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환자가 ○○○○으로 드러나면…

[Dr 곽경훈의 세상보기]오미크론과 풍토병 선언

이른 새벽에도 응급실의 전화는 쉬지 않고 울린다. 중증외상 혹은 의식이 저하된 환자를 이송한다는 구급대원과 갑작스레 상태가 나빠진 입원환자를 전원하겠다는 요양병원 의료진의 연락부터 주방 도구에 손을 베였는데 봉합이 가능하냐, 응급실에서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으면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느냐, 술을 많이 마셨는데 수액을 줄 수 있느냐 같은 시시콜콜한 문의까지 전화가 전하는 내용은 정말 다양하다.

그날 새벽의 전화가 전한 내용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3시간 전부터 심한 호흡곤란이 발생한 뇌졸중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느냐는 요양병원 의료진의 문의였다. 요양병원 의료진은 다급한 목소리로 체온은 정상범위이며 기침과 가래 같은 호흡기 증상도 없으니 부디 수용해달라고 부탁했다.

뇌졸중으로 오랫동안 요양병원에서 생활한 노인환자이며 뇌졸중 외에도 고혈압과 부정맥으로 치료하고 있고 체온이 정상범위이며 특별한 호흡기 증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폐렴보다는 폐부종(Pulmonary edema), 흉수(Pleural effusion) 등의 문제가 호흡곤란의 원인일 가능성이 컸다. 심장은 인체의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공급하는 펌프에 해당해서 그 기능이 떨어지면 체액이 폐에 쌓여 부종과 흉수를 만들어 호흡곤란이 발생한다. 그러니 그런 사례라면 굳이 격리실에 수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요양병원 의료진이 전한 간접적인 정보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모든 격리실에 환자를 수용한 상태여서 안타깝게도 요양병원 의료진에게 ‘격리실이 없어 호흡곤란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시간 후, 같은 요양병원 의료진이 다시 전화했다. 인근의 모든 응급실에 연락했지만 어디에도 격리실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 그 무렵, 격리실에 수용했던 환자 한 명이 음성으로 확인돼 우여곡절 끝에 환자를 수용할 수 있었다.

요양병원 의료진의 말대로 환자는 호흡곤란이 심했지만 발열, 기침, 가래 같은 증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환자를 격리실에 수용하고 시행한 가슴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양쪽 폐의 심한 흉수(Pleural effusion)를 확인했고 심비대(心肥大)가 있으며 혈액검사에서도 뇌나트륨이뇨펩티드(BNP, Brain Natriuretic Peptide)가 크게 증가해서 ‘심부전으로 인한 흉수(Pleural effusion d/t heart failure)’, 그러니까 심장의 기능이 감소해 폐에 체액이 차는 것이 호흡곤란의 원인일 가능성이 컸다. 다행히 그런 경우, 응급실에서의 치료는 어렵지 않다. 정맥주사로 이뇨제를 투여하여 소변량을 늘리면 폐에 쌓인 체액이 감소하면서 호흡곤란이 호전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굳이 격리실을 사용할 이유가 없는 환자였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던 것이 아닌지 머쓱했다.

그런데 검사실에서 걸려온 전화에 모든 것이 변했다. 코로나19 PCR 검사가 양성이며 심지어 감염력이 높은 단계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부터 환자를 일반구역에 수용했거나 흉부 CT와 혈액검사로 판단하여 격리실에서 옮겼다면 자칫 병원 내 감염이 일어날 수도 있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오미크론 변이와 함께 코로나19 대유행의 기세가 무섭다. 대유행이 시작한 후에도 꽤 오랫동안 유행 규모를 최소화했던 국가들도 오미크론 변이에는 예외가 없다.

높은 예방 접종률,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 소상공인 같은 계층의 희생, 방역과 의료의 일선에 나선 현장인력의 노력에 힘입어 확진자가 무서운 기세로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은 사망자를 최소화해 아직은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들이 겪은 재앙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다른 국가가 경험한 높은 수준의 ‘록다운’을 피했으며 이제는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조금씩 대유행 이전의 일상을 회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사람이 “코로나19는 감기에 불과하다,”“오미크론 변이는 축복이며 그저 독감 같은 질환일 뿐”이라고 말한다.

넓은 측면에서 오미크론 변이는 이전의 바이러스와 비교하여 치명률이 낮다. 그러나 예방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경우와 고위험군은 여전히 취약하다. 또, 오미크론 변이는 낮은 치명률에도 감염력이 매우 높아 매우 위험한 전염병이다. 치명률이 낮아도 감염력이 매우 높으면 발생하는 환자의 절대적인 숫자가 많아 사망자의 규모도 크고 의료기관에도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몇 주 동안, 오미크론 변이가 기세를 올리면서 응급실에서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확진’을 마주하는 상황이 증가했다. 바이러스성 폐렴 자체가 초기에는 증상이 애매해서 진단하기 어렵고 최근에는 위의 사례처럼 CT와 혈액검사만으로는 의심하기 힘든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의료진이 느끼는 피로도 크고 의료기관이 감당하는 부담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물론 언제까지 높은 수준의 방역을 지속할 수 없다. 또, 감염력이 매우 높은 오미크론 변이에 그런 방역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질병은 과학의 영역에 속하지만, 대유행에 대한 대처는 정책의 영역이다. 따라서 의료인의 입장만 강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우왕좌왕할 수 없다. 오미크론 변이의 기세가 절정을 맞이하고 나중에 코로나19를 풍토병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단순히 대유행이 끝났음을 의미할 뿐, 코로나19가 사라진 것도 아니며 코로나19가 감기와 같은 사소한 질병으로 쇠락했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방역 당국을 비롯하여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고 국민과 소통하여 합의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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