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잘 죽고 싶다” 웰다잉 준비 필요한 이유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안락사 및 웰다잉 이슈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다. [사진=ING alternative/게티이미지뱅크]
임종 과정도 인생의 일부다. 건강할 때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마무리 단계이자 완성 단계인 임종 과정을 잘 보내는 것 역시도 중요하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쓸쓸하게 임종을 맞이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병원 면회 금지로 가족들의 얼굴도 못 본 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와 다른 질환으로 인한 말기환자 들이 있었다.

이처럼 홀연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죽음도 미리미리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안락사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는데, 안락사를 논하기에 앞서 ‘웰다잉 문화’가 먼저 정착돼야 하는 이유다.

‘의사 조력 자살’ 법제화 추진…국민 상당수 안락사 찬성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주 조력존엄사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조력존엄사는 병원의 도움을 받아 말기 환자가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의사 조력 자살’이라고도 부른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등의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현재의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넘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의식이 있는 환자가 스스로 약물 투여 등으로 목숨을 끊는 임종 방법이다.

국민의 상당수도 이처럼 생을 마감하는 방법에 찬성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6.3%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숨을 거두는 ‘조력존엄사’, 병원에서 직접 약물 주사 등을 통해 환자의 죽음을 이끄는 ‘안락사’에 찬성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인생의 마지막을 고통스럽게 보내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락사가 인생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는 절대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안락사를 합법화하기에 앞서 먼저 필요한 것은 웰다잉 문화다. 코로나 시국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의 장기를 기증할 것인지, 유산은 어떻게 할 것인지, 장례 절차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런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웰다잉 문화가 먼저 확산돼야 한다.

안락사 합법화보다 ‘웰다잉 문화’ 조성이 우선

안락사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웰다잉 문화가 먼저 정착돼야 한다. 웰다잉 문화 없이 안락사 법제화만 추진한다면 독거노인의 고독사, 간병 살인, 노인들의 동반 자살 등 비참한 죽음이 여전히 뉴스 사회면을 채울 확률이 높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인생 마지막을 보장할 수 있는 지원책이 무척 부족한 상황이다. 말기 환자의 편안함 임종을 돕는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률도 낮다. 암 사망자 기준 24.3%만이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있다. 윤영호 교수는 “매년 호스피스 국고보조금 30~40억 원이 지원되고 있지만 이는 보여주기식 정책에 불과하다. 국가 재정으로 호스피스 전용 병동이 만들어진 적도 없다”며 “호스피스는 고가의 검사,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절감한 의료비로 말기환자를 위한 적절한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재 국내 호스피스는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만성호흡부전질환 등의 환자만 이용 가능하다. 대상질환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아직 크게 제한돼 있는 만큼 웰다잉을 준비하는 데 있어 불평등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윤 교수는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 등을 개인 차원의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하거나 범죄 행위로 단죄하는 것은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불평등을 해결해야 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간과한 것”이라며 “간병 문제 등 현실에 부딪혔을 때 국가나 사회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제도 개선과 법률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은 삶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말기케어에 신경 쓰고 있다. 영국건강보험공단((NHS)은 삶의 마지막에 대해 논의하고 케어를 계획·조정해 최상의 말기케어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미국은 자원봉사자들이 환자 돌봄 시간의 5%를 의무적으로 호스피스 돌봄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간병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만큼 안락사 이슈가 더욱 급물살을 타고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데,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안락사 논의에 앞서 웰다잉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먼저 시행돼야 한다. 갑작스럽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장기 기증, 유산 기부, 인생노트 작성 등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노후 설계 등이 필요하다는 것.

지난 2016년 죽음에 대한 국민 인식을 살핀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89.9%가 죽음은 ‘두려움과 고통’이라기보다 ‘삶의 완성’이라고 답했다. 이는 “잘 죽고 싶다”는 의미다. 잘 죽는다는 것은 말기 환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는 일부터, 간병하는 가족들의 수입과 직업이 잘 유지되는 일, 간병 품앗이 등을 통해 가족의 간병 고통을 분담하는 일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좋은 죽음’은 안락사를 통해 말기 환자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안락사는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만, 웰다잉 문화는 환자의 죽음의 질을 확보하는 동시에 환자 가족들이 죽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사회적으로는 삶과 죽음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방법이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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