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을 ‘거기’라고 부르는 어머니

[김용의 헬스앤]

이번 추석에도 요양병원-시설의 면회실은 두터운 유리벽에 가로 막혀 있을 것이다. 코로나 감염 예방 때문이다. [사진=뉴스1]

A씨(59세)는 어머니(82세)가 가끔 “나, 거기 가야되겠지…”라고 말할 때마다 울적하다. ‘거기’는 요양병원이다. 어머니는 ‘요양’이란 말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요양’이란 단어에 두려움이 담겨있는 듯하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곳이 됐다는 느낌이다.

A씨는 뇌졸중(뇌경색-뇌출혈) 후유증으로 몸의 마비가 심한 어머니를 집에서 간병한다. 혼자 살던 어머니의 증상이 심각해지자 집으로 모셔왔다. A씨는 직장에서 명예퇴직해 간병이 가능하다. 부인은 상점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보탠다. 그는 현재로선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실 생각이 없다. 치매도 아니고 정신이 멀쩡하신 분인데 어떻게 요양병원 입원을 생각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몸이 힘들더라도 어머니 간병을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B씨의 어머니는 집에서 넘어져 고관절(엉덩이뼈 주위) 수술을 받았다. 최근 재활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는 문제를 가족끼리 의논하고 있다. 일반병원 장기 입원은 입원비와 간병비 부담이 너무 커 집 근처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요양병원 입원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거기’에 가면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없다며 극구 반대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혼자서는 걸을 수 없어 휠체어에 의지한다. 대소변도 혼자 처리할 수 없어 재활치료가 시급하지만 집에서 머물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늙고 병들면 ​요양병원으로 가는 게 흔한 일이 됐다. 현재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는 40~60대 중년도 나이가 더 들면 ‘요양’이란 말을 꺼내게 될지 모른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식들의 의견이 더 반영되는 추세다. B씨의 어머니처럼 강하게 거부하지 않고 눈시울을 붉히며 요양병원으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매 환자가 아닌 뇌졸중, 파킨슨병 환자들은 정신이 멀쩡해 갈등이 생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요양’이란 말이 두려움의 대상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판 고려장’이란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나는 거의 매주 ‘김용의 헬스앤’을 통해 요양병원이나 간병 문제를 다루고 있다. 후속 기사를 다뤄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결론 부분에선 국회나 정부가 요양병원-시설, 간병 문제를 정책적으로 보완해 달라는 당부로 끝을 맺는다. 글을 쓰면서도 울림이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자괴감이 매번 든다. 하지만 내 글로 인해 간병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는 독자들의 의견에 다시 힘이 솟는다.

정부의 지원이 더 활성화되면 집에서도 간병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제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가족이 간병하면 몸이 망가져 또 다른 환자만 생길 수 있다는 독자 의견이 더 많았다. 결국 요양병원-시설의 위생 상태와 관리 기준을 정책적으로 대폭 강화해  ‘감염병 취약시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과제다. ‘현대판 고려장’이란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요양시설(요양원)과 요양병원은 법적으로 다르다. 요양병원은 말 그대로 ‘병원’이다.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 분들이 입원하는 곳이다. 의사가 상주해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고 재활치료를 전문적으로 돕는다. 치료비도 건강보험이 부담한다. 다만 간병비는 개인 부담이다. 전담(1인)이냐, 공동(4~6인 환자 돌봄) 간병인이냐에 따라 간병비가 크게 치솟는다. 반면에 요양원은 치매, 뇌졸중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활동 및 가사를 요양보호사들이 돕는 곳이다. 세면, 배설, 목욕, 조리, 세탁 등을 지원하고 노인복지법에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비용이 나간다. 진료나 약을 통해 건강 유지가 가능하고 재활이 필요하지 않은 분들이 대상이다.

이번 추석에도 요양병원-시설의 면회실은 두터운 유리벽에 가로 막혀 있을 것이다. 가족 간의 대화도 유리벽 건너의 마이크를 통해 해야 한다. 코로나 감염 예방 때문이다. 당연히 그리운 가족의 손도 잡을 수 없다. 명절의 가장 ‘비극적인’ 장소가 바로 이곳일 것이다. 재활치료나 돌봄이 필요해 찾은 곳인데, 감염 불안에 떨며 추석을 보낼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국회, 정부의 관계자들에게 호소한다. 요양병원-시설의 대면 면회만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곳은 코로나 유행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폐렴 등 감염 위험이 매우 높은 곳이다. 전반적인 위생 상태와 관리 기준을 면밀히 살펴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 요양병원-시설이 ‘안전한’ 곳이 되면 늙은 어머니가 입원하는 날,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가족들이 자주 들러 마음 놓고 웃고 떠드는 곳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할머니, 어머니들이 요양병원-시설을 ‘거기’로 부르며 두려움에 떨게 해선 안 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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