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이자 과학자인 ‘의사과학자’, 의사의 5~10% 불과

의사이자 과학자인 ‘의사과학자’, 의사의 5~10% 불과
[사진=MIND_AND_I/게티이미지뱅크]
진료를 보고 학생 교육도 하는 의사에게 연구까지 하라고 한다면? 밤과 새벽 시간 짬을 내 해야 하는 상황. 이에 스승인 선배 의사들이 젊은 의사들에게 이처럼 ‘슈퍼맨’이 되라고 요구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려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

일반인이 생각하는 의사의 직무는 진단, 치료, 수술 등이다. 하지만 의사의 역할은 사실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교직원 신분일 때는 학생을 교육하고 연구를 진행하며 여기에 병원 행정 업무와 학회 활동 등 원외 활동까지 한다.

국내 의료 환경에서 의사는 멀티태스킹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원 수익 창출과 직결되는 임상의로서의 역할에 주력하고 연구 활동은 뒤에 놓이게 된다.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해도 1~2년이면 지쳐 ‘지속 불가능한’ 업무가 된다는 것.

의사과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재정 지원이 필요한 가운데, 근래 들어 국내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가 8개 병원을 선정해 시행 중인 ‘혁신형 의사과학자 공동연구사업’을 통해 의사과학자가 배출되고 있는 것.

지난 2019년 7월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2년 반 동안 목표치를 크게 초과한 사업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인 전문의 취득 7년 이내 임상의들은 최종 목표의 290%에 달하는 SCI급 논문 발표 실적을 거뒀고, 특허 출원과 등록은 목표치의 200%를 달성했다. 제품화, 기술이전, 창업, 고용창출 등에서도 유의한 성과를 도출했다.

서재홍 의사과학자병원협의체 회장(고대구로병원 종양내과)은 11일 혁신형 의사과학자 연구사업 성과교류회에서 “우리나라는 인재들이 환자만 보는 의사에 머문다”며 “젊은 의사들에게 시스템, 인프라, 행정 지원 등을 통해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중견 연구자로 성장시키는 것이 이번 사업”이라고 말했다.

의사과학자는 말 그대로 의사이면서 과학자인 사람을 말한다. 미국과 영국 등 의사과학자를 배출하는데 적극 지원하는 국가들은 이들을 통해 바이오 메티컬 산업을 크게 성장시켜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미국국립보건원(NIH)는 1964년부터 의사과학자 육성프로그램을 운영해 총 170만 명의 의사과학자를 배출했고, 최근 15년간 노벨상 수상자 14명을 배출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사들이 연구자로서의 능력을 사장시킨 채 환자 돌보는 일에만 주력하는 견고한 틀이 형성됐다.

코로나 기간 국내에서 신약 개발이 증가했지만, 그보다는 글로벌 빅파마들과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격차를 더욱 실감하게 된 이유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나가기 위한 인재 양성 부족이 한 원인이다.

서재홍 회장은 “미국은 많은 의사들이 리서치 서클에 들어가 연구를 사업화로 연결하고 창업을 하면서 나라를 먹여 살리는 일들을 한다”며 “국내에서는 의사의 90~95%가 환자를 보고 5~10%만 연구를 한다. 우리나라도 의사과학자 비율을 20~30%까지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사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해 시작한 이번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또 이번 사업에 참여한 의사과학자들이 사업이 끝난 뒤 다시 임상의로 돌아가지 않고 의사과학자로 남으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의사과학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부족하고, 병원도 당장 수익과 직결되지 않는 의사과학자들을 달갑게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도 미흡하다. 미국은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에게 인건비를 지원하지만, 우리나라는 연구비를 인건비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사과학자들이 임상의사로서의 급여 외에 추가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신대복음병원 오경승 병원장은 “병원은 연구, 교육, 진료 세 가지 다 잘하는 슈퍼맨을 원한다. 대학 급여의 틀에 맞춰 급여를 올리기도 어렵고 진료비는 의료보험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젊은 의사들에게 이것저것 요구할 수는 없다”며 “정식 교원과 임상의사 투트랙으로 급여를 상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젊은 의사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메디컬 산업이 보다 성장하려면 임상현장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의료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의사과학자들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연구 환경을 보장해 연구 동기를 고취하고 연구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번 사업과 같은 후속 지원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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