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6.25동란의 의인이었던 ‘배신자’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537호 (2022-08-29일자)

임진왜란과 6.25동란의 의인이었던 ‘배신자’

영화 ‘한산’에서 항왜(降倭) 무인 준사(김성규 역) 이야기도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지요?

준사의 모델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군대의 선봉장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조선에 귀순한 사야카(沙也可)일 겁니다. 그는 전쟁 초기에 조선 백성이 늙은 부모를 등에 업고 피난 가는 모습에 감명받아 “의롭지 못한 전쟁에서 동방예의지국 조선의 백성이 되려고 한다”며 자진귀순해 조선을 위해 싸웁니다. 왜란 때뿐 아니라 전후에도 계속 무공을 쌓아 김해 김씨의 성을 받은, 김충선입니다. 김충선을 일본의 배신자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1950년 오늘(8월 29일)은 국군과 미군이 인민군과의 다부동 전투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날이지요. 자유 대한민국의 운명을 지킨 이 전투에서도 귀순한 무장이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바로 인민군 제13사단 포병대대장 정봉욱 중좌(중령)였습니다.

정봉욱은 황해도 출신으로 중국 팔로군 소속으로 항일전쟁에 참전했으며 해방 후엔 평양군관학교를 나와 포병장교로 임관했다 6.25 동란에 참전합니다. 그는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꼈고 당 간부인 정치군인이 야전군인을 감시하는 분위기에 숨막혀했습니다. 다부동 전투 중 사단장이 작전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자 격렬히 항의한 뒤 처형 위험을 감지하고 부대원들과 함께 귀순합니다. 그가 보따리에서 풀어낸 정보들은 일진일퇴의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전쟁 중 특별임관된 정봉욱은 잇따라 무공을 세웠으며 전후에는 제7사단장, 제3사관학교 초대교장, 논산훈련소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군 발전에 기여합니다.

그는 헌병대 장교에게 일반 병사와 똑같이 구보를 시켰으며 보안대 장교나 군사가 사복을 입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병사의 식사가 부실한지 늘 챙겼으며 겨울철 막사 온도가 18도 이하로 떨어지면 중대장을 혼쭐냈습니다. 헬기를 타고 연병장을 내려다보다 구타나 가혹한 얼차려가 있으면 지휘관에게 엄벌을 내렸습니다. 훈련소를 떠나는 기차 안에 들어와 병사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안아줬습니다. 그는 평소 “공산주의를 이기려면 가진 자가 베풀어 그렇지 못한 이들과 나눠 가져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정봉욱은 “군대가 썩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신념을 가진 군인이었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 누군가 뇌물을 받으면 어김없이 영창에 넣었고, 비리의 온상이었던 술 문화도 없앴습니다. 부인이 군용 지프를 타고 시장에 간 것을 알고는 부인을 영창에 넣었다가 다음날 풀어준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분도 북한 입장에서 배신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요즘 배신자(背信者)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입니다. 단지 자기 편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선 배신(背信)을 ‘신의를 저버림’으로 정의합니다. 따라서 의롭지 않은 곳, 신뢰가 없는 곳에는 배신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오히려 ‘가짜 배신자’들이 사회가 올바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의’를 위해 김충선이나 정봉욱처럼 기꺼이 배신자의 굴레를 쓸 수 있나요? 최소한 ‘배신자’라는 말을 아무 의미없이 하지는 않겠지요?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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