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진료실에 한꺼번에 환자 세 명씩 들어가면 인권침해(?)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학병원 외래 진찰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너무 많은 외래환자가 예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병원에 따라 외래 예약환자 수를 한 세션(진료를 보는 오전·오후 구간)에 40~50명까지 제한하는 경우도 있지만 넘쳐나는 환자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소위 명의로 알려진 교수의 경우 한 세션에 100명이 넘는 경우도 흔하다.

짧은 외래시간에 많은 환자들을 보기 위하여 대학병원은 여러 꼼수들을 사용하고 있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것이 외래 진찰실을 1개가 아닌 2~3개 정도 열고 각 방에 간호사나 전공의가 대기하면서 외래 준비를 하고 교수는 각 방을 왔다갔다하면서 환자를 진료한다. 이러면 환자 외래진료 준비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하지만 환자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해당 교수에게 물어보지 못한다. 교수는 자신이 필요한 말만 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환자는 결국 각 방에 상주하는 간호사나 전공의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외래 진찰실을 한 방만 여는 대신 환자들을 한번에 한 명이 아닌 3~4명이 들어오도록 한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환자들이 들고나오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환자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뒤에서 기다리는 다른 환자의 눈치 때문에 물어보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런 진료방법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진정인은 OO대학병원의 산부인과 진료를 보았는데, 진료실에 환자 3명이 1미터 간격으로 앉아 순서대로 진료를 받았다. 모르는 환자 3명이 함께 앉아 있기 때문에 진정인의 병명과 치료방법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다. 다른 환자가 내진실 진료대에서 내진을 받고 있는 동안 다음 환자는 내진실과 커튼으로 분리된 탈의실에서 환복을 하는데 탈의실에는 내진 중인 환자의 소지품이 그대로 있고, 다른 환자의 내진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대학병원의 외래진료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진정인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대학병원 산부인과의 경우 한 진료실 내에 여러 명의 환자를 대기하도록 하는 것은 고의는 아니지만 진료과정에서 환자의 내밀한 정보를 타인에게 알리는 결과를 가져와 환자들에게 심적 동요와 수치심을 느끼게 했을 것이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경우 환자의 정보가 악의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와 같은 진료환경은 환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대학병원장에게 유사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설구조 및 진료절차개선 등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 22진정0065200결정)

그렇다면 위와 같이 대학병원 교수가 외래 세션에 너무 많은 환자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특정 지역에 위치한 병원에 환자가 너무 많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이나 수도권 대형종합병원에는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환자들이 몰린다. 지방에서 서울로 환자가 쏠리고 있는 문제는 하루이틀 된 것이 아니다.

수도권의 대형종합병원으로 환자쏠림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병원들은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러한 지방병원의 경영난은 해당 병원환경을 정비하거나 최신 의료장비를 구매하기 어렵고 유능한 의료인력을 고용할 수 없어, 결국 서울이나 수도권에 위치한 대형병원보다 자체 경쟁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에 환자들은 다시 서울이나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둘째, 거의 모든 대학병원에서는 환자진료에 따른 진료성과급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진료성과급이란 해당 기간 총진료액에 따라 경영성과급을 주는 것으로 총진료액이 높으면 높을수록 많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진료성과급을 책정할 때 진료의 질은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 아래서 해당 교수는 진료의 질을 최소한으로 낮추면서 진료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환자를 볼 때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셋째,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는 진료의 질에 따른 요양급여액이 차이가 없다. 즉, 한 사람에게 3분의 진료를 보던, 5분의 진료를 보던, 10분의 진료를 보던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에서 받는 요양급여액은 같다. 또한 하루에 10명을 진료하던, 100명을 진료하던 진료비 보상액은 총환자수와 비례하게 지급한다. 이런 보상시스템에서는 같은 시간안에 진료의 질을 낮추면서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사람이 높은 대우를 받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한 명의 교수가 너무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현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있지 않다. 단지 외래 진찰실에 환자가 여러 명 기다리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만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결정은 처음 언급한 것과 같이 짧은 시간안에 더 많은 환자들을 볼 수 있는 다른 꼼수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외래진료 환경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환자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보건당국과 의료계의 고민이 필요하다.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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