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환자 위해 방광암 로봇수술 아시아 최초 행진

[대한민국 핫닥터]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의학과 강석호 교수

30세의 전문직업인 A씨가 아내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콩달콩 신혼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A씨는 소변 색깔이 이상해 ‘설마…’하며 정밀검사를 받았다가 방광에 암이 근육층까지 침범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이런 걸까, 함께 눈물 흘리다 이를 악물고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방광암은 수술이 까다로워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고, 자칫 성기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글들…. 아기를 갖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정보도 있었다. 부부는 손을 꽉 잡고 “이겨낼 수 있다”를 되뇌었다.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의학과 강석호 교수(49)는 2015년 가을 진료실을 찾은 A씨 부부를 “로봇수술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방광암 수술은 방광과 함께 골반 주위 림프선을 넓게 잘라내고 남성은 전립선, 여성은 자궁과 질 일부까지 제거한다. 그런 다음 소장의 일부를 잘라 방광역할을 하도록 하는 수술이 뒤따른다. 이처럼 수술 범위가 넓고 복잡해서, 이전의 개복수술 관련 사망률은 4%, 주요 합병증 25%를 포함해서 합병증이 60%일 정도로 ‘위험한 수술’이었다.

강 교수는 고난도의 로봇수술로 A씨의 전립선을 일부만 제거하고 주변 신경혈관다발은 살리면서 림프선을 절제한 다음, ‘소장 방광’을 요로에 연결시켜 정상적으로 소변을 보게 해 A씨의 ‘달콤한 꿈’을 지켜줬다. A씨 부부는 3년 뒤 아들을 안고 진료실에 들어서 강 교수가 기쁨에 벌떡 일어서게 만들었다. 지난 9월에도 아칫걸음을 걷는 아기 손을 잡고 강 교수를 찾아왔다.

강석호 교수는 방광암 로봇수술에서 세계 최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의사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방광암 환자 240여명을 수술했으며 이 가운데 180여 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로봇으로 수술하는 ‘총체내(總體內)요로전환술’로 환자를 살렸다. 신장암, 전립선암 환자까지 합치면 모두 850여 명을 로봇으로 수술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치료했다.

강 교수는 훌륭한 스승과 자신을 믿어준 환자들 덕분에 보다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게 됐다고 감사해 하는 의사다.

그는 인턴을 마치고 공중보건의사 근무 뒤 ‘스타 의사’ 김재중, 이정구, 천준 교수가 포진한 인기과 비뇨기과에 전공의로 지원했다. 스승들의 진료와 수술을 도우면서 자신이 맡은 수술환자는 밤새 지키며 돌봐서 환자들 사이에서 ‘열정적 주치의’로 소문이 났다. 전공의 말년에 비뇨기종양의 명의인 스승 천준 교수의 낙점을 받아서 비뇨기종양을 세부전공으로 삼게 됐다.

그러나 전공의, 전임의 때 모교 병원에선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복강경 수술 도입에 부정적 의견이 지배했다. 원로교수들이 개복수술로 광범위하게 암을 절제하는 것이 중요하고, 부작용은 다음의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학회 갈 때마다 이러다가 조류에 뒤처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서울성모병원 황태곤 교수를 찾아가 복강경 수술을 배워왔지만 환자에게 적용할 수는 없어 속을 태웠다.

그때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던 스승 천준 교수가 대장암 복강경 수술의 세계적 대가인 김선환 교수와 함께 미국에서 길을 찾자고 했다.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의 인튜이티브 서지컬 사로 수술로봇 다빈치를 보러가자는 것이었다. 김선환 교수는 로봇수술의 세계를 둘러본 뒤 “이제 복강경을 넘어 로봇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고, 천준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교수는 귀국해서 병원을 설득, 다빈치를 사들였다.

스승은 제자와 함께 비뇨기암의 로봇수술을 시작했고, 50명을 수술했을 때 스승은 제자를 독립시켰다. 천 교수는 전립선암에 주력하고 신장암, 방광암 환자가 오면 “저보다 더 수술 잘 하는 강 교수에게…”하며 기꺼이 보냈다. 그러나 강 교수가 아직 30대 중후반인데다가 나이보다도 동안(童顔)이어서,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떠나기 일쑤였다. 강 교수는 자신에게 생명을 의탁한 환자와 보호자가 고마워, 최대한 설명을 하고 수술 전날에는 20~30분 가족의 뒷얘기까지 들으며 소통했다. 설명 잘하고 수술 잘하는 의사로 시나브로 소문이 나면서 환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수술기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고민과 노력을 거듭했다. 벨기에의 유럽로봇수술학회 심포지엄에서 시티오브호프 암센터 티모시 윌슨 교수의 ‘방광암 생중계 수술’을 보고 림프선을 물 흐르듯 절제하는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강 교수는 윌슨 교수에게 연락해 수술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고, 귀국 후 스승에게 보고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1주일 동안 병원 인근 모텔에서 기거하며 수술을 참관하고 비디오 3편을 갖고 와서 외우다시피 했다. 비록 방광암 로봇수술의 첫 테이프는 세브란스병원 나군호 교수(현 네이버 헬스케어연구소장)가 끊었지만, 강 교수는 후발주자로서 최초의 행진을 이어갔다.

2007년 말 암이 근육층까지 침범한 65세 방광암 환자에게 광범위하게 림프선을 절제해 재발 위험을 줄이는 ‘확장형 림프선 절제술’에 아시아 최초로 성공했고, 곧이어 61세 남성 환자에게서 로봇수술로 배에 차는 소변주머니 대신 인공방광을 만들어 정상적으로 소변을 보게 하는 데 아시아 최초로 성공했다.

강 교수는 수술법을 계속 발전시켜 2011년 1월 70세 남성 방광암 환자에게 아시아 최초로 ‘총체내요로전환술’에 성공한 뒤 2명을 더 수술했다. 그해 가을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로 연수 가서 1년 동안 이 분야 세계 최고 대가인 인디르 길 교수와 공동 연구했다. 낮에는 수술실을 참관하며 의견을 교환했고 길 교수가 수주한 임상시험을 함께 수행했으며 밤에는 카데바(해부용 시신)와 씨름하며 술기를 단련했다.

이듬해 가을 귀국해 방광암 로봇수술 시 전체 시간을 줄이고 요실금, 성기능장애의 부작용을 줄이는 등 수술기법을 계속 발전시켰다. 특히 여성 환자의 자궁, 난소, 질을 최대한 살렸고 이들 장기를 절제해야만 할 때에도 신경을 최대한 살리도록 했다. 로봇수술에서 여성은 해부학적으로 인공방광을 만들기 힘들지만 인대, 장막 등을 활용해서 인공방광을 지지해 정상적으로 소변을 보게 만드는 기법도 로봇수술 분야에 도입했다.

강 교수의 명성은 해외에도 알려져, 일본, 호주, 동남아 등에서 전문의들이 앞다퉈 가르침을 받으러 온다. 매년 수시로 해외에서 강의나 시연을 했다. 2018년 ‘고려대 로봇심포지엄’에서는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SKCC)의 로봇방광수술 세계적 대가 엘빈 고흐 교수가 강 교수의 로봇방광암수술 시연중계를 보고 찬사를 보내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환자들이 자신의 또 다른 가족이자 스승이라고 믿지만, 전국에서 환자가 오는 바람에 예전처럼 환자에게 길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결린다. 그러나 증세가 심각하거나 큰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는 환자 또는 보호자를 불러서 최대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강 교수는 숱한 환자를 살렸지만, 보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56세 여성 환자의 남편에겐 “수술을 안 받으면 거의 100% 돌아가신다”고 설득해 수술했지만 수술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1년 뒤 폐에 암이 전이돼 2년 뒤엔 세상과 이별해야만 했다. 남편은 나중에 진료실을 방문해 “강 교수에게 수술 받았던 것이 행운”이라며 한참을 울었고, 강 교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강 교수의 환자 가운데에는 91세에 근치적방광절제 로봇수술을 받은 99세 할머니도 있다. 2013년 수술을 받았고, 5년이 지나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매년 안부전화를 걸어온다. 지난 추석에도 딸을 통해서 전화가 왔다. 강 교수는 환자가 전하는 기쁨의 목소리를 들으며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좀 더 나은 치료에 대한 각오를 다진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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