안이 온통 비상시국이며 할머니는 몇 달 전부터 절에서 백일기도 중이라고 한다. 공부를 잘해서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이라고도 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다시 헬스클럽에 나온 부부의 얼굴은 다행히 평온해 보였다.

“아드님이 시험 잘 치르셨나요?”라고 묻고싶었지만, 이런 질문은 대입 수험생 부모에게 절대 묻지 말라고 하는 불문율이라고 하므로, 아직 부부의 눈치만 보고있는 중이다. 부디 시험성적이 좋게 나와서 소원대로 향후 의사가 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주고 있다.

의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간단히 정의하면, 의사는 사람의 건강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면서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바치는 사람이다.

의사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그 직업은 때로는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성스러운 직업이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또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음에 대해 의사 스스로 감사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사명 중심의 정신과 헌신일 것이다.

의사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엄청난 노력과 직업 고유의 헌신이 필요하다. 의사가 되는 것은 사실 우리사회에서 오랫동안 영광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등의 기초의학은 물론 수십 가지의 임상의학 과목들, 그리고 건강, 웰빙 및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의사가 가져야 하는 기타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의사들은 위와 같은 의학과 관련된 전문지식만 갖추어도 될까? 예전에 어떤 친구와 나누었던 잊지 못할 대화 내용이 생각난다. “전문직이라는 것은 특정 분야의 백과사전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해당분야를 달달 외우고 있는 로봇이나 마찬가지이지….” 그의 주장은 판검사, 변호사들은 법지식을 통달한 로봇이고, 의사들은 의학지식만 달달 외울줄 아는 로봇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문직이란 해당분야의 인간 백과사전이라는 것이고, 또한 전문직들을 인간미 없는 냉정하고도 차가운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의사인 필자 입장에서는 섭섭한 말이었지만, 사실 그의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인간미 없는, 즉 휴머니즘 없는 의사들을 만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의사들도 그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바로 의사가 환자가 되었을 때이다. 많은 의사들이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탄식을 하며 자신의 의사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

의사는 사실 의학로봇이 아니며, 그들이 치료하는 환자만큼이나 인간이다. 의사가 자신이 더 이상 의사의 역할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감하는 순간은 바로 자신이 환자가 되는 현실에 직면하는 순간이다.

친구 중에 마취과 의사가 있었는데, 그가 수술환자가 되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주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의사가 된지 40여 년이 지나서야 나는 바로 환자가 된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환자로서 경험했던 병원시스템은 예전 내가 초보의사 때보다 더욱 더 체계적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예정된 수술은 응급수술도 아니었는데 나는 상당한 무력감, 또는 무서움을 느껴야 했다. 환자가 되어보니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시술 당일 아침 과정을 알고 있다는 것이 약간의 이점이었으나 수술대기실의 다른 환자들을 둘러보면서 많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수술 전 불안감을 완화해주려는 의료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수술이란, 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아마도 일생에 한 번일 수도 있겠지만 고통을 완화하거나 질병을 영구적으로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건강 문제의 처음이자 끝이 될 수도 있는 날이다. 그러나 외과의사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많은 같은 수술중의 하나, 즉 매일 경험하는 평범한 수술과정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술의 결과가 나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로서의 일생에 한번 뿐인 중요한 경험을 의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것을 환자가 되어 보고서야 비로서 알게 되었다.”

그가 다시 의사 역할로 돌아가면서 느낀 결론은 앞으로 환자들을 보다 인간적으로 대해주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치료하는 모든 환자는 최대한의 존중으로 소중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인간 생명이다. 필자가 의대를 졸업할 때 학장님의 졸업축사 말씀이 생각난다. “의사가 된 너희들이 사회로부터 받은 선물은 환자들이 기대하는 소중하고도 훌륭한 치료 능력이다.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그들의 가장 소중한 선물을 너희들의 손에 쥐어주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그들, 환자들의 인간성의 연약함을 항상 존중하기를 바란다.” 필자도 이런 이야기를 졸업하는 의대학생들에게 해준 기억이 난다.

진심으로 환자를 걱정하는 의사가 진료할 때 환자들은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진다. 의사들의 과학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정직한 설명, 진심어린 관심, 인간적인 사려 깊음, 연민을 전달하는 능력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따라서 의대생들에게 인문학 강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외국에 비하여 다소 늦었지만 몇해 전부터 우리나라 여러 의과대학에서도 다행하게도 인문학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의료인문학 강의에서는 역사, 문학, 종교, 윤리, 인류학, 심리학, 연극, 영화, 미술 등도 포함되어 있다. 외국에서의 여러 연구결과들은 의학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에서 700명의 의대생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인문학 지식이 많을수록 공감 능력, 모호성에 대한 내성, 지략, 감성 지능이 더 높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의대생이 시각 예술 수업을 받은 후 진단 단서를 인식하는 능력이 35%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즉흥 연극을 연습하는 것이 의대생들이 예상치 못한 질문과 대화에 대비하는 법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쓰기 연습도 의대생들이 환자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예측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보여주었다. 분명히 인문학에 노출되면 더 나은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의사가 아니더라도 전인적 인문학 교육을 받은 간병인이 통증, 메스꺼움, 신체 기능 상실 또는 암 진단에 직면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나 예술에 흠뻑 젖어 있는 의사들은 환자들의 의학적인 문제를 더욱 잘 해결함과 동시에, 환자들이 견뎌야 할 모호하고도 예측할 수 없는, 또는 무서울 수도 있는 삶에 대한 더 나은 조언들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의과대학을 지망하는 많은 우수한 고교생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출중한 수학능력 시험점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의과대학을 지망하고 장차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에 부디 깊은 인문학의 배경이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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