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03호 (2021-12-20일자)

국경없는 의사회 출범일, 김용민 박사의 행복

“우리의 설립이념은 단순합니다.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 지금은 당연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국경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971년 오늘(12월 20일), 베르나르 쿠시네르를 비롯한 프랑스 의사들과 의학 담당 기자들이 함께 만든 ‘국경없는 의사회(Doctors Without Borders)’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나이지리아의 비아프라가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내전에 휘말렸을 때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한 의사들이 참상을 목도한 것이 씨앗이었습니다. 의료진은 국제 의료 봉사단체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에 공감한 기자들이 단체 설립을 호소하는 기사를 통해 의료인들의 호응을 이끌었습니다.

의사회는 이듬해 지진 피해지역 니카라과에서 시작해서 홍수에 휩쓸린 온두라스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했고 1974년 캄보디아 난민들을 위한 대규모 의료지원 프로그램을 펼쳤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스리랑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아이티 등 의료가 필요한 곳이면 달려갔습니다.

단체는 서울평화상(1996), 노벨평화상(1999) 등을 수상했지만 갈채만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1979년 단체를 안정적 조직화하는 것과 게릴라 의사단체식으로 운영하는지에 대한 내홍 탓에 조직이 쪼개졌고, 지난해에는 조직에 백인 우월주의가 만연하다는 내부 비판으로 진통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활동가들이 전염병에 감염되거나 사건, 사고로 덧없이 희생됐습니다. 올해만 해도 에티오피아에서 3명이 피살됐고, 아이티에서는 갱단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구급차가 피격됐습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있으니, 진정 생명을 건 봉사라고 하겠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21개 나라에 사무실, 7개국에 지소가 있으며 이들 나라의 의료진이 70여 개국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2012년 ‘국경없는 의사회 한국’이 닻을 올렸고, 소속 활동가들이 각국에서 인술을 펼치고 있지요.

한국 단체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투명한 회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순수 민간자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국제회계 기준의 재무제표를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수입은 개인후원금이 95%, 기업 후원금이 5%였으며 단체 운영을 위한 일반경상비로는 2%를 쓴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 한국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금도 받지 않으며, 독립성, 중립성, 공정성의 원칙을 준수하여 후원금을 모금하고 사용합니다. 즉,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쓰이는 후원금에는 어떤 조건도 결부돼 있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인종, 종교, 성별, 정치적 이익에 관계없는 독립적인 의료지원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UN으로부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의료지원을 승인받은 것은 이런 독립성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국경없는 의사회 한국은 지난해 대구에서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긴급구호활동을 펼쳤고,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과 맞서고 있습니다.

저는 존경하는 의대교수의 연구실에 들렀다가 우연히 한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충북대 정형외과 교수로 재직하다 아이티 대지진을 계기로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던 김용민 박사입니다. 그는 안정적 교수직을 던진 것을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는 성경 구절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행복하게도, 주위에서 보물을 발견한 의사들을 많이 봅니다. 1950년대 의료지원을 받던 대한민국, 지금은 숱한 의사들이 닥투게더, 열린 의사회, 아프리카미래재단, 글로벌케어, 비전케어, 굿뉴스월드 등을 통해 해외로 인술의 손길을 뻗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의료인들이 숱한 단체를 통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지요. 지난해 대구에서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전국에서 몰려와 땀 흘린 의료인들도 진정한 보물을 아는 사람들이었겠죠? 국경없는 의사회 홈페이지에는 후원자의 명단이 있던데, 여기에도 병원과 의사가 적지 않더군요.

삭막한 겨울입니다. 코로나19 탓에 더 추운 겨울, 보물을 나누는 분들에게 고마워하고, 또 저마다의 보물을 찾아 온기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요? 언젠가 먼 훗날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라고 기억할 수 있도록.


[오늘의 음악]

첫 곡은 1947년 오늘 태어난 칸초네 가수 질리오라 칭케티의 ‘Non ho l’età(나이도 어린데)’입니다. 1982년 오늘 천국으로 떠난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생상의 피아노협주곡 2번 이어집니다.

  • Non ho l’età – 질리오라 칭케티 [듣기]
  • 생상의 피아노협주곡 2번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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