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5호 (2022-03-28일자)

라흐마니노프와 호로비츠의 뜨거운 우정

1943년 오늘(3월 28일), ‘마지막 러시아 낭만주의 음악가,’ ‘레코딩 시대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불린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미국 베벌리 힐스에서 피부암인 흑색종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70세 생일을 나흘 앞두고 삶의 악보를 접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북서부 노브고로드 주 스타로루스키에서 태어났고 절대음감을 가져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한 천재였습니다. 모스크바음악원에서 피아노협주곡 1번을 작곡했고, 곧이어 오페라 ‘알레코’를 작곡해 시연할 때에는 차이코프스키도 와서 칭찬을 할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삶에서 어둠 없이 끝까지 화려한 빛은 없다’는 원칙은 라흐마니노프에게도 닥칩니다. 삶의 모델 차이코프스키와 누나 옐레나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  삶에 그늘이 드리웁니다.  24세 때 교향곡 1번을 발표했을 때 평론가들의 비난과 야유를 받고 충격을 받아 3년 여 동안 삶의 암흑기에 들어섭니다. 사촌인 나탈리아 사티나와 약혼했지만, 러시아 정교회와 사티나 부모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우울증 탓에 두문불출하고 몸부림칠 때 숙모가 소개해준 니콜라이 달 박사를 만나 큰 기대 없이 치료를 받습니다.

달 박사는 4개월 동안 매일 최면요법을 시행하면서 성공에 대한 암시를 합니다. 이와 함께 수면 습관을 바꾸게 하고, 규칙적 식사를 이끕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01년 피아노협주곡 2번을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하고 협주곡을 딜 박사에게 헌정합니다. 그는 이듬해 군대 막사에서 사티나와 결혼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로 피신했다가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 뉴욕에서 삽니다. 말년에는 온몸의 통증 때문에 고생하다가 건강을 위해 따뜻한 곳으로 이사하라는 의사을 말을 듣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합니다. 그는 미국에서 고국에 돌아가는 꿈을 가졌지만 소련의 문화정책을 비난, 소련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큰 키, 긴 손발가락 등을 특징으로 하는 ‘마르팡 증후군’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손가락을 쫙 펴면 손이 무려 30㎝나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이 짧은 피아니스트들이 그가 작곡한 상당수 곡을 연주하는 데 쩔쩔 맸다고 합니다. 그가 피아노협주곡 3번을 친구인 요제프 호프만에게 헌정했지만, 손이 작았던 호프만은 고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

피아노협주곡 3번은 ‘피아니스트들의 무덤’으로 불리고 있는데, 1928년 미국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작은 손으로도 이 곡을 너무나 아름답게 연주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내 곡이 바로 이렇게 연주돼야 한다고 항상 소망했지만, 살아서 이런 연주를 듣게 될 줄 꿈도 못 꿨는데…”하고 격찬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28년 연하인 호르비츠와 친구가 돼 서로의 작품을 계속 지지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각자 다른 사람이 주최한 콘서트에 참석하기로 약속하고 지켰습니다.

라흐마니노프(왼쪽)와 호로비츠. 가운데는 월트 디즈니.

호로비츠는 1903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태어나 키이우음악원에서 수학한,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이지요. 우리나라에선 그의 이름을 딴 ‘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영화도 있지요? 키이우 음악원 졸업 때엔 라호마니노프의 소나타 2번을 쳐서 심사위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소련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라흐마니노프와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예술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아름다운 친구가 될 수 있는데도, 정치 권력자가 이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


[오늘의 음악]

오늘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어야겠죠? 그를 부활시킨 피아노협주곡 2번을 조성진과 핀란드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듣겠습니다. 피아노협주곡 3번은 블라디미르 호로비치와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의 협연으로 준비했습니다.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 조성진 [듣기]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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