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닌 까닭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오미크론,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닌 까닭
코로나 변이 오미크론.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언어는 묘한 힘을 지닌다. 내용 혹은 본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그저 ‘부르는 방법’을 바꾸는 것만으로 완전히 다른 영향력이 생긴다.

예를 들어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한 번에 말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슨 내용인지 추측하기 힘들다. 가까스로 내용을 이해해도 마음에 특별하게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김용균법’이란 이름은 다르다. 2018년 12월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운송설비를 점검하다 비극적인 사고,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인재로 사망한 청년이 떠올라 쉽게 법안의 취지에 공감할 수 있다.

‘민식이법’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을 담고 있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우나 ‘민식이법’이란 짧은 단어에는 모두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와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떠올릴 것이다.

의학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오늘날의 조현병은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회활동을 감당할 수 있는 만성질환에 해당하나 과거에는 ‘정신분열병’이란 이름에서 풍기는 불길한 느낌 때문에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어려웠다(한국에서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바꾼 것에 이어 미국에서도 ‘schizophrenia’란 병명을 한층 온건한 단어로 바꾸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독감(毒感)도 ‘이름에 문제가 있는 질병’일 가능성이 크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으로 1918년의 스페인독감, 1968년의 홍콩독감, 2009년의 신종플루처럼 대유행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매년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주의해야할 질병’이다. 하지만 ‘독감’이란 이름 때문에 ‘독한 감기’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2년 전부터 시작해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대유행’을 살펴봐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19년 겨울, 중국 우한에서 흉흉한 소문이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우한폐렴’ 혹은 ‘중국폐렴’이라 불렀다. 하지만 특정한 지역 혹은 국가와 관련한 단어를 질병에 사용하면 의도하지 않은 차별과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 곧 ‘코로나19’로 이름이 바뀌었다(따지고 보면 스페인독감도 정작 스페인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미국에서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국가는 당시 1차 대전에 참전하고 있어 언론 통제를 통해 유행을 숨겼고 중립국이자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스페인이 오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 대유행이 진행하면서도 그런 ‘이름의 위력’을 확인할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델타 변이를 몰아내고 ‘우세종’으로 자리 잡은 오미크론 변이가 이전의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비교하여 전파력이 월등히 강력하면서도 위중증으로 악화하는 확률이 낮아 등장한 단어다. 그러니까 무시무시한 전파력을 지녔으나 위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오미크론 변이에 인구 대부분이 감염되면 ‘집단면역’이 이루어져 지긋지긋한 대유행도 끝을 보일 테니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어떤 질병도, 어떤 변이도, ‘선물’일 수 없다. 오미크론 변이가 델타 변이와 비교하여 위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감기 같은 수준의 질환’은 결코 아니다.

2009년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기존의 독감과 비교하여 치사율이 크게 높지 않았음에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감염자가 발생하다보니 사망자의 숫자도 증가했던 것처럼 오미크론이 위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낮아도 무시무시한 전파력을 지녔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하루에 수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 델타 변이로 하루에 수천 명의 확진자가 발생할 때보다 위중증 환자의 숫자는 훨씬 많아질 수밖에 없다. 덧붙여 오미크론 변이의 위중증 악화 가능성이 낮은 것에는 예방접종도 크게 기여했다. 고위험군과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위험하며 ‘예방접종 대신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되어 면역을 얻겠다’는 발상은 황당할 만큼 어리석은 생각이다.

결국 ‘크리스마스 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화한 방역조치에도 지난 며칠 동안 확진자 숫자가 다시 증가했고 많은 전문가가 2월 또는 3월에 수 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예측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불안할 필요는 없겠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단어가 주는 ‘근거 없는 낙관’에 치우치지 말고 차분하게 오미크론 변이가 가져올 유행의 절정을 준비했으면 한다. 아직 예방접종을 완료하지 않았다면 가까운 의료기관에 접종 날짜를 예약하는 것이 가장 좋은 준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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