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당겨진 여아 사춘기…소녀들에게 무슨 일이?

여자아이들의 사춘기 연령이 1970년대 이후 10년마다 약 3개월씩 감소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70년대 이후 소녀들의 사춘기가 점점 빨라져 지금은 6살이나 7살 때부터 가슴이 나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과학자들은 비만과 내분비교란물질로 불리는 화학물질 그리고 스트레스를 그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사춘기 연령에 대한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 결과를 집약해 19일(현지 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1980년대 중반 미국 듀크대 메디컬센터의 마르시아 허먼-기든스 아동학대 팀장은 어린 소녀들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학대를 당한 소녀들을 조사하면서 그들 중 많은 소녀가 6,7세의 어린 나이에 유방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길림스 글로벌 공중보건대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그는 미국 소녀들의 사춘기 시작 시점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하자 이를 직접 수집하기 시작했고 10년 뒤인 1997년 전국의 소아과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은 1만 7000명 이상 소녀들의 사춘기 시작 시점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1990년대 중반 소녀들은 과거보다 1년 이상 빠른 10세경부터 사춘기의 첫 번째 징후인 가슴이 발달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흑인소녀는 평균 9세부터 젖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학계에선 충격을 받았고 무명의 보조의사(PA)가 발표한 논문에 의구심을 드러냈다고 허먼 기든스 교수는 회상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사춘기에 대한 의학적 이해의 분수령이 됐다. 그 이후 수십 년간의 연구 결과, 여자아이들의 사춘기 연령이 1970년대 이후 10년마다 약 3개월씩 감소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보단 덜 극단적이지만 남자아이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이 관찰됐다.

비록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만 더 어린 나이에 사춘기를 겪는 것은 특히 소녀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춘기를 일찍 겪는 소녀들은 나중에 사춘기를 겪는 또래들에 비해 우울증, 불안, 약물 남용, 그리고 다른 심리적인 문제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또 생리를 일찍 하는 소녀는 성인기에 유방암이나 자궁암에 걸릴 위험이 더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 비만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 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과학자들은 또한 특정 플라스틱에서 발견되는 내분비교란물질과 스트레스를 포함한 다른 잠재적인 영향을 추적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기간 사춘기 연령이 더 당겨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있다. 지난달 이와 관련한 2개의 논문을 잇따라 발표한 덴마크 코펜하겐대 안데르스 율 교수(소아내분비학)는 “우리의 모든 아이들에게서 이러한 현저한 변화가 발행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 비만

허먼-기든스 박사의 획기적 논문이 발표되고 나서 율 교수 연구진은 코펜하겐에 사는 1100명의 소녀들의 유방 발달 상태를 조사했다. 미국 소녀들과 달리 덴마크 소녀들은 전통적 사춘기 연령인 평균 11세부터 가슴이 발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율 교수는 미국 소녀들의 사춘기가 일찍 시작되는 이유가 덴마크에선 일어나지 않았던 소아비만 증가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 비만은 1970년대 이후 소녀들의 사춘기가 빨라지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이후 수많은 연구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소녀들이 평균 체중의 소녀들보다 더 일찍 생리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2003년에 발표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사는 1200명 소녀들 대상으로 10여 년에 걸친 연구에서도 소아비만은 사춘기 조기 발현과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기 평균 체중 보다 표준편차가 높게 나타나면 12세 이전에 생리를 할 가능성이 2배로 증가했다. 2021년 영국 연구진은 배고픔을 억제하는 지방 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렙틴이 성 발달을 조절하는 뇌의 특정 부위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특정 부위에 유전적 돌연변이가 발생한 쥐와 사람은 성발달이 일찍 발생했다.

비만이 사춘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온 미국 국립환경보건과학원(NIEHS)의 소아내분비학자인 나탈리 쇼 박사는 “요즘 비만이 사춘기 초기의 주요 원인이라는 데 큰 논란은 없지만 문제는 사춘기가 일찍 오는 소녀 중 많은 수가 과체중이 아니라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만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진 못한다”고 말했다.

◆ 화학물질

허먼-기든스 박사의 논문이 발표되고 10년 뒤 율 교수는 코펜하겐에서 조기 사춘기에 대한 문의가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 7살이나 8살 때 유방이 나오기 시작하는 소녀들을 딸로 둔 부모들의 문의였다. 율 교수 연구진은 2009년 약 1000명의 코펜하겐 소녀들을 조사해 유방 발달 평균 연령이 10세 미만으로 1년 정도 앞당겨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소녀는 7세~12세에 사춘기가 시작됐고 생리 시작 연령도 13세 정도로 과거보다 4개월 가량 빨라졌다. “매우 짧은 기간에 매우 두드러진 변화였다”고 율 교수는 말했다.

그는 그 원인을 미국의사들처럼 비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009년 덴마크 어린이 체질량지수(BMI)는 199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신 화학물질 노출이 그 원인이라는 대체 이론의 지지자가 됐다. 그는 2009년 연구에서 젖가슴이 가장 빨리 발달한 소녀들의 소변에서 플라스틱의 내구성을 높여주는 물질인 프탈레이트 함유량이 가장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프탈레이트는 비닐 바닥에서 식품 포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플라스틱 재질에 포함돼 있어 지난 수십 년 간 지구 환경 곳곳에서 접하게 됐지만 체내 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내분비교란물질이다.

지난달 23일 미국국립의학도서관(NLM)의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무료 DB인《펍 메드(Pub Med)》에 발표된 체계적 리뷰 논문에서 줄 교수 연구진은 내분비교란물질과 그것이 사춘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수백 가지 연구를 분석했다. 결국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23개의 연구 결과가 분석 대상에 포함됐지만 어떤 개별 화학물질과 사춘기 나이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리뷰논문의 공동 저자인 하버드 T H 챈 공중보건대의 러스 하우저 교수(환경역학)는 “이 문제를 탐구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면서 ”우리는 특정 종류의 화학 물질에 대한 강력한 근거를 제시하기에 충분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스트레스와 생활 습관

조기 사춘기와 관련된 또 다른 원인으로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도 꼽힌다. 그러나 인과관계의 화살표를 그리기가 어렵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조기 성숙을 촉진할 수 있으며 허먼-기든스 박사는 수십 년 전에 가정했듯이 신체적으로 더 일찍 발달하는 소녀가 학대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엄마가 정서 장애를 앓은 경험이 있는 소녀나 친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 소녀는 사춘기에 일찍 도달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신체 활동의 부족과 같은 생활습관적 요소도 사춘기 시기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팬데믹 기간 전 세계의 소아내분비학자들은 여자아이들의 조기 사춘기에 대한 조회와 문의가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 2월 이탈리아에서 발표된 한 연구는 7개월의 동일기간 전국의 5개 조기 사춘기 클리닉을 방문한 소녀들의 숫자가 2019년 140명에서 2020년 328명으로 급증했음을 보여줬다. 일시적일지는 몰라도 인도, 터키 그리고 미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소아병원의 폴 카플로위츠 명예교수는 “전국의 동료 의사들에게 문의한 결과 대부분이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세가 스트레스 증가 때문인지, 운동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자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부모가 아이들의 변화를 더 빨리 알아차려서 인지는 불분명하다. 여러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 요소는 저소득층 가정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점이 미국에서 사춘기가 시작되는 연령의 인종 차이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사춘기 연령의 뉴노멀?

수십 년 동안 의학 교과서는 영국의 한 고아원에 살았던 약 700명의 소년소녀들에 대한 1949년~1971년의 관찰 조사에 바탕을 둔 소위 ‘태너 척도(Tanner Scale)’를 사용해 사춘기의 단계를 규정해왔다. 그 척도는 정상적인 사춘기를 여자아이는 8세 이상, 남자아이는 9세 이상으로 정의한다. 교과서는 만약 사춘기가 그보다 더 일찍 시작되는 아이가 있으면 ‘중추성 성 조숙증’이라고 불리는 희귀한 호르몬장애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라고 가르친다. 해당 아이들은 종종 뇌를 스캔하고 적절한 나이까지 성적인 발달을 지연시키기 위해 처방된 사춘기 차단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보 연령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춘기 평균 연령이 낮아졌음에도 불필요한 검사와 의료비 낭비를 초래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키플로위츠 교수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최적의 연령이 8세가 아니라는 데이터가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1999년 정상적인 사춘기 연령을 백인 여자 아이는 7세, 흑인 여자 아이는 6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줄 교수 연구진이 지난달 1일《소아청소년과학》에 발표한 또 다른 논문은 이러한 사춘기 연령 보정설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8세 미만의 조기 사춘기가 시작된 205명의 뇌를 스캔한 결과 단지 1.8%의 소녀와 12.5%의 소년만이 중추성 성 조숙증 증세에 해당하는 뇌 이상이 확인됐다.

그렇지만 많은 소아과 의사들은 사춘기 연령을 낮추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허먼-기든스 박사가 포함된 이들 의료진은 이러한 변화를 공중 보건 문제의 징후로 봐 야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허먼-기든스 박사는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만 놓고 보면 정상일지 모르지만 자연이 의도했던 것에 대해 더 좋은 단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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