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예방접종서 없으면 출국 못했던 까닭?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㉓마지막 콜레라 집단 발병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80년 9월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김일순 교수 연구실로 보건복지부 라도헌 차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 교수가 외국 출장 중이라 전임강사인 필자가 전화를 받았는데 “왜 찾으시냐?”고 물었더니 콜레라 방역에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콜레라가 잊힌 병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콜레라가 발생하면 전국이 초비상에 들어갔다. 필자는 전남 신안군에서 콜레라 환자가 첫 발병했고 서해안과 남해안까지 환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했기에 전문가들의 방역 투입에 공감하고 인력을 확보해 곧 연락하기로 했다.

당시 전국에 의과대학이 8개 있었는데, 예방의학 전공의가 별로 없었다. 연세대 의대에서는 매년 2~3명씩 예방의학 전공의를 배출하고 있었다.

필자는 1970년에 동해안에 콜레라가 만연하여 1주일을 강릉에 머물면서 매일 삼척에서 고성까지 방역활동에 참여하였던 기억을 더듬으며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 전공의들로부터 콜레라 방역에 참여하겠다는 동의를 받았다.

‘강화지역사회보건사업’을 위해 강화군보건지소에 파견돼 있던 전공의를 합류시키기 위해 보건소장에게 사유를 설명하고 휴가를 받도록 했다. 전공의과정을 마치고 군 복무 중인 전문의들에게도 연락해 휴가를 받고 방역에 동참하도록 권유했다.

이에 총 11명이 참여하기로 하고 라도헌 차관에서 보고했다. 이들은 전남 서해안과 남해안 군 단위에 파견되어 방역활동을 했다. 역학과 보건통계학 과목을 이수했으며, 10년 전에 동해안에서 콜레라가 만연할 때 방역 활동한 내용과 방법을 여러 차례 듣곤 하였기에 해당 지역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방역 업무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방역과 관련해서 의문 사항이 있으면 전화로 묻도록 했고, 혹시 밤늦게라도 부담감 없이 필자의 집으로 전화하도록 했다.

콜레라 방역 현지 파견자들에게서 쉴 틈 없이 연구실로 전화로 방역 활동 내역을 보고 받았다. 필자는 이를 종합해 보건복지부 담당 과장에게 전화로 알리곤 했다.

콜레라 방역이 별 문제 없이 완결됐다. 방역에 파견되었던 후진들은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활약했다고 전했다. 필자는 이들의 표정을 읽으면서 흐뭇했던 당시가 눈에 밟히곤 한다.

당시 언론은 전남 신안군 안좌면 두리마을이 첫 발병지로 보도했지만, 나중에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정순 교수팀의 역학조사 결과 목포에서 유행하다가 상가에서 상어고기를 먹은 주민을 통해서 번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결론내려졌다.

김 교수 팀에 따르면 평소 목포에서 8~9월 59~65명이 사망했지만 80년에는 8월 140명, 9월 120명이 숨졌다. 병원에서는 콜레라로 의심되는 환자가 많았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설사를 대수롭지 않았고 의무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아 콜레라가 유행했던 것도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 그때에는 지금처럼 전염병 발생 신고체제도 정비되지 않았다. 당시 세균무기로 북한이 사용했을 가능성에서부터 수많은 가능성을 따져가며 현장 조사를 벌여 그같은 결론을 얻었다.

1980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에 갈 때에는 여권과 콜레라 예방접종 증명서를 소지해야 했다. 대한민국이 콜레라 유행지역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0년 방역 이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1980년 공식적으로 106명의 환자와 4명의 사망자를 보고하고나서, 전문가들과 보건당국의 협업으로 연중 감시 체계와 예방 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환자가 발병해도 조기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신문에 콜레라 방역 양성 관련해서도 조그맣게 몇 줄 기사가 실릴 뿐이다. 우리 전문가들이 방역활동에 참여하여 쌓은 경험은 개발도상국을 위해 자문을 할 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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