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화염병 항전과 핀란드의 겨울전쟁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511호 (2022-02-28일자)

광기의 침략에 맞섰던 화염병, 우크라이나에선?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 [자료출처:BBC 방송 사라 레인스포드 기자 페이스북]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걱정의 눈빛을 보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침략에 하루이틀 만에 항복할 줄 알았던 이 나라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항전하는 모습에 응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젤렌스키는 미국이 탈출을 제안하자 “내게 필요한 건 도피할 운송수단(Ride)이 아니라 탄약(Ammunition)”이라고 사양한 뒤 키에프 거리에 나섰습니다. 그는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고 시민에게는 화염병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TV에서는 화염병 제조법이 방송됐고 시민들은 화염병을 만들어 SNS에 인증샷을 올리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화염병을 만드는 장면이 해외 방송에 소개됐고 서부 지역의 맥주회사에서는 화염병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구 언론에선 우크라이나의 외로운 전쟁을 ‘화염병 항전’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영미권 방송 앵커나 리포터의 입에서는 화염병을 가리키는 ‘몰로토프 칵테일’이 시시각각 나오고 있습니다.

몰로토프 칵테일이란 이름은 1939년 11월 핀란드를 침공한 ‘겨울전쟁’에서 유래했으며, 당시 핀란드 침공이 지금 우크라이나의 상황과 흡사해서, 러시아에겐 가슴 찔리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몰로토프는 당시 소련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를 가리킵니다. 소련이 그해 8월 독일과맺은 ‘독소불가침 조약’의 다른 이름인 ‘몰로토프 리벤트로프 조약’에 등장하는 그 인물입니다.

몰로토프는 핀란드의 퀴외스키 칼리오 대통령에게 핀란드의 영토와 항구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가 칼리오가 거절하자 “이제 내 역할을 끝났소, 나머지는 붉은 군대가 말할 것이오”라고 통보합니다. 소련은 이번처럼 핀란드가 오히려 자국 영토를 침략했다고 자작극을 벌이고, 7년 전에 소련이 제안해서 체결한 불가침조약을 스스로 깨고 대대적인 공격을 퍼붓습니다.

핀란드는 영국, 스웨덴, 프랑스는 물론이고 독일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소련은 핀란드보다 보병전력 최소 3배, 항공전력 30배, 기갑전력 100배 이상이어서 며칠 만에 핀란드가 항복할 것으로 여겼습니다.
몰로토프는 전폭기의 출격을 앞두고 소련 라디오에서 “핀란드를 폭격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린 핀란드인에게 식량을 보급하는 것”이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합니다.

핀란드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투를 벌였으며 화염병으로 소련의 전차에 맞섭니다. 소련군 전차가 폭설 때문에 엉거주춤하고 있을 때, 핀란드군은 ‘몰로토프 빵 바구니(Molotov bread baskets)’를 받았으니 칵테일로 답례하겠다며 화염병을 던집니다. 이것이 ‘몰로토프 칵테일’의 어원이지요. 핀란드 주류회사 알코는 이번 우크라이나의 프라브라 브루어리처럼 화염병을 대량 생산해서 전선에 공급합니다. 겨울 전쟁에서 몰로토프 칵테일은 80여 대의 전차를 파괴했으며, 소련군은 화염병 생산공장을 폭격합니다.

핀란드 알코의 화염병(왼쪽)과 우크라이나 프라브다 브루어리의 화염병.

소련군은 이듬해 3월 지휘관을 교체하고 90만 명의 병력을 더 투입해서 마침내 주력 전선을 뚫습니다. 핀란드는 결국 소련에 항복하고 영토의 11%를 내주었지만 끈질기게 버틴 덕분에 이웃 발틱3국과 달리 소련에 흡수되는 운명을 피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겨울 전쟁’과 닮은 점이 적지 않습니다. 핀란드 국민이 모든 도로 표지판에 ‘모스크바’로 써놓아 소련군 전차부대에 혼란을 주려고 했듯, 우크라이나 국민은 표지판을 없애고 있습니다. 당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헝가리, 이탈리아 등에서 자원병이 파견됐는데, 젤렌스키는 어제 세계 각국에 자원병 파병을 요청했습니다.

몰로토프 칵테일이 겨울전쟁처럼 효과를 발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화염병은 사실 겨울전쟁 이전인 스페인 내전, 일본과 소련이 맞붙은 노몬한 사건(할인 골 강 전투) 등에서도 소련제 탱크를 파괴하는 데 효력을 발휘했지만, 겨울전쟁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른 뒤 소련이 전차를 화염에 강하게끔 개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대다수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결국 러시아의 막강한 힘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우크라이나는 혹독한 기후와 험난한 지형의 핀란드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현대전에선 도시의 빌딩 숲이 하나의 정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결사항전의 정신이 조국을 지켜낼 수도 있다고 기대합니다. 겨울전쟁에서 활약했던 전설적 저격수 시모 해위해 같은 군인이 키에프의 지형지물을 활용하고 외인부대 전투원들이 자원병으로 참여한다면 모르겠지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로선 최대한 버티고 자유세계의 제재와 지구촌의 항의에 러시아가 물러서서 협약을 맺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일 겁니다.

지금은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며 우크라이나의 행운을 비는 수밖에 없군요. 자유와 독립을 지키려는 우크라이나의 ‘몰로토프 칵테일 항전’이 승리해야 더 이상 지구촌에서 광기의 전쟁이 확산되지 않을 텐데…. 우크라이나 국민들! 눈물 닦고 힘내시기를….


[오늘의 음악]

우크라이나는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에서부터 블라디미르 호르비츠, 에밀 길렐스, 스비아토슬파프 리히테르, 슈라 체르카스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레오니드 코간, 미샤 엘먼, 나단 밀스타인, 발렌티나 리시차 등 수많은 음악가를 배출했지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음악사전에선 아직 상당수를 러시아 음악가로 소개하고 있지만…. 오늘은 에밀 길렐스가 연주하는 멘델스존의 무언가, 레오니드 코간이 연주하는 파가니나의 칸타빌레 들으면서 평화를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 멘델스존 무언가 – 에밀 길렐스 [듣기]
  • 파가니니 칸타빌레- 레오니드 코간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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