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코로나19 환자, 변이 바이러스 키운다” (연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알파와 오미크론 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러 변이가 만성적 증상을 앓는 장기 코로나19 환자를 인큐베이터로 삼아 진화했을 수 있다고 과학전문지《네이처》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오스트리아의 바이러스학자 시시 존라이트너는 2020년 말 코로나19에 감염된 이후 피로감과 기침 등의 증세가 7개월 이상 지속된 60대 여성에게서 24개 이상의 바이러스 샘플을 채취해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거기서 22개의 돌연변이를 포착했다. 대략 절반은 수개월 뒤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오미크론 변이에서 발견됐다. 존라이트너는 “오미크론이 발견되었을 때, 우리는 놀라운 순간을 보냈다“며 ”우리의 변이에는 이미 그러한 돌연변이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오미크론은 이 여성의 감염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여성의 바이러스는 다른 누구를 전염시키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별 사례의 연관성은 없지만 그녀의 경우와 같은 만성적 감염이 오미크론을 비롯한 여러 코로나19 변이의 기원의 주요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라빈드라 굽타 교수(바이러스학)는 “나는 이것(장기 코로나19)이 새로운 변종의 원천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사람에서 사람으로 더 쉽게 퍼지거나, 면역 반응을 회피하거나, 위중증을 유발하거나 증세를 완화하는 능력을 진화시킬 수 있는지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한 성질의 일부 또는 전부가 만성적 감염과정에서 형성될 수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아프리카보건연구소 알렉스 시갈 연구원(바이러스학)은 “한 명의 개인 안에서 그러한 진화가 이뤄질 수 있는지 없는지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2019년 말부터 과학자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로부터 1100만 개 이상의 코로나바이러스 샘플의 게놈의 염기서열을 분석해왔다. 이를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동하면서 매달 두어 개의 안정적 돌연변이를 획득하면서 지구상에서 어떻게 진화해갔는지에 대한 가계도를 그려 나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개개인의 감염은 세포에서 세포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그들만의 우주라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사라 오토 교수(진화생물학)는 설명했다. 그중 어떤 돌연변이는 다른 버전의 바이러스보다 바이러스의 확산능력을 향상시키거나 면역방어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감염성과 면역 회피라는 이 두 가지 특성은 2019년에 처음 나타난 이후 코로나바이러스 진화를 끌고 온 양대 동력이다.

코로나19는 일반적으로 면역체계에 의해 제거되기까지 1~2주 정도만 지속된다. 그래서 그런 이점을 지닌 돌연변이가 발생한 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를 물리칠 시간이 거의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도 그만큼 적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감염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바이러스 입자는 단 몇 개만으로도 가능하다. 미국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의 진화생물학자 제시 블룸은 “누군가 우연히 당신 곁을 지나갈 때 당신이 재채기하면사 분출한 에어로졸 방울에 어떤 바이러스가 들어있느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당신 체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에게 유리한 대부분의 돌연변이 효과는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평균 매달 약 2개의 돌연변이만 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전염 병목 현상’ 때문이다. 그러나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지속되는 장기 코로나19에서는 유리한 돌연변이를 가진 바이러스는 다른 바이러스를 제압하고 대다수를 차지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장기 감염은 또한 훨씬 더 많은 바이러스 다양성이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또 한 코로나바이러스 입자의 게놈이 뒤섞이는 재조합이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상부기도 같은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 유리한 돌연변이가 다른 유용한 특성을 지닌 바이러스에게도 생겨날 수 있다고 영국 에든버러대의 앤드루 램보 교수(진화생물학)은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경쟁우위를 지니게 된 바이러스가 세계적 유행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성적인 감염의 결과로 코로나바이러스는 단지 한 방향으로, 한 방향으로만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수개월에 걸쳐 수천, 수만 개의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이라고 오토 교수는 덧붙였다.

어떤 두 만성 감염도 동일하지 않지만 수십 건의 사례 보고에서 장기 감염의 흔한 징후를 식별할 수 있게 됐다.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바이러스를 세포에 감염시키고 신체의 면역 반응의 주요 표적이 되는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많은 수의 아미노산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라고 오토 교수는 말했다.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발생하는 이런 돌연변이는 결국 면역회피 능력을 강화해준다.

2020년 말 영국에서 확인된 알파 변이는 만성 감염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되는 최초의 변이이다. 물론 알파가 생쥐, 쥐, 밍크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에게서 진화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올해 3월 에든버러대의 램보 교수와 베리타 힐 교수가 발표한 논문은 만성 감염이 알파의 가장 유력한 원인임을 시사한다. 그들은 알파가 영국에서 처음 발견되기 두 달 전인 2020년 7월 영국 남동부 지역의 코로나19 환자에게서 채취한 바이러스에서 알파의 중간 버전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만성감염자들에게서 알파로 진화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며 확산됐을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만성감염으로 인한 돌연변이의 조합은 오미크론에서도 볼 수 있다. 많은 중복 돌연변이가 있는 여러 하위 계통을 포함하는 이 변이는 이전에 발견된 면역회피와 감염성 증가와 관련된 유전적 변화로 가득 차 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대의 대런 마틴 교수(진화바이러스학)는 대부분의 국가의 오미크론 파동을 일으킨 BA.1 아변종에서 과거 개별적으로 거의 볼 수 없었던 13개의 스파이크 돌연변이가 한꺼번에 발견된 점에 주목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만성 감염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오미크론의 또 다른 특징인 증세 완화도 만성 감염의 결과일 수 있다고 굽타 교수는 설명했다. 오미크론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증세는 폐에 있는 세포가 아니라 상부기도에 있는 세포를 감염시키는 것을 선호한 결과다. 이는 아마도 상기도와 하기도에 능숙하게 감염시킨 변이에서 진화했을 것인데 한 사람의 몸에서 수개월을 보낼 때 발생한 진화의 산물일 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만성 감염 중에 복용하는 항바이러스제나 다른 치료법도 바이러스의 진화에 한몫을 할 수 있다. 만성 감염 환자 내 코로나비이러스가 팍스로비드와 몰누피라비르 같은 코로나19 단일클론항체 치료제에 대한 내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데이비드 호 교수(바이러스학) 연구진의 미발표 실험에 따르면 만성 감염환자의 코로나바이러스는 장기 복용되는 팍스로비드에 대한 내성을 획득하기 위한 수많은 진화경로를 모색한 끝에 실험실에서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만성 감염에 대해선 이런 단일클론항체 치료제보다 코로나19에서 회복한 혈장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공중보건대의 아르투로 카사데발 석좌교수(미생물학)는 다양한 항체를 많이 함유한 혈장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적이어서 일부 의사들은 이미 면역체계가 손상된 사람들 치료법으로 혈장 투여를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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