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가짜뉴스,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Dr 곽경훈의 세상보기]의료영역의 표현의 자유

로버트 말론[유튜브 캡처]
암로스 라이트 경(1861-1947)은 영국의 유명한 의학자다. 그가 활동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은 의학의 중요한 발견이 집중한 시기였고 라이트 역시 장티푸스 백신을 개발해 보어전쟁에서 영국군의 사망자를 크게 낮추는 업적을 남겼다(라이트가 개발한 장티푸스 백신 덕분에 1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군에는 장티푸스로 인한 사망자가 거의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의학자로 암로스 라이트의 활약은 거기까지다. 1차 대전 당시 영국군은 라이트에게 ‘상처감염(Wound infection)’을 줄일 방법을 개발하는 임무를 맡겼고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실패에 크게 낙담한 라이트는 ‘상처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감염을 치료하는 항생제를 만들려는 시도, 이른바 ‘마법의 탄환’이라 불리는 신약을 개발하려는 시도에 매우 회의적일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반대했다(그런데 이율배반적이게도 페니실린을 개발한 알렉산더 플레밍은 라이트 아래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렇게 꽤 훌륭한 업적을 지닌 연구자가 한때 자신이 주도했던 분야에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 심지어 해당 분야의 주류를 비난하고 극단적으로 공격하는 사례는 의학에서 드물지 않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아 백신반대론자 사이에서 유명세를 얻은 로버트 말론도 여기에 해당한다. 말론은 1980년대 후반 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 최초의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에드워드 소크가 건립한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일하며 mRNA 백신의 초기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하지만 mRNA 백신을 상용화하는 것에는 아주 많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했다. 말론의 업적은 꽤 중요하지만 ‘mRNA 백신의 아버지’ 혹은 ‘mRNA 기술의 창조자’로 불릴 수준은 아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하며 mRNA 기술을 이용한 백신이 널리 사용되고 개발을 주도한 카탈린 카리코, 피터 컬리스 박사 등이 유명세를 얻자 로버트 말론은 다른 방식으로 유명세를 얻고자 결심한다. 스스로 ‘mRNA 백신을 발명한 사람’이라 칭하며 ‘mRNA 백신은 매우 위험해서 사람에게 접종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대부분의 병원이 수익을 위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를 조작하여 과장한다,’ ‘이버멕틴(구충제)을 복용하면 코로나19를 치료할 수 있다,’ ‘국가가 주관하는 대규모 백신접종은 1930년대 나치독일이 할 만한 행위이며 백신을 접종하면 코로나19에 한층 쉽게 걸린다’ 같은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21년 12월, 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파이(Spotify)의 최고 인기 팟캐스트인 ‘조 로건 익스피어런스(Joe Rogan Experience)’에 출연해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섞은 특유의 주장을 퍼트렸다.

그러자 적지 않은 과학자와 의사가 소프티파이에 해당 팟캐스트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특이하게도 캐나다의 전설적 싱어 송라이터인 닐 영이 동참, 스포티파이에서 해당 팟캐스트를 내리지 않으면 자신의 노래를 모두 철수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스포티파이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정말로 자신의 노래를 모두 내렸다. 또 다른 유명 싱어 송라이터 조니 미첼도 동참해 스포티파이에서 자신의 노래를 철수하겠다고 통보했다.

‘Heart of Gold’의 닐 영과 ‘Both Sides Now’의 조니 미첼은 상업적 이유로 거짓 정보를 유포한 스포티파이에서 모든 노래를 내렸다.

물론 스포티파이가 닐 영과 조니 미첼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조 로건 익스피어런스’는 매우 인기 있는 팟캐스트이며 스포티파이가 독점해 스트리밍하는 조건으로 조 로건에게 지불한 금액이 1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컸지만, 의외로 파장은 컸다. 최근 영미 보도에 따르면 닐 영과 조니 미첼의 ‘양심적 저항’으로 스포티파이의 회사 가치가 20억~40억 달러 하락했다고 한다.

이 파동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의료와 관련한 정보를 다룰 때, 과연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할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밝힐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해당한다. 그래서 ‘연방정부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주의자’도 단지 그런 생각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미국정부가 처벌하지 않는다. 이해하기 힘들고 심지어 ‘괴랄’한 교리를 지닌 신흥종교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정부가 용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건강 혹은 의료와 관련한 민감한 주제에서 과연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할까?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전문가’를 자처하며 다양한 주장을 펼쳤고 가운데는 ‘자연면역을 시도하자,’ ‘정부가 검사횟수를 조작하여 환자 숫자를 통제한다,’ ‘빌 게이츠가 돈벌이를 위해 코로나19를 만들었다,’ ‘코로나19의 위험은 과장됐고 그저 감기에 불과하다,’ ‘mRNA 백신을 맞으면 유전자가 손상된다,’ ‘mRNA 백신에 마이크로 로봇이 들어있다,’ ‘mRNA 백신에 기생충이 있다,’ ‘이버멕틴을 복용하면 코로나19가 낫는다’ 같은 황당한 내용도 적지 않다. 과연 어디까지를 ‘표현의 자유’로 허용해야 하며 어디서부터 ‘공동체에 대한 위협’으로 통제해야 할까?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고 일상을 회복해도 이 물음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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