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삼식이’? 아내와 종일 같이 있는 것도 고통

[김용의 핼스앤]

갱년기 증상으로 감정의 변화가 심한 중년부부는 남편, 아내를 넓게 감싸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사진=게티이미지]

지난 번 [김용의 핼스앤]에서 퇴직한 남편을 ‘삼식이’이라 표현한 것에 적지 않은 분들이 불만을 표시했다. 삼식이는 집에서 아내가 차려주는 세끼(삼식)를 먹는 남편을 말한다. 긴 글로 꾸짖은 분도 있었다. “힘들었던 직장에서 퇴직해 이제 좀 쉬고 있는데, 삼식이가 뭐냐”고 질타했다. “요새 누가 아내에만 의지해 세끼를 먹느냐” “정년퇴직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아 외출을 자주 한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내가 차려 먹는다” 등 여러 의견을 보내주셨다. 나도 직장을 옮기면서 상당 기간 집에서 머문 적이 있어 이 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삼식이’라는 시중의 언어를 함부로 쓴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다만 ‘삼식이’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어 불가피하게 사용했다는 해명을 드리고 싶다. 40~60대 부부들의 현실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말이다. 남편처럼 은퇴 없이 계속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중년 아내의 불만이 ‘삼식이’이란 세 글자에 녹아 있다. 황혼을 향해 달려가는 중년 부부들의 바람직한 처신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표출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퇴직 후 집에서 있는 게 불편한 남편이 적지 않다. 엄연히 내 집인데 마음이 편치 않다. 30년 이상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했지만 쉬고싶다는 말도 제대로 못한다. 아침을 뚝딱 먹은 후 외출을 하는 중년 남자들이 많다. 등산, 운동, 모임을 빙자해 직장인처럼 ‘출근’하는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내와 종일 같이 있는 게 스트레스라는 하소연이 적지 않다. 부부가 하루 종일 한 공간에서 부대끼면 두 사람 모두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자영업을 하는 어느 부부는 “우리는 1년 내내 24시간 같이 있다”고 알듯모를 듯한 쓴웃음을 짓는다.

중년의 아내도 ‘가사 퇴직’을 하고 싶다. 평생 해온 밥짓기와 설거지가 싫어질 때가 있다. 남편의 퇴직 시기는 공교롭게도 아내의 갱년기와 맞물려 있다.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도 갱년기 증상 중 하나다. 이럴 때 “밥 달라”고 외치는 남편이 싫어질 때가 있다. 30년 이상 고생한 남편을 안쓰러워하던 마음이 어느 순간 “삼식이…”을 되뇌인다.

지난해 이혼한 부부 10쌍 중 4쌍 정도가 결혼한지 20년 이상된 사람들이다. 이른바 황혼이혼이다. 1990년만 해도 전체 이혼 건수의 5.1%에 불과했던 황혼이혼은 매년 늘어나 지난해에는 38.7%나 됐다(통계청 자료). “애들 때문에…” “주위의 시선이…” 이런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이혼을 흘겨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다 재산분할에서 여성 몫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고 이혼을 결행하는 것이다. 남편도 ‘자유인’을 꿈꾼다. 산에서 혼자 사는 방송 프로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이심전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혼은 사별만큼이나 정신적 충격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우울증을 겪는다. 경제적인 타격도 엄청나다. 나이들어 이혼하는 경우 재산분할이 쟁점이다. 결혼기간이 길수록 부부 양쪽에 비슷한 재산이 배분될 수 있다. 집도, 연금도 나눠야 한다. 큰 기업인 출신이 아니라면 생활수준이 크게 떨어질 정도다. 황혼이혼은 남성에게 더 악영향을 미친다.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의 기본이 흔들릴 수 있다.

이혼 후 얼마간 ‘자연인’처럼 살던 A씨(58)는 몇 개월 전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엉덩이뼈(고관절)가 부러져 3개월이나 입원해야 했다. 거동이 크게 불편하니 간병이 필요했다. 이혼한 아내와 자녀는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산다. 아프다고 갑자기 연락할 수 없는 일… 처음엔 나이 든 친누나가 와서 간병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직업 간병인을 썼지만 “혼자 살면 아플 때가 가장 문제”라는 말을 절감했다. 중년 부부는 부모님의 간병과도 마주한다. 부부 불화에 이혼까지 겹치면 부모님의 간병비 부담도 버겁다.

중년 부부는 ‘이해와 소통’이라는 교과서 같은 얘기가 매우 중요하다. 남녀 모두 성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감정이 요동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평소의 남편, 아내의 모습이 아니라면 갱년기 증상을 의심해야 한다. 성호르몬 부족으로 자신도 모르게 짜증, 신경질 등 감정의 변화가 심하다. 남편도 심하게 갱년기를 앓을 수 있다. 이를 이해 못하면 큰 부부싸움으로 번진다.

남편도 요리, 청소 등 가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아내를 돕는 게 아니라 분담해야 한다. 퇴직 후 어느 정도 쉬었다면 아내에게 ‘가사 임시 퇴직’을 배려할 수 있다. 갱년기로 힘든 아내에게 밥짓고 설거지하는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은퇴 남편은 외부활동이 필수다. 운동, 봉사 모임을 통해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는 질병관리청의 치매 예방 매뉴얼에도 나온다. 바깥에서 바둑, 장기를 두거나 악기, 외국어를 배우면 두뇌 활동에 도움이 된다. 부부가 자신 만의 공간(방)을 두는 것도 좋다. 필요에 따라 각방도 쓸 수 있다.

사고가 나거나 크게 아플 때 ‘부부의 존재’를 절감한다. 90세, 100세 시대다. 장수인들의 필수요건에는 낙천적 성격이 꼭 들어간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중년들에게는 남편, 아내를 넓게 감싸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앞으로 20~30년을 더 같이 할 인생의 파트너 아닌가.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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