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99호 (2021-11-22일자)

질문을 던지지 않는 1차원적 인간의 ‘멋진 신세계’

“LSD 100마이크로그램을 근육주사로(LSD, 100µg, intramuscular)!”

1963년 오늘(11월 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후두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영국의 문호는 부인 로라에게 이 메모를 건넸고, 오전 오후 두 번의 환각 주사를 맞고 영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마침 그날 댈러스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리 하비 오스월드에게 암살당했기 때문에 세계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9번 올랐고, 전 해에 영국왕립문학협회로부터 문학훈작사(Companion of Literature)로 추대됐던, 올더스 헉슬리였습니다.

헉슬리는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망막염으로 청맹과니로 지내다 옥스퍼드대 발리올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멋진 신세계》를 비롯한 50여 권의 명저와 숱한 에세이로 인류에 반성의 목소리를 던졌습니다. 그는 한때 모교인 이튼 칼리지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재직하다 열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쫓겨났는데, 이 때 학생 중 한 명이 에릭 아서 블레어, 필명 조지 오웰이었습니다. 오웰은 스승을 내공이 뛰어난 지식인으로 기억했습니다.

호주의 사회비평 만화가 스튜어트 맥밀런이 미국의 미디어학자인 닐 포스트만의 저서 《죽도록 즐기기》의 내용을 요약한 만화는 헉슬리의 목소리를 ‘올바르면서 알기 쉽게’ 보여줍니다.

어떤가요? 갈수록 사람들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시대, 숫자와 남의 평가에 삶의 의미를 거는 시대에 헉슬리의 목소리에 공감이 가는지요?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우려한 대로 ‘도구적 이성’이 삶의 목적을 추구하는 ‘객관적 이성’을 누르고,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예언한 대로 사람들은 급속히 ‘1차원적 인간’으로 바뀌고 있지 않나요?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탄식한 것처럼 현대인들은 문명의 시대에 ‘야만인’으로 살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 고갱이를 살펴보기는커녕, 여줄가리를 넘어 말초(末梢)의 말꼬투리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말초의 뜻이 ‘나뭇가지의 끝’이라는 것, 잘 아시죠?

우리나라에선 공동체의 신념이나 상식에 질문을 던지면 매장당하기 십상이지만, 헉슬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사상가였습니다. 이성의 사고능력에 따라 모든 명제에 질문을 던진 이성주의자였고 답을 찾을 수 없어 회의주의자, 불가지론자였습니다. 확신할 수 없는 신념을 거부하다보니 필연적으로 평화주의자가 됐습니다.

헉슬리는 ‘이성적 사회’를 위해 지식인은 자신이 공부한 것을 ‘올바르면서 알기 쉽게’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올바르면서 알기 쉬운 글이 가장 쓰기 힘들고, 가장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누구나 어떤 궁금증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반대되는 생각에 대해서도 열린 가슴으로 얘기할 수 있을 때 이성의 꽃이 필 것입니다.

남이 알아듣기 쉽게 질문하고, 남의 말에 경청하고, 논리적으로 자기 생각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바탕일 것인데, 우리 교실에서는 그런 능력을 키워주고 있나요? 지난주 대학수능시험의 언어 문제를 보고, 거꾸로 가는 교육에 가슴 아팠습니다. 우리의 자아가 행복을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그런 ‘이성의 사회,’ ‘건전한 사회’는 꿈에 불과한 것일까요?


[오늘의 음악]

1968년 오늘은 끊임없이 스스로와 사회에 질문을 던졌던 록밴드 비틀스가 문제의 역작 ‘The Beatles’를 발표했습니다. ‘White Album’이란 별칭이 붙은 이 앨범에서 우리나라에서 특히 사랑받는 ‘I Will’ 준비했습니다. 이어서 조지 해리슨의 역작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폴 매카트니, 에릭 클랩톤 등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공연실황에서 젊은 연주자는 조지의 아들 다니 해리슨입니다.

  • I Will – 비틀스 [듣기]
  •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 폴 매카트니, 에릭 클랩톤 등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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