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9호 (2022-04-25일자)

포스트 코로나, 우리를 현자로 만들 ‘뉴노멀’

지난주부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단계별로 철폐되기 시작하더니, 오늘부턴 감염병 단계가 1급에서 2급으로 낮아지지요? 오늘부터 영화관과 노래방, 스크린골프장, 지하철, 택시 등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도 시식, 시음이 가능합니다.

세계적으로도 하루 확진자가 1월 26일 366만여 명에서 그저께 48만여 명으로 뚝 떨어졌고, 우리나라에선 3월 29일 42만4641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그저께 6만4725명으로 줄었지요. 비록 하루 확진자 수로는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세계 3강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쨌든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들어갑니다.

지름이 50~140㎚ 크기로 사람 머리카락(18~180㎛)의 1000분의 1 밖에 안 되는 바이러스가 2년 남짓 세계를 휩쓸었고 앞으로도 낙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는 인류의 환경과 문화를 크게 바꾸고 있습니다.

‘비대면(Ontact) 시대’를 앞당겼고, 양극화를 심화시켰습니다. 팬데믹은 교육과 산업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켰고, 그 변화가 원래대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른바 ‘뉴노멀’이 고착화되겠죠. 사람의 생각과 태도도 변화시켰습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했고,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보게도 했습니다. 이런 코로나19 팬데믹의 가르침을 잘 새기면 뉴노멀이 우리 모두에게 쓴 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이 이를 깨치고 지키면 인류가 진정한 ‘사피인스’에 가까워질 것 같은데….

말을 줄일 것=마스크를 쓰고 지내며 말을 덜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말하는 것의 중요함을 절감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필요없는 말은 줄이고, 오히려 남의 말에 귀기울이는 계기가 되면 어떨까요?

겸손, 겸허한 삶=코로나19 시대에 전세계의 전문가도, 언론도 예측에 계속 실패하며 인류 지식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염병 초기에 확진자를 비난했지만, 대부분이 걸렸습니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쉽게 단정짓지 말고 우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삶이 현학적 삶보다 더 지혜로울 것 같은데….

조심하며 살기=팬데믹은 《주역》과 《중용》의 핵심 내용인 ‘계신공구(戒愼恐懼)’가 적용되는 시기였습니다. 경계하고, 삼가며,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생활이 몇 년 이상 24시간 지배하면 너무 피곤하겠지만, 필요한 시기엔 이를 지켜야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지킬 수 있겠죠? 계신공구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겠고요.

시간을 소중하게=식당 영업시간 제한과 직장 감염  등 때문에 스스로에게 뚝 떨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길어진 저녁 시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소중하게 쓴 분들은 이 변화를 더욱 더 잘 살려야겠지요?

더불어 산다는 것=우리는 혼자서 아무리 조심해도 주위와 함께 하지 않으면 전염병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반면, 수많은 지식인이 ‘포스트 코로나의 뉴노멀’로 양극화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함께 잘 살기 위해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으면 코로나19 희생이 덜 덧없지 않을까요?


[오늘의 음악]

1917년 오늘 태어난 재즈가수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 두 곡 준비했습니다. 웬만한 재즈 애호가들은 알만한 그녀의 대표적 두 노래 ‘Misty’와 ‘Just one of those things’ 이어집니다.

  • Misty – 엘라 피츠제럴드 [듣기]
  • Just one of those things – 엘라 피츠제럴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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