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사각지대 환자, 누가 책임져야 하나?

[Dr 곽경훈의 세상보기]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

“연락할 수 있는 가족이 아무도 없습니까? 정말 아무도 없어요?”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조끼까지 챙겨입은 행정직원이 응급실 침대 옆에 서서 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30분 전부터 같은 질문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 중간에 “그럼 지금 돈은 전혀 없어요?”란 말도 섞으면서. 그러나 애타는 행정직원과 달리 침대에 누운 환자는 느긋했다. 환자는 50대 중반 혹은 6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40대 초반인 사내였다. 엉킨 머리카락, 제대로 다듬지 않은 수염, 불그레한 얼굴과 근육이 사라져 탄력없이 늘어진 피부,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떨리는 팔만으로도 사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추측할 수 있었다. 거기에 제대로 세탁하지 않은 바지와 담뱃불에 구멍이 난 상의까지 더하니 사내에 대한 대략적인 ‘퍼즐’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서너 시간 전, 사내가 “왼쪽 팔과 다리에 힘이 없다”고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았을 때부터 문진(History taking)에 그 ‘퍼즐’을 참고했다. 특히 “평소에 술을 얼마나 마십니까?”란 질문에 사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대답했을 때, 그 ‘퍼즐’은 아주 유용했다. 다른 사례와 달리 사내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진술은 제한적인 사실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술을 언제 마셨습니까?”라고 다시 질문했다. 그러자 사내는 잠시 망설인 끝에 “보름 전에 마셨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그럼 그전에는 언제 마셨습니까?”라고 재차 묻자 그제야 “그전에는 조금 많이 마셨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매일 술을 마셨다는 뜻이다.

또, 사내가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것은 보름 전이 아니라 기껏해야 1주일 전일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3일 전인지도 몰랐다. 1주일 전에 넘어졌고 그때 부딪혀서 왼쪽 어깨와 왼쪽 골반에 통증이 생겨 제대로 걷지 못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넘어진 것이 1주일 전인지, 아니면 3일 전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때부터 잘 걷지 못해 ‘새로운 술’을 구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다가 그날 아침부터 걷기가 더욱 힘들어져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에는 머리 컴퓨터단층촬영(CT)이 필요하다. 알코올중독, 만성 간질환, 고령, 항혈전제 복용 같은 조건에 해당하는 환자는 작은 충격에도 뇌출혈의 일종인 경막하출혈(Subdural hemorrhage)이 발생하고도 통증이 심하지 않은 사례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CT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 뇌경색(Cerebral infarction)을 감별해야 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의료와 관련없는 문제’에 부딪혔다. 사내가 최근에 의료보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또, 연락하는 가족도 없다고 했다. 덧붙여 왼쪽 팔다리의 근력 자체에는 큰 이상이 없어 타박상 때문에 걷기 힘들 가능성도 다분했다. 하지만 그래도 MRI를 찍어야 했다. MRI가 정상이면 의료보험이 없는 환자이니 이런저런 ‘행정적인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거꾸로 MRI를 찍지 않아 뇌경색을 놓치면 환자에게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명백한 의료사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행한 MRI에서 뇌경색을 확인했다. 안타까운 사례지만 한편으로는 의료보험이 없는 환자에게 시행한 MRI에서 실제 문제를 찾아내 다행스럽기도 했다. 물론 그때부터 문제는 행정직원에게 넘어갔다. 뇌경색은 의료보험이 없고 지불능력조차 불분명한 환자라고 해도 입원시켜 치료할 수밖에 없는 질환이지만 사내 같은 경우에는 병원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 외에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끈 대통령 선거가 며칠 전에 끝났다. 5년 동안 국가를 이끌 통치자를 선출하는 선거이니 거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 선거는 후보들에 대한 의혹이 유달리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네거티브 공세’가 이어지며 자연스레 후보들의 정책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나마 관심을 끈 정책도 ‘여가부 폐지’ 같은 몇몇 제한적인 주제였을 뿐이다.

그래서 의료제도와 관련한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기껏해야 ‘의과대학 신설’ 같은 문제가 몇몇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해 조그마한 관심을 받았을 뿐, 위 사례처럼 실제 의료현장에서 겪는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여 시민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란 의료제도의 근본적인 목적을 고려하면 위 사례에 등장하는 사내 같은 부류가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당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단순히 몇몇 지역에 의과대학을 신설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위 사례의 남성은 최근 사례일뿐, 우리나라에선 의료 사각지대에서 눈물 짓는 환자가 비일비재하다.

많은 관심을 끌어당기던 대통령 선거도 끝났으니 이제 이런 문제에도 한층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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