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대만 ‘과로사’ 해결의 열쇠는 어디에?

택배 근로자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사회의 노력이 아쉽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로 및 과로사는 몇몇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우려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서도 최근 택배 노동자 등의 죽음을 둘러싸고 과로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메디컬 뉴스 투데이’는 최근 ‘과로사 특집’에서 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대만·일본에서 과로사에 대한 우려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아시아에는 ‘과로로 인한 죽음’을 뜻하는 말 즉 ‘과로사’(過勞死, 일본어 발음은 카로시)라는 독특한 용어도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죽자살자 열심히 일한다’는 식의 일에 대한 열정과 태도는 곧 ‘성공’을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면 성실하게 일을 하면 자기 계발을 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힘이 돼 주는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과로에 이르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로라는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이 개념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메디컬 뉴스 투데이는 분석했다.

본인 스스로 일을 너무 많이 하거나, 조직 구조 상 일이 엄청나게 늘어나면 번아웃(burnout, 탈진 증후군)이 될 위험이 높아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을 직장 스트레스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직업 현상’으로 분류했다.

번아웃의 특징으로는 지친 느낌, 자신의 직업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인 느낌, 직업 효율성 감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해로운 감정 및 결과 외에도 과로가 건강에 전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연구 결과는 매우 많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의 최고의료책임자(CMO)인 애덤 펄맨 박사는 “사람의 몸과 뇌는 탄성이 있고 놀라운 적응력을 갖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따라서 몸과 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로하고 자기 관리에 소홀하면, 몸과 뇌가 휴식을 충분히 취해 회복할 수가 없으며 이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스트레스가 쌓이면 우울증, 당뇨병, 고혈압, 소화기 장애 등 각종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임상 사회복지사 아이리스 와이츨러는 과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량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심장마비·뇌졸중의 발병 위험을 높이고, 요통이나 목의 통증을 느끼게 하고, 근육을 뻣뻣하게 만들 수 있다.

또 한동안 직장에서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거나, 퇴근 후 식품점에 가거나 건강에 좋은 식사를 제대로 요리할 시간이 없으면 영양 상태가 부쩍 나빠질 수 있다.

그녀는 “직장 근무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과의 관계, 운동,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에 힘쓸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는 뜻”이라며 “스트레스가 늘어나면 알코올·약물 등에 의존할 수 있으며 끝내 번아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사소한 스트레스 요인도 건강에 장기적으로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의 영향이 매우 끔찍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에서 민간 단체 ‘50세 이상의 여성을 위한 건강’의 고문으로 활약 중인 약사 엘리자베스 로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스트레스를 받으면 ‘투쟁 또는 도피’ 반응의 메커니즘이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메커니즘은 자동차의 앞을 가로막을 때와 같이 위험한 경우에 유용하다. 아드레날린이 갑자기 치솟으면 근육, 심장, 시각 인식이 활성화돼 재빨리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쉬지 않고 오랜 시간 일만 하면, 스트레스가 직장 생활에 끊임없이 스며들어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모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로의 사망 위험과 예방 조치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근무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2016년 74만5000명이 뇌졸중,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2000년보다 29% 늘어난 수치다.

또 주당 5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들은 주당 35~40시간 일하는 사람들보다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35%,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17% 각각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로는 뇌졸중,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제2형 당뇨병, 심장 질환, 일부 암, 관절염, 만성 폐질환, 고혈압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각종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회사의 임직원은 과로와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펄먼 박사는 무엇보다도 고용주가 직원들과 열린 대화 및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그들이 쉽게 직면할 수 있는 과로 문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휴가를 정상적으로 즐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게 리더십의 중요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조직 리더는 지나치게 많은 회의와 행정적 부담을 가급적 줄이고, 사내의 정신적·육체적 웰빙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또 ‘정신건강의 날’을 제정, 운영한다든지 건강 상 위기 등이 발생할 때 ‘가족 의료휴가(family medical leave)’를 보내는 등 과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여성 직원들의 경우 기분, 행동의 변화 등 번아웃 증상이 나타날 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사내에 있는 게 바람직하다. 직장 여성은 가정생활에 대한 책임까지 떠맡고 있어 남성들보다 번아웃 증상을 보이는 비율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성은 직장인, 아내, 엄마, 자매, 간병인 등 다양한 역할을 균형적으로 소화해 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특히 간병인으로 활동해야 하는 여성이 약 6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펄먼 박사는 요가·명상 등 마음챙김, 직장 내 휴식 및 심호흡 등이 진정 효과를 내고 심박수와 혈압을 낮추는 등 스트레스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작업의 일정에 유연성을 더하고, 사무실 업무와 가상 업무의 혼합 모델(하이브리드 모델) 등 창의적인 솔루션을 찾는 것도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펄먼 박사는 강조했다.

    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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