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재생 원리, 한센병균은 알고있다?

한센병 걸린 아르마딜로, 놀라운 간 재생능력 보여

한센병에 걸린 아르마딜로의 간을 연구한 결과 간에 침투한 한센병균(나균)이 조직 재생 능력을 극대화시킨다는 것이 발견됐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지구상에서 한센병(나병)에 걸리는 동물을 딱 둘이다. 하나는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딱딱한 등껍질로 둘러싸인 아르마딜로다. 등껍질을 지닌 포유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천산갑과 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아르마딜로 둘 뿐이다.

한센병균(나균)이 아르마딜로의 간 조직 재생 능력을 극대화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15일(현지시간) 《셀 리포츠 메디슨(Cell Reports Medicine)》에 발표된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와 BBC가 보도한 내용이다.

한센병은 박테리아(한센병균) 감염으로 발병한다. 과거엔 불치병으로 여겨졌으나 요즘은 이 박테리아를 겨냥한 항생제를 1회만 복용하면 전염력이 사라지고 복합 항생제 처방을 통해 치료 가능한 병이 됐다.

연구진은 한센병균에 감염되면 아르마딜로의 간이 극적으로 커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간은 신체의 재생 챔피언으로 부상과 질병 이후에도 재생된다. 인체에 2개가 있는 콩팥(신장) 중 하나를 기증하면 그 자리에 다시 콩팥이 자라지 않는다. 간은 기증을 위해 3분의 2를 잘라내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크기로 재생된다. 이런 간의 재생원리를 알면 간경변 등 간기능 저하를 겪는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그 원리를 모른다.

에든버러대 재생의학센터의 아누라 람부카나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거의 10년 전 한센병균이 활동에 들어가면 말초신경계에 속한 슈반세포에 침입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센병균이 슈반세포에 침투해 정착하면 세포가 덜 성숙한 발달 상태로 되돌아가도록 자극을 줘 줄기세포와 비슷하게 만든다는 발견이었다.

당시의 연구는 한센병이 잘 자라지 않는 생쥐 같은 표준적 실험동물의 세포에서 이뤄졌기에 불완전했다. 이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던 람부카나 교수는 아르마딜로를 키우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한 연구소로 전화해 한센병에 걸린 아르마딜로의 장기에 이상현상이 발견됐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간이 커지는 것을 본다”였고 람부카나 교수는 펄쩍 뛰며 좋아했다.

한센병균이 어떻게 일반세포를 줄기세포화 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면 간질환이 있는 사람의 간 재생을 유도할 수 있는 약과 치료법 개발도 가능할 수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새로운 연구는 그 관찰을 확증한다. 한센병균에 감염된 아르마딜로의 간은 감염되지 않은 아르마딜로의 간보다 약 3분의 1 정도 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더욱이 그 간은 뒤죽박죽 커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간엽의 수와 벌집 모양의 하위단위 배열을 유지하는 해부학적 특징을 고스란히 유지하며 성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간 질환이 생긴 간에는 종양이나 흉터가 생길 수 있다. 종양과 흉터가 생기면 간기능의 장애가 발생한다. 그러나 한센병균에 감염된 아르마딜로의 간에선 두 가지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몇몇 간 단백질을 분석해보니 간 기능이 정상적이었다.

연구진은 아르마딜로의 간이 어떻게 비대해지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한센병균에 감염된 동물과 감염되지 않은 동물의 유전자 활동을 측정했다. 한센병균을 품고 있는 아르마딜로의 간세포는 과거 연구진이 조사했던 슈반세포처럼 줄기세포화 하는 것이 관찰됐다. 그 유전자활동은 아직 형성 중인 인간 태아의 간에서 관찰되는 패턴과 유사했다.

람부카나 교수는 “이 작은 박테리아들은 제 기능을 하도록 하면서 간을 키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센병균이 간을 키우는 이유는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더 많아지는 유리함 때문일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센병균이 어떻게 일반세포를 줄기세포화 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면 간질환이 있는 사람의 간 재생을 유도할 수 있는 약과 치료법 개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아이디어들은 검증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논문을 검토한 영국 레딩대의 다리우스 위데라 교수는 “간경변 같은 간 질환의 치료에 대한 새로운 치료 접근법의 길을 열어줄 수도 있지만 동물모델로 이뤄진 결과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BBC에 밝혔다. 게다가 한센병균은 질병을 유발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조심스러운 임상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미국 캔자스대학 메디컬 센터의 우데이언 앱트 교수(생물학)는 “한센병균은 간세포를 속여 은신처를 제공하는 방법을 알아내긴 했지만 어떻게 세포를 죽이지 않고 분열시킬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라고 《사이언스》에 말했다. 그는 이러한 의문을 풀어야 하겠지만 “간 기능을 유지하면서 분열과 재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발견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흥분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cell.com/cell-reports-medicine/fulltext/S2666-3791(22)00379-2?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2666379122003792%3Fshowall%3Dtrue)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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