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프로골퍼, 작가 키운 어머니의 눈물

[김용의 헬스앤]

미술 작가 겸 배우 정은혜는 최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발달장애인 연기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실제 발달장애인이다. [사진= tvN 캡처]

“내가 오래 살아서 더 뒷바라지해야 하는데…”

발달장애 자녀를 둔 중년의 어머니는 가끔 혼잣말로 이렇게 모성애를 표현한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일 것이다. 자신이 아프면 자녀가 어려운 상황에 빠질까 늘 마음 졸인다. 어머니들이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은 본인보다 자녀의 미래 때문이다.

발달장애란 어느 특정 질환이나 장애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언어, 인지, 운동, 사회성 등이 또래에 비해 크게 느려서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태다. 최근 발달장애,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도 세계 10대 경제강국 수준에 맞는 장애인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이다. 성인이 돼서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직업’이 있으면 더욱 좋다. 돈도 필요하지만 장애의 굴레를 벗어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주목 받은 발달장애 프로골퍼 이승민과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의 스토리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 발달장애 작가 겸 배우 정은혜, TV 드라마에서 발달장애인 연기하다

작가 겸 배우 정은혜(32)는 최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발달장애인 연기로 큰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발달장애를 가진 그는 본업이 캐리커처 작가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 ‘니얼굴’에도 주인공으로 나왔다. 이 영화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제12회 광주여성영화제 초청,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 우수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독립·예술영화 예매율 1위를 달리기도 했다.

정은혜 작가는 “세상에 안 예쁜 얼굴은 없다”고 말한다. 이런 마음으로 사람 얼굴을 그린다. 개성있는 그림체로 인기를 끌고 있다. 6년 전 어깨 너머로 캐리커처를 배워 벌써 4천 명의 얼굴을 그려냈다. 그림을 만나기 전 그는 집의 골방에서 하루 종일 뜨개질과 TV 시청으로 소일하던 평범한 발달장애 소녀였다. 그의 표현대로 갈 곳이 없어 매일 ‘동굴’ 속에서 살았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골방에서 나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바깥에서 받은 불편한 시선들은 고스란히 상처가 됐고 밤마다 눈물 흘리는 시간이 잦았다.

정은혜는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 ‘니얼굴’의 주인공으로 나왔다. [사진= 영화사 진진]
◆ 어머니, 자신의 일 접고 딸 집중 지도… 인기작가 반열에 오르다

그가 동굴 속에서 빠져나온 것은 어머니의 힘이었다. 미술 작가인 어머니가 운영하는 경기도 양평 화실의 구석에서 처음 그려본 그림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어머니 장차현실 씨는 딸의 재능을 확인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 딸이 그림 재능이 있구나…”

어머니는 자신의 일을 잠시 접고 딸을 집중적으로 지도했다. 딸은 일약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그림으로 돈도 벌고 전시회도 연다. 개성이 뚜렷한 그의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일감이 밀려 ‘야근’을 할 정도다. 어머니는 “전시회보다 ‘은혜 씨’가 활동하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을 작가로 인정해 ‘은혜 씨’로 부른다. 은혜 씨는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나‘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림 하나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확장하고 있다. 예전에 혼잣말 하던 버릇도 없어졌고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존감도 끌어올렸다.

그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발달장애인의 아픔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실제 발달장애인이기에 가능한 연기였다. 그는 “거리에 나가면 남학생들이 사인을 요청한다”고 했다. “그 놈의 인기가…” 라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쾌활한 성격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한다. ‘장애’ 란 말을 감히 쓸 수 없을 정도로 구김살 없는 표정과 언행이 관심을 끈다.

◆ 어머니, 주위의 눈총 속에서도 발달장애 프로골퍼 키워내다

프로골퍼 이승민(25)은 두 살 때 선천적 자폐성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중학생이 돼서도 5~6세 정도의 지능을 보였다.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걸 두려워 하는 자폐증 증상이 지속됐다. 그런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골프장을 구경한 후 “나 이거 하고 싶어!” 외쳤다. 어머니 박지애 씨는 그 때 결심했다. 아들이 처음으로 말한 ‘희망’을 지켜주기로.

천신만고 끝에 중·고교 골프대회에 나가면 주위의 눈총도 받았다. 발달장애로 경기 진행 속도가 느려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죄송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포기할 순 없었다. 골프 때문에 아들이 골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골프를 중단하면 다시 골방에서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 위험이 있었다. 어머니는 언론 인터뷰에서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온 몸으로 막아서 아들이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발달장애 프로골퍼 이승민은 최근 SK텔레콤 오픈에서 컷 통과하고 공동 62위에 올라 주목받았다. [사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
◆ 어머니의 헌신… 국내 정상급 기량에 발달장애 증상도 호전

이승민은 마침내 2017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프로(정회원) 자격을 따냈다. 소속사(하나금융그룹)도 있는 프로선수가 됐다. 그는 최근 SK텔레콤 오픈에서 컷 통과하고 공동 62위에 올라 주목받았다. 자폐성 발달장애 3급인 그가 지금까지 코리안투어 18개 대회에 나가 두 차례 컷 통과했다. 이는 대회에 나온 정상급 선수 150명 가운데 60등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대단한 성과다.

어머니는 아들과 언제나 동행한다. 집에서도 아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잠을 청한다. 다음날 아들보다 일찍 일어나 그날 뒷바라지할 것을 챙긴다. 아들이 대회에 출전하면 거의 하루 종일 기다리며 기도한다. 이승민은 골프를 하면서 발달장애 2급에서 3급이 됐다. 증상이 좋아지고 말하는 능력도 향상됐다. 어머니의 헌신이 아들이 국내 정상급 골프선수로 거듭나고 발달장애 증상까지 호전시킨 것이다.

◆ 제2의 정은혜, 이승민 나오길 기대… 차별 거두고 자립 지원 절실

정은혜, 이승민 두 사람 외에도 전국의 수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자립을 위해 지금도 땀을 흘리고 있다. 자립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발달장애 뒷바라지를 위해 부모가 더 오래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걱정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청소년기 때부터 자립하려고 노력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적지 않다.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장애인을 향한 불편한 시선과 열악한 환경에 좌절한다. 돈만 있으면 아이를 외국에 보내고 싶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장애 자녀를 위해 외국 이민을 떠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답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거두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자립의 토대를 지원해야 한다. 최근 발달장애인이 크게 늘고 있다, 내 가족 중에도 발달장애인이 생길 수 있다. 국회, 정부 뿐 아니라 국민들도 따뜻한 시선으로 도와야 한다.

발달 장애인 뒤에는 온갖 마음고생과 고단한 일상을 감내한 어머니들의 눈물이 서려 있다. 지금도 발달장애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힘든 하루를 보낸 어머니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에게 “언제나 응원합니다. 그 헌신과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제2의, 제3의 정은혜, 이승민이 나오길 기대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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