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은 2살 때를 기억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나?

[박문일의 생명여행] (39)유년기 기억상실증과 회상 능력

우리 대부분은 생후 3~4년 동안의 기억이 전혀 없다. 사실, 우리는 7세 이전의 삶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마저도 성인이 되면 대부분 잊어버린다. 이를 유년기 기억상실증이라 부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부모님 댁에 가면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곤 했다. 어렸을 때 사진들 중에서 간혹 낯선 나를 발견한다. 사진에서만 남아있는 예전 유년기 나의 모습. 그러나 그때의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아마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유년기 기억상실증’으로 알려진 이 현상은 한 세기 넘게 심리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해 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생후 3~4년 동안의 기억이 전혀 없다. 사실, 우리는 7세 이전의 삶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초기의 기억을 회상하려고 할 때 그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준 사진이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단순한 기억인지 불명확한 경우도 많다.

언뜻 보기에 우리가 아기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유아기에 완전히 발달한 기억력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생후 6개월의 아기는 몇 분 동안 지속되는 단기 기억과 몇 달은 아니더라도 몇 주 동안 지속되는 장기 기억을 모두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한 연구에서 장난감 기차를 조작하기 위해 레버를 누르는 방법을 배운 6개월 아기는 장난감을 마지막으로 본 후 2~3주 뒤 이 동작을 수행하는 방법을 기억했다고 한다. 미취학 아동기에만 이르러도 몇 년 전의 사건을 기억할 수 있다. 특히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한 개인적으로 관련된 사건일수록 더욱 잘 기억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이런 기억들마저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유년기 기억상실증’이다.

아동기의 기억력은 물론 성인과 같지 않다. 기억력은 청소년기까지 계속해서 성숙한다. 그러나 그 성숙 과정, 즉 기본 기억 과정의 발달적 변화가 바로 유년기 기억상실증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됐으며 이 이론이 지금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유년기 기억상실증은 왜 생길까. 아마도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아직도 여러 학자가 이에 대한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기본적인 기억 과정에는 여러 뇌 영역이 포함되며 기억의 형성과 유지, 그리고 기억정보의 검색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기억 형성을 담당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해마는 적어도 7세까지는 계속 발달한다. 그러나 그 기억의 형성 능력은 나이에 따라 변한다. 7세 이후의 어린이에서 청소년, 성인으로 나아갈수록 기억 형성보다는 기억의 유지능력이 더욱 발달한다.

연구자들은 기억 능력의 발달에서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1~6세 아동은 한 단어로 말하기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모국어에 능통해지는데, 유년기 기억상실 기간과 겹치는 언어 능력의 주요 변화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과거 시제, ‘기억하다(Remember)’ 및 ‘잊다(Forget)’와 같은 기억 관련 단어, 그리고 좋아하는 ‘내 것(Mine)’인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이 포함된다.

어떤 이벤트나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아이의 능력이 몇 달 또는 몇 년 후에 그 사건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예측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한 연구진(Peterson, C., & Parsons, B.)이 2005년도에 학술지 《법과 인간 행동(Law and Human)》에 게재한 논문 내용을 보자. 그들은 사고로 크게 다쳐 응급실로 옮겨진 유아들을 인터뷰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있었던 26개월 이상의 유아는 최대 5년 후에 그 사건을 회상한 반면, 사고 상황에 대하여 말할 수 없었던 26개월 미만의 유아는 거의 또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은 언어로 번역되지 않으면 이전 기억이 손실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언어가 기억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연구도 다방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언어로 옛 기억을 특정 형태로 효과적으로 잘 묘사(Narrative)하는 것이 기억 회상에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부모가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과거 사건을 회상시킬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건의 종류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 등 내러티브 기술이 중요하다.

사실적 목적을 위해 단순히 정보를 설명하는 것과 달리, 과거에 대한 회상은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적 기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식으로 가족 이야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의 접근성을 유지하고 사건의 연대기, 주제 및 감정의 정도를 포함하여 이야기의 일관성을 높이게 된다. 일관성 있는 이야기가 많을수록 더 잘 기억된다고 한다.

실제로 마오리족 부모의 매우 정교한 가족 이야기 스타일 덕분에 마오리족 성인은 지금까지 연구된 어떤 사회보다 더 가장 어린 시절 기억(2.5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어릴 적 부모와의 애착 형성이 언어와 기억 능력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우리가 정확히 기억하는 능력은 문화에 의해서도 좌우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율성을 중시하는 문화(북미, 서유럽)의 성인은 관련성을 중시하는 문화(아시아, 아프리카)의 성인보다 어린 시절을 더 많이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부모가 무엇을 중시하며 기억하는지는 자녀의 회상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보다 자율적인 자아 개념을 소중히 여기는 서구 문화에서 부모의 회상은 어린이의 개별 경험, 선호도 및 감정에 더 초점을 맞추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회적 일상 및 행동 기준은 덜 중시한다. 이것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쳐 미국 어린이는 자신이 유치원에서 금 별표를 받은 것을 기억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어린이는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특정 노래를 배운 수업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년기 기억상실증에 대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아무튼 연구자들은 조금씩 밝혀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미래까지 개인을 추적하는 더 많은 전향적 종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신경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의심할 여지 없이 뇌 발달과 기억 발달에 관한 더 많은 연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연구들은 유년기 기억상실증에 연구뿐 아니라, 기억 능력의 다른 척도를 개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의 특정 사건을 명시적으로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잃어버린 기억의 축적이 성인이 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지속적인 흔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인생의 처음 몇 년을 기억하긴 어렵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잊힌 기억’이 우리가 어떤 성인이 되는지를 좌우한다는 것까지 잊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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