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병원 의료진은 왜 진료기록을 조작했을까?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환자 사정 눈감은 시술의 문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작년 늦가을, 외할머니가 발열과 호흡곤란으로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당시 외할머니는 90대 후반의 고령이며 4~5년 전만 해도 정정하셨지만 최근 2년 치매가 악화해 침대를 떠나지 못했고 가까운 가족도 알아보지 못했다.

고열과 호흡곤란의 원인은 폐렴과 심부전으로 밝혀졌다. 다만 고령의 중증치매 환자로 기대여명이 몇 주에 불과해서 심부전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폐렴이 호전하면 요양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내과 교수가 나타나 집요하게 TAVI(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란 시술을 권유했다. 외할머니의 심부전은 심장판막의 이상이 원인인 만큼 TAVI를 시행하면 호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기대여명이 몇 주에 불과한 고령의 치매환자에게는 실질적 의미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TAVI는 2000만원을 훌쩍 넘는 비싼 시술이다. 따라서 심장내과 교수의 권유를 거절했다.

하지만 심장내과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TAVI를 권유했고 심지어 필자가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의료인이 아닌 다른 가족에게 협박에 가까운 말을 건네기도 했다.


심근경색은 피떡이 심장근육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을 막는 질환이다. 관상동맥의 주요 부분이 막히면 갑작스레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상대적으로 작은 분지(branch)가 막혀도 심장기능이 감소하여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그런데 심근경색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을 확립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1950~60년대에는 ‘입원 후 절대안정’, ‘모르핀 투여’, ‘산소 공급’이 전부여서 사실상 ‘저절로 호전하는 것에 모든 것을 맡기는 행위’에 불과했다. 1970~80년대에 스트렙토키나제(Streptokinase)를 시작으로 혈전용해제(Thrombolytic agent)를 투여하기 시작했지만 관상동맥을 막은 혈전을 직접 제거하는 방법은 아직 가능하지 않았다.

물론, 1950~60년대에도 확실한 치료법이 하나 있었다. 관상동맥우회술(CABG, coronary artery bypass graft)이다. 환자 손목의 요골동맥(Radial artery)이나 가슴의 내흉동맥(Internal thoracic artery)을 잘라내서 막힌 관상동맥 대신 이식하는 방법이다. 다만 수술이며 더구나 개흉술(Thoracotomy, 흉부를 열고 시행하는 수술)이라 신속하게 진행하기 어렵고 해당하는 사례도 제한적이다.

1990년대가 돼서야 관상동맥조영술(Coronary angiography), 요골동맥 혹은 대퇴동맥(Femoral artery)을 통해 관상동맥까지 카테터를 삽입하여 혈전을 제거하고 좁아진 부분을 확장하며 스텐트(Stent)를 삽입하는 시술이 보편화했다.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흉통, 식은땀, 호흡곤란을 느낀 환자가 응급실을 찾으면 심전도를 시행한 후, 심근경색이 의심되면 20~30분 이내에 즉시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하여 치료하는 방식은 기껏해야 3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질 뿐이다.

이렇게 요골동맥 혹은 대퇴동맥을 통해 원하는 혈관까지 카테터를 삽입하는 시술은 다른 질환의 치료에도 크게 기여했다.

뇌동맥류(뇌동맥의 약한 부분이 부풀어 올라 작은 꽈리 같은 병변을 형성한 상태)와 그런 뇌동맥류가 파열해 발생하는 자발성 지주막하출혈(Spontaneous subarachnoid hemorrhage)는 과거에는 신경외과에서 두개골을 열어 직접 뇌동맥류를 제거하고 지혈하는 수술을 시행했지만 이제는 많은 사례에서 뇌혈관조영술을 이용하여 치료한다(두개골을 열어 직접 뇌동맥류를 제거하고 지혈하는 수술과 비교하여 뇌혈관조영술은 회복이 빠르며 신속하게 시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유증도 적다).

심장과 직접 연결된 대동맥(Aortic dissection)이 찢어지는 대동맥박리(Aortic dissection)도 예전에는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이었지만 이제는 상행대동맥박리에만 수술을 시행하고 하행대동맥박리에는 TEVAR(Thoracic endovascular aortic repair)와 EVAR(Endovascular aneurysm repair) 같은 시술을 사용한다(TEVAR과 EVAR도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삽입하여 시행하는 시술이다).

TAVI는 이런 ‘혈관조영술을 이용한 시술’ 중에 가장 최근에 보편화했다. 이전에는 심장판막에 이상이 발생하면 개흉술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TAVI의 개발 덕분에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한층 손쉽게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TAVI뿐만 아니라 모든 시술과 수술은 시행할 때, 환자의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기대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게 무리하게 시행하는 시술과 수술은 고통만 가중할 뿐,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TAVI도 마찬가지다. 개흉술과 비교하면 신속하게 시행할 수 있으며 환자가 감당할 고통과 후유증도 적지만 대퇴동맥에 카테터를 삽입하는 것도 간단하거나 사소한 행위는 아니다. 그러니 의식이 명료하거나 기대여명이 몇 년 이상 남았다면 고려할 수 있지만 기대여명이 몇 주밖에 남지 않는 90대 후반의 중증치매 환자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시술이 틀림없다.


며칠 전,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주치의인 흉부외과 교수의 사인을 도용해 수십 명의 환자에게 TAVI를 시술했다는 내부 고발이 있었다.

병원은 코로나19 여파와 임상강사 파업 등으로 정상적 병원 업무가 진행되기 어려운 과정에서 일어난 행정 오류라고 항변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진료기록은 담당 의사의 권리이자 책무이기 때문이다. 심장내과 의사가 흉부외과 의사의 사인을 도용해 의무기록을 작성했다면 이는 심각한 범죄행위인데, TAVI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무리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TAVI를 진행하는 것이 환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환자를 ‘실적 올리기’ 혹은 ‘연구할 사례’로만 인식했기 때문일까?

물론, 대부분의 심장내과 의사는 선량한 태도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정화하지 못하는 집단은 존중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외부의 가혹한 간섭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의 권위와 명예는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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