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효 만병통치약인데, 끊는 게 목적이 된 약?

[소아크론병 명의 최연호의 통찰] 스테로이드에게 고함

참 묘한 약이다. 열감기가 심할 때 조금만 사용해도 열이 떨어진다. 두드러기가 심해도 주사 한 방이면 바로 사라진다. 스테로이드! 관절 통증에도 사용하고 얼굴신경마비에도 쓸 수 있다. 암이건 자가면역질환이건 스테로이드는 온갖 질병에 많이도 사용된다. 겉으로 보이는 피부에도, 속으로 숨어있는 장 점막에도 염증이 있는 부위는 모두 듣는다. 스테로이드로 통칭되는 이 부신피질 호르몬은 실로 만병통치약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파나케이아(Panacea)는 만병통치의 여신이다.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와 고통을 달래주는 여신 에피오네(Epione)의 딸로 네 명의 자매가 더 있었는데 히기에이아(Hygiea)는 위생의 여신, 이아소(Iaso)는 치유의 여신, 아글레이아(Aglaea)는 생기의 여신, 그리고 아케소(Aceso)는 치료과정의 여신이다.

파나케이아는 병자를 고치는 데 사용하는 약으로 의미가 바뀌어 현대에 와서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 파나세아(Panacea)로 불리게 되고, 스테로이드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듯하다.

파나케이아가 언니인 히기에이아보다 인기도 높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위생(Hygiene)보다 만병통치 치료약에 관심을 더 가지니 스테로이드는 여전히 약품 목록 최상위에 올라있다.

사실 부신피질호르몬은 주로 강력한 항염증제 및 면역억제제로 사용된다. 1935년 미국의 에드워드 켄달과 스위스의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이 부신피질 추출액에서 코르티손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메이요 클리닉의 필립 헨치가 이 물질을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적용하면서 스테로이드의 치료 역사는 시작됐다.

결국 1950년 이 세 명은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노벨상을 탈 정도로 중요한 약인 스테로이드는 효과가 강한 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의료 전선에서는 끊는 게 목적인 약이 되어버렸다.

처음 사용하면 일단 반응이 온다. 증세가 호전되는 것이다. 그런데 끊으면 다시 재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계속 복용하면 안 된다. 장기 복용 시 몸의 호르몬 체계가 바뀌기 때문에 부작용은 거의 모두가 경험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스테로이드는 의사와 환자 중 누가 더 선호할까? 의사다. 의사의 관점에서 볼 때 크게 도움이 된다. 일단 환자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좋은 약이 못된다.

내가 어떤 급성 질환에 걸렸다고 상상해보자. 만약 스테로이드가 단 한 번 사용해 병을 낫게 해준다면 이 약은 명약이다. 단기간만 쓰는 스테로이드는 몸의 호르몬 체계에 영향을 주지 않아 부담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스테로이드가 처방되는 병들이 급성 질환보다는 주로 만성 혹은 중증 질환이라는 점이다. 이런 질병에는 워낙 선호되는 치료제가 정해져 있는데 그 약이 잘 듣지 않으면 어쩔 수없이 스테로이드가 급하게 사용되곤 한다. 만성 혹은 중증 질환에서 증상이 악화되면 초기에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1~2주 이상 사용하고 두어 달에 걸쳐 서서히 줄여나간다.

처음에 호전되던 증상은 스테로이드를 줄이는 과정에서 다시 나빠지기 쉽다. 그러면 또 스테로이드를 써야 하나? 그래서 스테로이드가 환자 입장에서 볼 때 훌륭한 약이 될 수는 없다. 만성질환은 매우 천천히 진행하면서 종국에는 큰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열심히 컨트롤해도 보이지 않는 만성질환의 장기 경과를 붙들어 맬 수는 없다. 스테로이드는 그때뿐이다. 고혈압이 생기면 혈압 강하제를 평생 복용한다. 고지혈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식이 요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지질을 떨어뜨리는 약을 먹게 된다. 만성질환에 쓰이는 약들은 이렇게 장기간 사용되는 법인데 스테로이드는 끊는 게 목적인 약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들도 자신이나 가족에게 스테로이드를 처방하겠냐고 물으면 대부분 주저한다. 그것이 진실이다.

의사와 환자에게 스테로이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귀에 익숙한 노래 아이유의 “너의 의미’에 나오는 김창완의 마지막 독백이 절로 떠오른다.

“스테로이드야, 도대체 넌 나에게 뭐냐?”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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