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발원지, 중국 아닌 중앙아시아”

흑사병이 어디서 발원했는가 하는 미스터리를 수백 년 만에 풀어낸 논문이 발표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4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강타했던 흑사병이 어디서 발원했는가 하는 미스터리를 수백 년 만에 풀어낸 논문이 발표됐다. 그에 따르면 유럽에 페스트의 일종인 흑사병이 돌기 7, 8년 전인 1338년 현재의 키르기스스탄의 산악지대 호수마을인 이시크쿨(Issyk-Kul) 근처에서 발원했다고 한다. 15일(현지시간)《네이처》에 발표된 독일과 영국 중심의 다국적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헬스 데이’ 등이 보도한 내용이다.

1300년대 중반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치사율 60%로 악명을 떨친 흑사병은 1347년 유럽에서 발병이 시작됐다. 희생자들의 몸에 검은 반점이 나타난다고 흑사병으로 불린 이 병은 설치류를 먹고 사는 벼룩에 의해 옮겨지는 박테리아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 페스티스)에 의해 발생하는 페스트의 일종이다. 이 질병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의 설치류에 의해 전염된다. 하지만 위생이 더 좋기 때문에 감염은 드물다. 감염은 항생제로 쉽게 치료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의학 역사가인 메리 피셀 교수는 14세기 흑사병은 역사상 두 번째로 희생자를 많이 낳은 페스트이지만 워낙 유명해서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각인돼 있다고 말했다. 역대 최악의 페스트는 6세기 동로마제국의 인구를 절반 가까이 앗아간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라고 한다.

흑사병이 피렌체를 강타했을 때 살아남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조반니 보카치오는 이 재앙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 병은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밑의 붓기를 통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첫 징후를 보였는데, 그 중 일부는 보통 사과 크기로 자라났고, 다른 일부는 달걀 크기로 자라났으며, 사람들은 이를 가래톳(buboes)이라고 불렀다.” 가래톳은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의 림프절이 붓는 병으로 페스트와 증세가 비슷하다. 보카치오는 이를 이후 ”죽음이 임박했다는 징후“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적었다.

흑사병의 출처에 대한 대중적인 이론은 흑사병이 중국에서 기원해 13세기 초 유럽대륙을 침공했던 몽골기병을 통해 유럽에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몽골제국의 침략이 지나간 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해 무역로를 따라 흑사병이 퍼져 나갔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줬다.

이번 연구는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 인류학 및 인류사 과학연구소의 볼프강 하크와 요하네스 크라우제, 영국 스털링대의 역사학자 필립 슬라빈 교수가 주도했다. 이들의 연구는 10여 년 전 영국 런던박물관에 보관된 페스트 희생자의 시신의 치아에서 페스트 박테리아 DNA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연구진은 다른 지역의 페스트 희생자들의 유전 물질을 분석하여 페스트 박테리아 변종의 DNA 가계도를 만들었다. 그 가계도에 따르면 흑사병을 가져온 Y 페스티스는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다 갑자기 오늘날 설치류에서 발견되는 네 갈래 가지로 갑작스럽게 분기했다. 연구진은 ‘빅뱅’이라고 부르는 그 사건이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를 추적했다.

역사학자들은 그 연대를 10세기~14세기로 추정했다. 역사학자로 연구진에 뒤늦게 합류한 슬라빈 교수는 키르기스스탄 이시크쿨에 있는 기독교 공동묘지 2곳에 대한 발굴조사를 제안했다. 놀랍게도 수백 개의 묘비에서 정확한 날짜가 기록돼 있었다. 그 중에서 고대 시리아어로 고인이 전염병으로 숨졌다는 기록들이 나왔다. 그 연도는 흑사병이 유럽에 들어오기 7, 8년 전인 1338년~1339년이었다. 연구진은 그 묘지에 묻힌 사람 중 3명의 유해 치아에서 Y 페스티스의 DNA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 키르기스스탄의 고대 균주가 4개의 균주로 폭발한 줄기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빅뱅’의 시작일 수 있다고 봤다. 논문의 제1저자인 독일 튀빙겐대 박사후 연구원인 마리아 스피루는 “우리는 흑사병의 기원이 된 균주를 발견했으며 심지어 정확한 날짜까지 밝혀냈다”고 말했다

만약 그들이 맞는다면 유라시아의 흑사병 직전에 빅뱅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일부 역사학자들이 제안한 것처럼 페스트가 한 세기 전에 군사 행동을 통해 퍼진 것이 아니라 무역로를 통해 퍼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피셀 교수는 말했다.

다음 질문은 이 균주가 국지적으로 진화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페스트 박테리아는 페스트 저장고라고 불리는 전 세계의 야생 설치류 개체군에서 생존한다. 연구진은 이 박테리아를 피해자들에게 퍼뜨린 설치류가 다람쥐과의 마못이라는 것까지 확인했다. 오늘날 그 지역의 마못은 Y 페스티스를 옮기는 벼룩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조상으로부터 직접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고대 균주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대 균주가 오늘날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 북서부와 접한 산맥인 톈산산맥 주변의 전염병 저수지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흑사병의 조상이 꼭 짚어 키르기스스탄이 아니더라도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뒷받침한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2-04800-3)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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