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2인분 듬뿍 먹고 살쪄도 괜찮다고?

[박문일의 생명여행] (38)비만 치료와 비만 낙인

임신한 배 인치를 줄자로 체크하는 임산부
임신부 비만은 조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산이 되풀이돼 진료실을 찾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언젠가 진료실을 방문한 임신부와 나눈 대화이다. 임신 13주가 돼 자궁경부무력증 예방 수술을 받기 위해 내원한 쌍둥이 임신부였다.

“조산이 반복되어 이번에는 예방 수술을 받으러 왔어요”
“그런데 쌍둥이를 임신하셨군요”
“시험관 시술로 임신했어요. 쌍둥이가 더 위험한가요?”
“물론입니다. 쌍둥이 자체가 조산율이 40~50%이지요”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비만이었다.
“체중도 많이 나가시네요. 고도비만입니다”
“비만이 임신에 문제가 있나요?”
“고도비만일 때는 조산율이 두 배로 증가한답니다”

내 말을 듣는 임신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면서 같이 온 남편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한다.
“그러게 내가 체중관리 좀 하라고 그랬잖아요”
어쩔 줄 모르는 부부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환자가 잘못한 것은 별로 없어요. 쌍둥이는 난임클리닉에서 만든 것이고, 비만치료는 가족의 협력이 필요하답니다”

이 임신부는 두 번의 조산 경력 끝에 임신하기 어려워서 난임클리닉에서 시험관 임신 시술을 하였는데  쌍둥이를 임신했다. 조산 경력에다 고도비만, 쌍둥이를 감안하면 이 임신부는 향후 조산 위험이 60~70%를 넘는다. 꼭 자궁경부무력증 예방 수술을 해야 하는 임신부이다.

고도비만 임신부는 정상체중 임신부와 비교해 수술 자체도 쉽지 않다. 아주 어려운 임신부 치료를 맡게 된 것이다. 이 임신부는 자궁경부무력증 예방 수술을 한 차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4주에 자궁경부가 단축돼 또다시 치료 수술을 받고 다행히 만삭에 건강한 아이 둘을 분만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이 증가하고 있다. 비만은 이제 분명히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비만율은 1975년 이후 거의 세 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2030년에 전 인구의 반이 비만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인 중 비만 인구가 점점 증가하여 남성은 3명 중 1명, 여성은 4명 중 1명이 비만이다. 특히 고도비만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 2030년에는 현재의 2배 수준인 9%에 이를 전망이다.

비만의 기준으로서 간단하게 체지방률을 사용한다. 몸무게(㎏)를 키(㎡))로 나눈 값인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 즉 BMI이다.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 아시아-태평양 비만 진단 기준에 따라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체질량지수 23 이상이면 과체중(비만 전단계), 25 이상부터 비만으로 정의한다. 35 이상이면 고도비만이다. 임신부는 BMI가 늘기 마련이지만 지나치면 해롭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비만은 비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정신적인 질병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비만을 단순히 비만 한 가지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만은 제2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지방간, 담낭질환, 심장동맥질환, 뇌졸중, 수면무호흡증, 통풍, 골관절염 등 갖가지 질병들과 관계있다. 소아 비만에서도 무증상 관상동맥질환, 혈압증가, 지방간질환, 천식발병 및 악화, 당뇨병, 고인슐린혈증, 우울증, 자존감 저하, 식이장애 및 신체불만족이 흔히 동반된다.

여성의 비만은 어떨까? 비만일 경우 다낭성 난소 증후군 빈도가 높아 위에 설명한 임신부처럼 난임이 증가한다. 소아에서는 초경이 빨라지는 등 사춘기 발현 이상이나 성조숙증이 있을 수 있다. 체내 여성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리량과 주기가 불규칙하게 되고, 심하면 생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최근 위의 사례처럼 임신 중 비만 환자가 증가하는 것에는 사회적 관심이 덜한 듯해서 우려된다. 전체적인 비만 인구가 증가하므로 자연히 비만 임신부도 증가하게 되는데, 비만인 여성은 임신 중 자연유산, 습관성유산, 조산 및 태아 사망률이 높다. 출생한 신생아에서는 신경관결손, 신장기형, 복벽갈림증 등의 기형률이 증가하며 4Kg 이상의 거대아가 많고, 소아비만율도 증가한다.

비만은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및 사회적 건강 등 건강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임신 중 비만은 아기의 소아비만으로까지 이어져 2대째 고생하게 되고 결국 국민 건강의 질을 떨어지게 한다. 따라서 비만 예방은 임신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장기치료가 요구되는 질병, 21세기 신종 감염병’으로 지정한 게 1996년도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비만에 대한 대응은 주로 비만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이나 일부 전문단체의 캠페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소아, 성인은 물론 임신부 비만 예방 및 치료를 위한 건강보험 보장 확대가 필요하다.

물론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도 비만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비만 낙인”이라는 단어가 있다. 비만 낙인은 비만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 벌어진 결과라며 비난하거나 책임을 돌리는 일을 뜻한다. 위 사례의 남편도 아내에게 “비만 낙인”을 찍은 것이다.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 2020년 03/04호에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 36인으로 이뤄진 국제 패널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에 따르면, 비만 낙인은 신체적 피해와 심리적 피해 모두를 유발하고 환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돼 적절한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줄어 결국 비만이 악화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비만으로 낙인찍힌 이들의 사회적인 활동에도 제약을 준다고 한다. 그들은 비만이 개인의 문제라는 과학적 증거가 없고 낙인이 비만을 치료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낙인을 없애기 위해 의료 종사자와 매체, 정부가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는 비만 대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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