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대 교수가 미국 담배회사의 협박을 받은 사연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㉖美 수출담배의 성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87년 연말 즈음에 미국 담배회사에서 제조하는 담배가 포장은 미국과 한국이 같은데, 타르와 니코틴 레벨은 한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미국 판매제품의 2배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필자는 담배를 전혀 피지 않으므로 왜 그런지 궁금해 동료들에게 문의했다.

니코틴 레벨이 높으면 흡연할 때 더 좋게 느껴지는데, 이에 익숙해지면 인체에서 니코틴 레벨이 낮아질 때 더 많이, 자주 피우고 싶어질 터이니, 담배 판매량이 증가될 것이 예측되므로 담배 제조회사가 의도적으로 그리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견이 모아졌다. 미국 업체들이 이에 대해 덜 경계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게 담배의 독성을 전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흡연을 하는 것이 건강에 나쁜 것이 이미 오래 전에 알려졌기에 필자는 금연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이에 미국 담배의 내수용과 수출용의 성분 차이를 심층 조사한 뒤 1988년 봄 미국보건협회 학술대회에 이 내용을 제출하였더니 연제로 채택됐다. 미국보건협회는 당시에 회원이 10만 명이 넘는 수준이었는데 11월 중순에 보스턴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필자는 채택된 연제 내용을 존스홉킨스대 정책관리학과 주임교수에게 미리 알렸다. 카렌 데이비스 교수는 지미 카터 대통령 때 보건부 차관보를 역임한 뒤 존스홉킨스대 교수로 활약하는 실력파 교수였다. 처음에는 의아해 했는데, 필자가 자료를 보내고 설명했더니, 미국 정부의 고위자들에게 항의 문서를 알렸고, 그 내용이 기사화한 것을 필자에게 보내주곤 하였다.

1988년 수출용 미국 담배와 관련한 기사가 나갔던 국내외 신문 자료들. 보스턴글로브, 조선일보, 한국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학회 참석차 보스턴에 갔다. 필자가 연제 발표를 마치자 기자회견을 했는데 방송, 신문사 기자들이 경쟁적으로 숨차게 질문하였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보스턴에서 재활의학 전문의로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잠을 깼다. 보스턴글로브에 내가 발표한 연제가 기사로 크게 게재됐다고 전해주었다. 보스턴글로브는 미국 5대 신문중 하나인데, 필자의 소속과 이름까지 자세하게 기사화하였다.

친구와 같이 아침식사를 하며 신문을 받아 읽었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 알게 된 것인데, 자동차, 기름(휘발유), 담배 회사에 대하여 나쁜 지적을 하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큰일이 난다고 하였다.

학회를 마치고 귀국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등 국내 주요 일간지에 보스턴글로브 기사를 받아서 금연 문제를 다루었다. 며칠 뒤 미국 담배회사 한국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연구실로 방문을 해서 소송을 하겠다고 겁을 주기에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자료를 달라고 하기에 미국보건협회에 요청하라고 했다. 그 후 별 일은 없었다.

이듬 해 6월에 타이완의 퉁재단이 재정지원을 하여 국제금연세미나를 타이페이에서 개최했다. 필자와 정광모 박사가 초청을 받았는데, 발표와 토의를 했다. 이후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에서 역학 전공 김일순 교수가 금연활동을 열심히 전개했다.

    유승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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