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40조원 저출산 예산, 난임·분만 분야에 더 써야

[김용의 헬스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아이를 안 낳고, 가장 늦게 첫째 아이를 가지는 나라다. 7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지만 임신이 매우 어렵고 출산 과정도 고단하다.

경제상황 등으로 인해 뒤늦게 임신을 시도하는 부부가 늘면서 ‘난임’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힘겹게 임신에 성공해도 출산을 위해 또 다른 장벽을 넘어야 한다. 가까운 지역의 산부인과가 사라져 먼 거리의 대도시 대학병원을 오가야 한다. 인공수정 등으로 인해 쌍둥이 임신이 늘어 건강을 더욱 잘 살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출산이 다가오면 병원 근처에서 상당 기간 ‘하숙’을 해야 한다.

저출산 대책이 국가의 최대 과제인데, 가장 중요한 임신·출산은 과정이 험난하다. 임신을 원하는 난임부부는 경제상황에 난감해 하고,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올해 저출산 대책 예산은 42조9003억 원이나 된다. ‘저출산’ 예산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지만, 난임부부·임신부들은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저출산 예산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프로 스포츠팀 지원’, ‘템플스테이’, ‘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 등 저출산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각종 사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관련 부처들이 막대한 저출산 예산 항목에 슬쩍 키워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저출산 예산 40조 1906억 원 가운데, 난임·보육 지원 등 실제 저출산 대책에 쓰인 예산은 절반(47.3%)도 안 됐다는 보고서(보건복지부)도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투어 ‘홍보’하는 저출산 대책을 보자. 출산지원금, 다자녀·셋째 대학 등록금 무료, 아동수당 확대 등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경제상황·교육 등 여러 이유로 임신을 미루거나, 계획조차 없는 부부에게는 큰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예산은 가장 먼저 임신을 갈망하는 부부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들이 편하게 임신을 계획하고, 실제 임신에 성공하도록 탄탄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임신부의 출산 준비도 배려해야 한다. 일부 지역의 임산부는 “출산 과정이 너무 힘들어 둘째를 계획할 엄두가 안 난다”고 토로한다. 산부인과 병원이 너무 멀고 다니기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는 출산준비에 지칠 수도 있다.

난임부부들은 정부의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인공수정, 시험관)의 난임 지원 ‘횟수제한’과 ‘선정기준’에 힘들어 한다. 전세비·물가 등이 폭등해 생활 자체가 어려운데, 난임 시술 지원 횟수가 끝나면 모든 과정이 비급여(건강보험 미적용)로 진행된다.  난임도 서러운데 돈 없어서 아이를 못 가질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아기 낳기’를 갈망하는 부부에게 저출산 예산이 더 돌아가야 한다. 저출산 대책과 전혀 관계없는 예산만 되돌려도 충분할 것이다.

지역의 분만병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어렵게 임신에 성공한 임신부가 출산 준비 과정에서 좌절해선 안 된다. 쌍둥이 임신이 늘고 있는데 병원 왕복이 ‘천리길’이다.  현행 의료수가를 견디지 못해 산부인과 병원을 접는 의사들이 많다. 지역 산부인과는 병원 운영을 할 수 없는 구조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간호사를 줄였다간 의료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

이미 저출산 타격을 입은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의사도 사라지고 있다. 대학병원도 산부인과 의사 구하기가 힘들다. 40조원이나 되는 저출산 예산에서 산부인과를 일부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출산 신생아수 감소와 연동해 분만 의료수가를 인상하는 ‘분만수가 연동제’도 검토할만 하다. 산부인과 전문의 중에 난임 전담 의사를 늘리고 지원책을 강구하면 저출산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인  산부인과 의사를 늘리는 효과도 있다.

저출산은 한, 두 문제 해결로 해소되기 어렵다. 맞벌이·집값 폭등·교육비 부담 등 여러 경제·사회적 요인이 결부되어 있다. 먼저 저출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분야부터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 난임·분만 분야가 대표적이다. 아기를 낳으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부부들에게 실질적인 지원과 혜택이 더 돌아가야 한다. 임신부가 내 집처럼 편하게 산부인과를 왕복해야 한다. 매년 40조원이 쓰인다는 저출산 예산.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는 여성들을 더욱 배려하는 시도부터 해보자.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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