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유사 의학이 꿈틀대는 까닭

[Dr.곽경훈의 세상보기]유사과학과 유사의학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을 비롯한 다른 천체가 공전한다는 천동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반을 마련하고 프톨레마이오스가 집대성한 이후, 2000년 가까이 철옹성 같은 권위를 자랑했다. 이런 천동설의 위력은 과학에만 국한하지 않아 신학과 철학에도 크게 영향을 주어 중세사회의 지적 기반을 만들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이런 천동설을 반박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하며 지구는 수성, 금성, 화성 같은 다른 천체와 마찬가지로 태양에 종속한 행성에 불과하다’는 주장, 이른바 지동설을 펼친 최초의 인물이다.

다만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이론을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다가 1543년 사망하기 직전에 조심스레 발표했다. 앞서 말했듯, 천동설은 중세사회의 지적 기반에 해당해서 그걸 부정하면 자칫 이단으로 몰릴 위험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계승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교황청에 소환돼 이단으로 재판받는 고초를 겪었다(갈릴레오가 교황을 비롯한 여러 고위성직자와 친밀했음을 감안하면 당시 사회지도층이 지동설을 얼마나 위험하게 인식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천동설의 권위가 무너지고 지동설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반에 이르면 지동설이 권위를 얻어 뉴튼 같은 학자가 지동설에 기반하여 새로운 물리법칙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지동설은 성직자,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 같은 제한적인 집단에만 큰 충격을 주었을 뿐, 평범한 대중에게는 별다른 혐오나 반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반면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지식인 혹은 교양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대중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다. 절대자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최초의 세포’로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은 ‘지구가 태양을 돈다’와는 전혀 다른 힘을 지녔다. 지구가 태양을 돌든, 태양이 지구를 돌든,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저 말장난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원숭이와 인간의 조상이 같다,’ ‘따지고 보면 쥐와 인간의 조상도 같다,’ 심지어 ‘아주 멀리 거슬러 오르면 바퀴벌레와 인간의 조상도 같다’는 주장은 19세기 런던 거리의 신문팔이소년에게도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화론이 세부적인 부분까지 구체화하고 많은 과학적 증거가 쌓였으며 그에 기반한 다양한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요즘에도 여전히 부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은 한 걸음 나아가 세력을 규합하여 진화론을 부정하는 학문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유사과학’인 ‘창조과학’이 거기에 해당한다.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에서 시작한 창조과학은 한국에서도 보수적인 기독교를 배경으로 위세를 떨치며 진화론을 부정하고 반박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그런데 정작 어떤 창조과학자도 네이처, 셀, 사이언스 같은 ‘공신력있는 저널’에 논문을 투고하지 않는다. 그들은 화석과 지질학적 증거를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대중을 현혹하는 강연과 팟캐스트, 유튜브 영상에만 집중할 뿐이다(창조과학자도 종종 논문을 발표하나 아주 영세하고 돈만 내면 어떤 논문이든 실어주는 저널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유사과학’에 불과하며 ‘진지한 과학’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창조과학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의학에도 ‘유사의학’이 존재한다.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과학이 화석과 지질학적 증거를 제멋대로 짜깁기한 논리를 바탕으로 ‘너희는 모두 속았다,’ ‘주류과학은 진실을 외면한다,’ ‘너희에게 진정한 진리를 알려주마’ 같은 말로 대중을 현혹하는 것처럼 ‘유사의학’도 자기네 입맛에 맞게 짜깁기하고 심지어 교묘하게 조작한 통계를 내세워 ‘정부와 다국적 기업이 합작하여 시민을 속인다’, ‘주류의학은 돈벌이에 영혼을 팔았다’, ‘다국적 기업과 정부의 핍박을 무릅쓰고 우리가 진실의 횃불을 들겠다’ 같은 말로 대중을 선동한다.

또, 어떤 창조과학자도 셀,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공신력 있는 저널’에 논문을 투고하지 않는 것처럼 대부분의 유사의학자도 NEJM, BMJ, Lancet 같은 ‘공신력있는 의학저널’에 논문을 투고하지 않는다. 돈만 내면 논문을 실어주는 조잡한 ‘사이비 저널’에 투고할 뿐이다(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백신 반대론의 대부’인 앤드류 웨이크필드는 ‘MMR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담긴 논문을 ‘란셋’과 ‘BMJ’에 투고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논문을 조작한 것으로 밝혀져 해당 저널에서 철회했을 뿐만 아니라, 웨이크필드도 의사면허를 박탈당했다).

2년 남짓 지속한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이하여 이런 ‘유사의학’이 독버섯처럼 우리 주변에서 영향력을 얻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우선 코로나19는 모두 처음 경험하는 ‘신종전염병’이다.

두 번째로 2009년 신종플루도 대유행에 해당하나 환자와 사망자의 규모에서 이번 대유행에 필적하는 것을 찾으려면 1918년 스페인독감까지 거슬러야 한다. 그래서 모두에게 생경하다. 마지막으로 주류의학은 근거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해답을 찾는 ‘신중한 과학’일 뿐, 직관적으로 단번에 선명한 해답을 제시하는 ‘호쾌한 예언술’이 아니다. 유사과학은 이런 부분을 악용하여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영향력을 얻으려 한다.

다행히 높은 예방 접종률을 본다면 아직 한국 사회에서 ‘유사과학’은 큰 힘을 얻지 못한 듯하다. 다만 ‘주류의학’에 몸담은 전문가, 사회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경각심을 가지고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대유행이 끝난 뒤 ‘유사의학’이란 새로운 위험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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