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31호 (2022-07-18일자)

사람이 주인인가, 돈과 집이 주인인가?

길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때로 멈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사람은 과연 이성의 동물일까, 침팬지나 돌고래보다 이성적일까? 이성적으로 사유하는데, 왜 우리가 만든 것들에 사로잡혀 이토록 괴로워할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빌린 이성(理性)의 목소리로 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2022년 대한민국 서울에 있다면 돈이 최고 잣대인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이성적으로 설명할까? “내 벗인 죽음이여, 어서 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란 유언을 남기고 향년 49년로 세상을 떠난 지 49년만인 1324년 오늘(7월 18일), 교황 요한22세로부터 시성(諡聖)된 아퀴나스는 돈을 신(神)으로 모시는 세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아퀴나스는 《진리론》의 ‘악에 관하여’에서 “부(富)는 유용성이 목적의 전부이지만, 누구나 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고 했지요. 그 보편성이 사람을 소외시킬 만큼 절대적으로 변모할지 13세기에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교황 요한22세는 아퀴나스가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고 시성의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그만큼의 기적을 행한 것”이라고 일축했는데, 아퀴나스가 지금 태어났다면 돈이 주인이 되는 문제를 쾌도난마로 풀었을까요?

타박타박 길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때로 멈춰 옛 기억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10여 년 전 서울의 한 최고급 주택 거주민이 한 말, “우리는 서민이어요. 우리 재산은 다 합쳐서 700억 원 밖에 안되는데, 윗집은 2000억 원이 넘어요. 우리보다 훨씬 행복해요.”

돈이 3배 더 있으면 3배 더 행복할까? 거래가 60억원짜리 아파트에서 살면 전세 6000만원 빌라에서 사는 것보다 100배 더 행복할까, 60평 아파트에 살면 20평 아파트에 살 때보다 3배 더 행복할까?

페라리나 벤틀리를 운전하면 경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과연 더 행복할까요? 최고속도 340㎞/h 페라리를 몰면 스쿨존투성이의 서울시내에서도 가슴이 뻥 뚫리게 시원할까요? 과속, 난폭 운전하는 벤틀리 운전자가 은은한 향기에 상쾌한 음악으로 채워진 중소형차를 안전하게 모는 운전자보다 마음이 더 푼푼할까요?

왜 더 많은 돈, 더 비싼 집, 더 비싼 차가 없으면 불안해할까요? 죽을 때 갖고 가는 것도 아니고, 유산이 자녀에게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닌데, 죽기 직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아등바등할까요? 우리 대부분이 20년 전, 10년 전보다 훨씬 풍요롭게 됐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할까요? 왜 오늘도 한갓 금속이나 종이에 불과한 돈 때문에 일가족이 소중한 생명을 던져야 할까요, 체면만 버리고 살 길을 찾으면 그 길은 반드시 있는데….

20세기 중반에 사상가들이 예언한 대로 세상은 도구가 목적을 누르고, 숫자가 지배하고, 사람이 소외되는 세상이 된 것일까요? 1차원적 인간이 무리를 이뤄 당연한 질문을 던지는 소수를 놀리는 세계가 된 걸까요? 에리히 프롬의 우려대로 소유가 존재를 압도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사람은 속이 비어 있을수록 외형에 집착하고, 불안할수록 소유에 매달린다고 설명하지요. 현대사회는 불안하고, 특히 전쟁과 급속한 성장을 경험한 대한민국은 더욱 더 하겠지요. 그러나 ‘이성의 사도’가 시성된 오늘 같은 날이라도 돈과 집에 대해서, 그것이 내면의 행복에 어느 만큼 중요한지, 함께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길을 걷다가, 가끔씩 잠시 멈춰서, “젊었을 때는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줄 알았는데…, 늙어보니, 정말 그렇더라”는 속물 세상을 향한 오스카 와일드의 매운 풍자가 속뜻 대신 외형만 진리처럼 통하고 있는 세상에서 묻습니다.

분명, 돈은 잘 쓰라고 존재하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부의 정도가 행복과 결코 정비례하지는 않는 것은 명쾌한데,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부를 어떻게 소유해야 할까, 맹자의 말마따나 ‘가난해도 유혹에 안 흔들리고 부귀해도 음탕하지 않는(貧賤不能移, 富貴不能淫),’ 대장부로서 부(富)를 오로지 도구로 멋지게 사용할 정도의 큰 정신을 가지려면 나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오늘도 유혹에 흔들, 흔들거리는 나를….


11개 댓글
  1. 대장부

    가난해도 유혹에 빠지지않는 대장부보단
    부귀해도 음탕하지 않는 대장부가 될래요,

  2. 최주엽

    너무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3. 777

    멋진 글입니다

  4. 뭣이 중헌지를 생각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바 입니다~

  5. 익명

    돈은 남에게 빌리러 갈 수준만 아니면 된다고 봅니다.

    1. 익명

      공감합니다

  6. 중석

    필요악 이 돈이라고 생각됩니다, 있으면 편하지만 없으면 못 사는 것이니까요

  7. 익명

    애초에 죄로 상실된 마음을 하나님 아닌 피조물이나 그로 비롯된 사상들로 채우기 위함이 아닐까?

  8. 조기연

    돈에 집착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필요한 정도에 만족하는 삶이 행복하겠지요.
    욕심이 화를 부릅니다.

  9. 김용기

    그렇게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바로 현실이 그러한데 스승은 어디에 있을까요 ?

  10. 거름

    요즘 교사는 스스로 선생님이기 보다는
    책임감 없이 학원에 강의하는 사람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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