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유산이 ‘여성 권리’라면 안락사는?

[Dr곽경훈의 세상보기]알랭 들롱의 안락사 주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대 그리스는 매우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여성의 정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위선적인 도덕주의’는 아니었지만, ‘가문의 명예’를 중시했다. 그래서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에는 ‘아들이 있는 병사’를 투입했다(가족이 있으면 위험한 임무를 피하도록 배려하는 오늘날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들이 있는 병사’는 전사해도 가문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로마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가문이 중요했다. 그래서 ‘자녀가 있는 젊은 미망인’ 혹은 ‘자녀가 있는 젊은 이혼녀’가 결혼상대로 인기를 끌었다. 이미 아이를 출산했으니 불임이 아니며 ‘출산의 위험’에서도 생존했기에 아이를 낳고 사망할 위험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로마제국의 상류층에서는 ‘아이가 있는 여성’이 ‘괜찮은 결혼상대’로 여겨졌다.

이렇게 ‘출산’은 오랫동안 매우 위험했다. 19세기 헝가리의 의사인 젬멜바이스가 의료기구와 침대를 깨끗하게 소독하기 전까지 ‘출산에 동반한 감염’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20~30%에 이르렀다. ‘소독법’이 보편화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도 여전히 출산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는 여성이 많았다. 특히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임신하거나 너무 많이 임신을 반복하는 경우에는 운좋게 출산을 이겨내고 생존해도 온갖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례가 많았다.

그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1920년대 영국에서 마리 스토프스(Marie Carmichael Stopes)는 ‘피임’과 ‘인공유산’을 중심으로 하는 ‘출산정책’을 주장했다.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열고 심지어 그런 시술을 제공하는 의료시설을 운영했다.

물론 격렬한 반대가 뒤따랐다. 교회와 보수적인 정치가가 그녀를 비난했다. 살해위협을 마주했고 폭력으로 강연을 방해하는 사람도 빈번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따지면 스토프스는 ‘인권운동가’가 틀림없으나 대부분의 ‘개혁가’는 당대에는 환영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스토프스는 꿋꿋이 ‘개혁’을 지속했다. 그녀가 1958년 사망한 후에도 ‘마리 스토프스 인터네셔널(Marie Stopes International)’이란 비영리단체가 조직되어 피임과 인공유산을 지원했다.

그런데 2000년대에 접어들며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스토프스가 실제로는 히틀러를 추종하는 인종주의자였고 우생학을 신봉해 ‘하류층 여성의 출산을 억제하여 우월한 인류를 만든다’는 목적을 지녔던 것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2020년 ‘마리 스토프스 인터네셔널’은 논란을 막고자 ‘MSI Reproductive Choice’로 이름을 바꾸었다.

 

며칠 전, 프랑스의 국민배우이자 세계적으로 미남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알랭 들롱(87)이 최근 “안락사하고 싶다”고 주장했다고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안락사를 관철하려고 스위스로 주거지와 국적을 옮겼다고 보도했지만, 들롱은 1999년 ‘부유세’를 피하기 위해 스위스 국적을 취득해서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들 앙토니가 공개한 내용도 최근 얘기가 아니고, 들롱이 2019년 뇌출혈으로 수술을 받고 “증세가 더 심각했을 때 안락사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었다.

들롱이 안락사를 언급한 것은 처음도 아니다. 그는 종종 안락사의 장점에 대해 얘기했고, 지난해 부인 나탈리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한 인터뷰에서도 “누구나 어느 나이가 되면 병원을 거치지 않고 수술 자국 없이 조용히 사라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고틍스런 질병을 지녔거나 회복이 불가능한 중증질환자에게 시행하는 ‘안락사’는 스위스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합법이지만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미국에서는 잭 케보키언이 1990년부터 1998년까지 130여 명에 이르는 환자들에게 안락사를 시행하여 ‘죽음의 천사’란 악명을 날렸고 법정에서 살인죄로 판결받기도 했다.

안락사를 뜻하는 에우타나시아(Euthanasia)를 그리스 어원으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뜻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죽음이 있을까? 스티브 잡스가 2004년 스탠포드대 졸업식에서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고 한다.

물론, 1920년대의 ‘피임’과 ‘인공유산’처럼, 안락사도 수십 년이 흐른 뒤에는 ‘환자의 인권’을 위한 선택으로 보편화할지도 모른다. 다만 ‘피임’과 ‘인공유산’을 주장한 스토프스에게 ‘열등한 존재를 없애서 우월한 인류를 만든다’는 그릇된 목적이 있던 것처럼 안락사도 혹시나 악용될 소지가 있는지 우리 모두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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