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문화도 출산율에 영향 미칠까?

[박문일의 생명여행] 가부장적 문화와 출산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0여년 전 쯤, 국회에서 열렸던 저출산 대책 간담회에서 주제발표를 한 적이 있다. 발표를 끝내고 토의시간이 왔다.

“의원님들께 제안 하나 드리겠습니다.”
“무슨 제안이지요?”
“법을 하나 만들어 주세요.”

법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한다니까 여러 국회의원들께서 관심을 보인다.

“무슨 법이 필요하지요?”
“다름 아닌 ‘회식금지법’입니다.”
“예? 무슨….”

의아해 하는 의원들에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회사를 다니는 신혼부부들에게 회사에서 저녁회식 금지법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예? 그 이유는요?”

황당한 웃음을 짓는 의원들께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신혼부부들은 대체로 회사에 갓 입사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회사의 상사들이 회식에 오라고 하면 반 강제적으로 참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혼부부들이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입니다.”

황당해 하던 의원들은 물론, 참석자들도 웃음기를 거두고 경청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부부가 만날 기회가 적어지면 출산율이 올라갈 리가 없습니다. 또한 아기가 있는 부부는 육아의 어려움이 상상 이상으로 큰데 회식에 참석하라고 하면 육아의 부담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더욱 고통받습니다. 따라서 육아휴직제도를 대폭 늘려야 하며 특히 남성들에게도 육아휴직의 기회을 넓혀주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지지 전까지는 일단 부부들에게 귀가라도 빨리 시켜주어야 합니다. 첫 아이의 육아가 힘들어 지면 다음 아기를 낳을 의욕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출산율이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요. 따라서 신혼부부들의 저녁회식을 금지시켜서라도 가정에 빨리 귀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국회 간담회에서 엉뚱한 제안을 해본 것이다. 장난끼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참석자들도 말뜻을 알아듣고는 자리를 고쳐앉았다. 물론 이런 법이 만들어 질 수는 없다. 현장 중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이런 비유라도 들어서 해본 것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수년이 지난 오늘날, 저출산 대책 중에서 남편의 육아휴직제도가 조금 개선되기는 하였지만 큰틀에서 눈에 뜨이게 달라진 현장중심적 제도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산부인과외래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첫아기를 낳은 여성이 검진차 외래를 방문하였다. 진료가 끝난후 임신부에게 “이제 둘째 아기 계획을 세우셔야지요 ?”하고 물으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요. 절대로 둘째는 갖지 않을겁니다.”
“예? 아니 퇴원할 때 둘째도 가질 계획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때는 그랬지만 너무 힘이 들어요.”

한숨을 푹 쉬더니 대답이 이어진다.

“아기 아빠가요 글쎄, 아기 낳으면 자기가 엄청 도와줄거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아무 것도 도와주는 것이 없어요. 직장에서 일찍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직장을 포기하고 첫째 아기를 돌보고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둘째를 가질 수 있겠어요?”

아기를 낳는 여성을 진료하는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이 윗글들의 내용이다. 그동안 그야말로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서 수많은 저출산대책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발표된 우리나라의 2022년도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5명을 기록했다. 드디어 0.7명대에 진입하여 세계 최저 수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부부 두사람이 만나 적어도 2.1명을 낳아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이제 1/3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1970년에 101만 명이 태어났는데 이제 25만 명을 바라보고 있으니 출산아 숫자도 1/4로 감소한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된 이유를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 때문으로 바라보고 싶다. 전통적 유교에서부터 기인한 가부장적 문화가 출산율을 낮추는 큰 원인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외국을 보더라도 남성이 권력을 휘두르는 문화권이 아닌 프랑스(1.8명, 2021년도), 아이슬란드(1.82명, 2021년)의 국가들이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와 반대로 가부장적 문화권인 독일(1.53명, 2020년), 이탈리아(1.25명, 2021년), 스페인(1.19명, 2020년)의 출산율은 낮다. 동양권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가부장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출산율이 낮다는(1.3명, 2021년) 것도 우연이 아닌 듯싶다.

남성이 가정에서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나라들은 성평등의 수준도 높다. 흥미 있는 사실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 또는 선진국일수록, 성평등 수준이 높고 출산율도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성평등 수준은 다른 선진국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가부장적 문화가 아니면서 성평등의 수준도 높아야 하는 것이다.

요약해보면, 우리나라는 위의 두 가지 주제, 즉 저출산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요소를 두 가지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첫째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가부장적 문화라는 것이고, 둘째는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이면서도 아직 성평등의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개선되지 않고 어떻게 저출산 대책을 논의할 수 있을지 참으로 답답한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 연휴가 지나가고 있다.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그러나 예전부터 지금까지 흔히 보던 가정의 풍경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다. 조금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가정에서 여성들이 부엌에서 일하며 명절 음식을 차리느라 힘들게 일하고 있고, 남성들은 둘러앉아 환담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을 즐기는 모습이다. 아들에게는 부엌에 가까이하지 말라는 부모님들의 무언의 압력도 작용했으리라. 이제 이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명절 문화에서라도 온 가족 구성원들의 생각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개선 방향은 물론 남녀평등, 곧 성평등이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야 우리나라의 미래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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