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 탓에 명예 잃어버리고 떠난 서정범 명예교수

[이성주의 건강편지]

 

우리 국문학에는 서정범이라는 보물이 있었습니다. 경희대가 낳은 스타 교수였던 그는 열린 학자였습니다.

서 교수는 1958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해서 대한민국 수필문학이 풍성하고 향기롭게 꽃피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또 문헌만 따지는 수많은 다른 학자와 달리 벽이 없었습니다. 대학가의 유행어를 모아 ‘별곡 시리즈’를 펴냈고 비속어와 은어에 대해서도 연구했습니다. 한국어와 한글의 어원을 찾아 만주, 몽골까지 갔으며 무속의 세계도 톺아서 3000여 명의 무속인을 만나 면담하고 《무녀들의 꿈이야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TV에도 출연해서 우리말의 세계에 대해서 막힘 없이 술술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2006년 오늘(11월 14일) 80세의 이 노학자에게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38세의 여자 무속인이 서 교수에게 성폭행당했다면서 검찰에 녹취록과 정액 샘플을 제출하며 고소한 것입니다. 대학 당국은 사건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지만,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언론에 보도자료를 보내고 집회를 이어갔습니다. 대학은 이에 굴복해서 이듬해 1월 서 교수를 직위해제합니다.

정의가 구현되는가 싶었지만, 곧바로 반전이 일어납니다. 검찰 조사에서 무속인이 제출한 녹취록과 정액 샘플 모두 조작됐다고 밝혀진 것입니다. 서 교수에게 연정을 가진 무속인이 오히려 성관계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무시당했다고 여기고 무고한 겁니다.

존경받고 사랑받던 서정범 교수는 파렴치범의 누명을 쓰고 경찰과 검찰을 들락거려야했습니다. 집밖으로 나서기도 두려웠을 겁니다. 나중에 누명이 벗겨졌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경희대로부터 복직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두문불출하다가 2009년 세상을 등집니다.

서 교수를 파렴치범으로 몰았던 총여학생회는 끝까지 사과를 거부했고, 자기합리화를 시도해서 지금도 ‘진짜 파렴치한’의 전형으로 비난받고 있지요. 당시 간부들은 지금도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로코 속담에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크다’고 했고, 탈무드에서는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도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종교해석서 ‘미드라시’에선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말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듣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남을 해치기 위한 가벼운 말들이 넘쳐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해서 망나니처럼 춤춥니다. 어떻게 하면 말이 순해지고, 험담에 대해서도 숙고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제2, 제3의 서정범 교수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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