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 마취제’ 케타민으로 우울증 치료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환각 증상을 유발하는 전신마취제여서 한때 ‘클럽 약물’로 불렸던 케타민이 치료가 어려운 우울증 치료의 효자로 거듭 태어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영국정신의학 오픈 저널》에 발표된 리뷰를 토대로 미국 건강의학 웹진 ‘헬스 데이’가 27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케타민은 수십 년 전 미국에서 마취제로 처음 승인됐다. 하지만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이유로 ‘스페셜 K’라는 별칭의 파티용 약물로 남용되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표준 항우울제 처방으로도 나아지지 않은 우울증 치료에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약으로 각광받게 됐다. 심지어 하루 안에 우울증 증상을 빠르게 완화시키는 효력을 발휘하곤 한다. 특히 자살충동이나 자해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케타민의 빠른 효력에 주목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미국 곳곳에서 케타민 임상 클리닉이 개업하면서 정신건강전문의가 아닌 마취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곳까지 등장했다.

새로 발표된 리뷰는 정신 질환의 치료제로서 케타민에 관한 출판된 88건의 연구를 집약해 조사했다. 그 결과 치료 내성이 있는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생각의 경우 케타민은 단기간에 빠르고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모든 사람에게 그런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며 그 효력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또 다른 정신질환에도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선 아직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책임자인 영국 엑서터대의 실리아 모건 교수는 “케타민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케타민 처방도 간단하지 않다. 모건 교수는 ‘일반인들이 보통 ’트립(trip)‘이라고 말하는 환각증세가 나타나지 않는지 의사가 관찰할 수 있도록 세밀한 의료 감독 하에 처방되야 한다”고 말했다. 케타민의 환각증세는 현실인식을 왜곡할 뿐 아니라 단기간 혈압상승을 유발할 수 있기에 우울증 치료로 처방되기 전에 의학적, 정신분석학적 진단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약물이 잘 통제된 조건에서 낮은 복용량으로 정신과적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케타민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우울증 치료에 대한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우울증 치료를 위한 의사 처방이 가능했기에 임의적 처방이 이뤄지곤 했다.

그러다 2019년 FDA는 적어도 두 가지의 표준 항우울제에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에 대해 ‘에스케타민(esketamine·상품명 Spravato)’이라고 불리는 케타민 유도체의 사용을 승인했다. 링거에 의해 투여되는 케타민과 달리, 에스케타민은 코점막에 뿌리는 비강 스프레이이다. 하지만 동일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의사의 관리 하에 투여돼야 한다.

케타민과 에스케타민이 우울증을 빠르게 완화시키는 작용원리는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표준 항우울제와 전혀 다른 작용원리라는 것은 밝혀졌다. 케타민은 뇌세포 간의 의사소통을 돕는 글루탐산염이라고 불리는 화학 물질의 활동을 증진시키고 장기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고갈되는 것으로 관찰되는 뇌세포 시냅스의 재생을 돕는다.

존스홉킨스대 불안장애 클리닉의 공동원장인 폴 네스타트 교수에 따르면 에스케타민은 정해진 치료 프로토콜이 있다. 표준 항우울제와 함께 사용되며 처음 한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 복용하고, 그 다음 한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 복용하고, 그 후로는 복용량을 점점 줄여가도록 돼 있다.

문제는 항우울제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또 리뷰에 따르면 케타민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강박장애, 약물의존증 등 다른 정신질환에 도움이 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리뷰에 참여한 연구진은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이 결과는 신중하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네스타트 교수는 “케타민은 우울증에 대한 첫 번째 치료법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에스케타민 투약 기간 동안 환자들은 표준 항우울제 치료는 물론 대화요법 등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네스타트 교수는 에스케타민 처방을 얼마동안 유지해야 하느냐가 명확히 정의돼 있지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히 처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해당 논문은 다음 주소(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bjpsych-open/article/ketamine-for-the-treatment-of-mental-health-and-substance-use-disorders-comprehensive-systematic-review/36E261BFA62CDA6459B88F7777415FDA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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