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의 시작과 끝, “병원 가도 수술 의사 없으니..”

[김용의 핼스앤]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등 ‘국가 안전망’ 손질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술할 의사가 없어 숨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요양병원-시설이란 단어에 나이 든 치매 환자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뜻밖에 50~60대 뇌졸중 환자들도 적지 않다. 뇌출혈, 뇌경색 등 혈관질환 후유증으로 몸의 한쪽 부분이 마비되거나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분들이다. 말도 어눌해 소통에 지장이 있다. 시중들 사람이 필요하지만 집에서 간병이 쉽지 않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양병원-시설에 들어온 것이다.

뇌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뇌경색) 터지면(뇌출혈) 그 근처 뇌 영역이 손상될 수 있다. 뇌세포는 한 번 망가지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빠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치료가 늦으면 몸의 마비 등 후유증이 심해진다. 수술하는 의사의 역할이 막중하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이후 뇌혈관 외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의 열악한 현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병원 동료’인 37세 간부 간호사가 뇌출혈로 위급한 상황에서 수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사망한 것이다. 국내 최대 병원조차 의사 부족으로 수술을 못했다는 소식에 “다른 병원은 오죽하겠냐”는 한탄이 나왔다. 하지만 국내 전체 필수의료의 문제를 짚기에 앞서 ‘최고’를 지향하는 서울아산병원의 흐트러진 시스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의료계가 ‘돈 잘 버는’ 분야 위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반면에 ‘장사 안 되는’ 분야는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 중소병원, 개인병원을 가리지 않는다. 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불편으로 이어진다. 불편을 넘어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병원도 경영을 통해 이익을 남겨 급여를 지급해야 하니 ‘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이런 행태가 과도하다. 정부가 나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밤 중에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치료 받기가 쉽지 않다. 소아청소년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는 곳은 전국 96개 종합병원 중 37곳뿐이다. 아이들은 고열 등 위급한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골든타임이 매우 짧다. 빠른 치료가 중요하지만 의료 여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코로나 환자라면 격리 병실이 없는 경우 응급실 입실 자체가 안 된다. 내 아이가 고열 등으로 생명이 위태로워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 현상으로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는 젊은 의사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3년 새 74%에서 27%까지 가파르게 추락했다. 미래가 암담하니 젊은 의사도, 병원 CEO도 소아청소년과를 멀리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은 소아청소년과를 더욱 막다른 길로 내몰았다. 감염 등을 이유로 병원을 찾지 않으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이른바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환자 생명을 살리고 중병을 고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분야다.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내외산소) 등이다. 드라마에서 심장수술을 하는 ‘멋진’ 의사의 대표 격인 흉부외과는 이미 의사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다. 힘들고 위험이 크지만 ‘돈벌이는 잘 안 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심장병 환자는 늘고 있는데 수술 의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흉부외과를 기피해 은퇴하는 의사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아산병원 사건으로 주목받은 신경외과의 경우 젊은 의사가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너도나도 돈이 되는 ‘척추’ 전공으로 몰리고, 어렵고 힘든 뇌혈관 개두술 분야는 기피하고 있다. 척추 전공은 개인병원을 차려도 선방하는 곳이 많다. 반면에 뇌혈관 수술 전공은 개원도 쉽지 않다.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어렵사리 개원을 해도 위험한 분만은 피하고 아리송한 ‘여성 전문’을 표방하는 병원이 적지 않다.

최근 필수의료에 대한 의료수가 인상, 의사 수 부족 현상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지만 상황이 심상찮다. 이러다간 ‘국가 안전망’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재해에 대비해 국가 안전망을 정비하듯이 필수의료 시스템 전반을 살펴보고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내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달려가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 한 밤 중 거리를 헤매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주사, 수액만 맞아도 나아질 수 있는데 코로나 격리 병상이 없으면 응급실에 들어갈 수 없는 사례도 있다. 뇌졸중의 경우 수술이 늦으면 몸의 마비 등 후유증이 심해진다. 이는 간병, 요양 비용 증가로 이어져 간병하는 가족들의 삶이 피폐해 질 수 있다. 이런 것을 막는 게 국가 안전망이다. 안전망(安全網)은 위험 등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조직과 시설 체계를 말한다.

최근 보건의료 전반의 안전망에 경고등이 켜졌다. 경고등이 아니라 빨간불이다. 국회. 정부 차원에서 서둘러 안전망을 손질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구멍이 커질 수 있다. 오늘도 한 밤 중 병원 문턱도 못 넘어 눈물 흘리는 환자와 가족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것인가.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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