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남편, 시누이, 요양병원.. 중년여성의 눈물

[김용의 헬스앤]

간병인의 경우 법정의무교육이나 직무교육체계가 아예 없어 간병 수준이 개인 역량에 맡겨진 상태다. [사진=게티이미지]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문제를 놓고 남편, 시누이와 갈등을 빚고 있어요.”

중년 여성의 고민 중 하나가 부모님의 건강 문제다. 특히 고령의 시부모가 치매, 뇌졸중(뇌출혈-뇌경색)을 앓으면 간병 문제로 속을 끓인다. ‘효자 남편’은 집에서 간병을 원하고 시누이도 간섭이 심하다는 하소연이 자주 전해진다.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실 수 없다는 효자, 효녀의 효심을 나무랄 수는 없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절반이 요양병원-시설에서 나왔다. 하지만 남편, 시누이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간병은 오롯이 며느리의 몫이다. 간병인을 쓰면 비용이 한 달에 400만 원에 육박해 중소기업 부장인 남편 월급으론 언감생심이다. 남편은 퇴근하면 시어머니가 누워 계신 방을 잠깐 들여다 본 후 이내 거실에서 TV만 본다.

중년의 며느리는 ‘간병하다 골병 든다’는 말을 실감한다. 시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다 허리를 삐끗해 매일 파스를 붙이고 산다. 갱년기 증상까지 심해져 몸은 늘 파김치다. 치매 시어머니 걱정에 외출도 마음대로 못한다. 자식들을 겨우 키워 놓았더니 부모님 간병으로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격이다.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 요양병원 얘기를 꺼냈더니 “나를 불효자로 만들 셈이냐”고 언성을 높인다. 요즘 요양병원-시설은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얘기도 한다, 시누이는 전화로 “요양병원은 위험하다”는 말만 늘어 놓는다.

위의 이야기는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적지 않은 중년 부부들이 겪는 현실이기도 하다. 투병 중인 노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문제를 놓고 상당수의 가정이 갈등을 겪는다. 간병비를 대기 위해 집까지 팔았다는 얘기도 이제 낯설지 않다. 간병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발등의 불이다. 중년, 노년 부부의 노후를 위협할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연금 개혁처럼 주목받진 않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정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직업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양분되어 있다. 노인요양보호사는 한국인, 간병인은 중국동포가 대부분이다. 요양병원 환자들은 대부분 병실당 한 명의 간병인을 두고 간병비를 분담하고 있다. 간병인 한 명이 6~8명의 환자들을 돌보는 형태다. 고용노동부가 펴낸 ‘가사돌봄 시장의 인력수급 현황 분석 및 외국인력 고용 등에 관한 연구’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국내 간병인 종사자는 2017년 16만 명에서 2021년 27만 명으로 4년 만에 11만 명이 늘었다.

그럼에도 현재 실제로 활동하는 간병인은 오히려 감소했다. 코로나 유행으로 본국으로 돌아간 중국동포 간병인들이 많고 남은 간병인들도 감염 공포로 꺼려해 활용 가능한 인력이 크게 모자란다. 최근 간병비가 치솟고 있는 것은 간병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이를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외국인 간병인이 갈수록 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간병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간병을 제대로 하면 업무 강도가 높고 스트레스도 심하다. 환자가 넘어져 다치면 간병인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어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물론 불성실한 간병인도 있어 환자가 이중의 고통을 겪게 한다.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는 성실한 간병인을 찾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간병인은 힘들고 박봉인 탓에 한국인은 점차 줄고 중국동포가 자리를 채우고 있다. 보호자들은 간병비 부담으로 허리가 휠 정도다. 병원비보다 간병비가 더 무섭다는 얘기가 나온다. 헌데 간병인들은 최저 임금도 못 받는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적지 않은 간병비가 지출되는 데도 환자 가족도, 간병인도 만족하지 못하는 묘한 구조인 것이다. 이는 간병인 소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간병인 소개소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간병인을 채용하다 보니 중간에서 수수료가 발생하고 이는 보호자, 간병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인 간병인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방문취업 외국인은 개인에게 고용돼 개인 간병만 할 수 있다. 병원 등 의료기관 취업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국가의 시스템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법정의무교육이나 직무교육체계가 아예 없어 간병의 질적 수준이 개인의 역량에 절대적으로 좌우되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간병인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개인들에게 맡겨두기에는 간병 이슈가 너무 커졌다. 모두에게 불만인 간병 수준, 비용 구조를 언제까지 끌고 가야 할까? 보호자, 간병인 모두가 불만을 토로하는 현 상황은 사회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정부는 외국인 간병인이 갈수록 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인 간병인들이 계속 줄고 있는 상황에서 간병이 필요한 치매, 뇌졸중 환자는 늘고 있다. 결국 외국인 간병인 위주의 현실을 직시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에 체류 중인 재외동포, 영주권자, 결혼이민자 등을 적극 활용하고 외국인의 국내 취업 범주에 간병 분야를 넣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활용 가능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평균수명은 늘고 있지만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은 이에 못 미치고 있다. 노인들은 오래 살아도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린다. 치매, 뇌졸중 환자가 아니더라도 간병이 필요한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간병 문제를 좁히지 못하면 가정의 비극이 국가적 비극으로 확대될 수 있다. 안정된 노후는 연금만으론 보장할 수 없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시대다. 정부가 나서 간병 시스템을 구축하고 간병비 부담도 덜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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