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못지않게 ‘망각’ 역시 중요한 이유

제브라피쉬의 뇌를 관찰해 기억이 형성될 땐 망각의 과정이 함께 일어난다는 점이 확인됐다. [사진=kazakovmaksim/게티이미지뱅크]
얼룩말 무늬를 가진 열대어인 제브라피쉬의 뇌에서는 사람처럼 ‘기억’과 ‘망각’이라는 작용이 일어난다.

제브라피쉬의 투명한 뇌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고, 또 잊어버리는지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최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제브라피쉬의 뇌를 살핀 논문을 발표했다.

제브라피쉬가 헤엄을 쳐서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특정한 온도 변화가 일어나도록 했다. 그리고 해당 온도 변화와 밝은 빛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점을 학습하도록 훈련시켰다. 연구팀은 현미경을 이용해 이 같은 학습이 일어나기 전후의 제브라피쉬의 뇌를 살폈다. 이는 살아있는 척추동물의 뇌가 기억을 형성하는 동안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살핀 첫 사례다.

그 결과, 기억이 형성되는 순간 뇌 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동시에 일부 시냅스(신경세포끼리 접합하는 부위) 연결들은 반대로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일부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과거 신경과학 분야에서 망각은 기억 시스템의 결함으로 치부됐다. 뇌는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망각은 그 반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과학자들은 망각이 뇌의 필수 기능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뇌가 수집하고 암호화한 방대한 양의 정보 중 일부를 도태시키는 것은 지식의 수집만큼이나 인간의 생존에 있어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하루 동안 수십만 개의 정보를 등록하는데, 대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이다. 지하철역에서 방금 스쳐지나간 사람의 셔츠 색깔이 가령 그렇다. 생존과 연결되는 중요한 정보가 아닌 만큼 불필요한 기억으로 간주돼 도태되는 것이다.

우리가 유아기 사건들을 기억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조셀린 프랭크랜드 신경생물학 연구소가 쥐 실험을 통해 뇌세포 형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해마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빠르게 형성될수록 오래된 기억들을 점점 떠올리기 어려워진다는 점이 확인됐다. 우리의 뇌는 우리에게 유용한 최신 정보를 잘 기억하고 먼 기억은 떠올리기 어렵도록 기억을 재구성한다는 것.

망각은 뇌 시스템의 결함이 아니라, 뇌가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망각에 대한 이해는 사람의 인지건강과 행동건강의 비밀들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다. 자폐증, 알츠하이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망각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처럼 보편적인 망각의 기능을 넘어선 기억력 장애는 문제가 되지만 일상적인 망각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정보를 버리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분노, 슬픔 등의 고통스러운 감정도 지속되지 않는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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