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진료 후 약 처방해도 불법 아닌 경우는?

[서상수의 의료&법]⑦전화 처방전 발급의 적법성

“환자가 약을 처방해달라는데 어떻게 하지요?”

의사 A씨는 잠시 병원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오랫동안 지료를 받았던 환자가 약이 떨어졌다며 추가 처방을 요구한 것. A씨는 환자를 바꿔달라고 해서 전화 문진 뒤 종전 처방대로 다시 약을 처방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간호사에게 지시해 자신의 명의로 된 종전 처방전을 처방날짜만 변경된 상태로 그대로 출력하여 환자에게 발급했다. 이러한 행위는 적법할까?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 또는 검시를 하는 지방검찰청검사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하여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떠오르고 있다. 화상 진찰, 전화 진료 등 원격의료의 허용 여부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입법적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여전히 원격의료는 원칙적으로 금지다.

그러나 위 사안은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기계적 행위를 한 것에 불과해 위법한 의료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위 의료법 규정에 따르면 A씨가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라고 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위 의료법 규정은 스스로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진찰을 하지 않았거나 충분한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조항은 아니므로 전화 진찰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자신이 진찰하거나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0.1.9. 선고 2019두50014 판결 등).

따라서 A씨가 환자를 전화통화로 문진하고 처방전을 발급한 것도 A씨가 직접 환자를 진찰하고 처방전을 발급한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은 A씨가 해당 환자를 종전에 대면진찰로 직접 진찰해 환자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실제로 지난해 5월 전화상으로 진료해서 우울증 약을 처방했던 의사 B씨에 대한 무죄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현대의학의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특정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행위가 있어야 진찰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고, 이런 행위가 전화통화만으로 이뤄질 때엔 최소한 그 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0.5.14. 선고 2014도9607 판결).

따라서 만일 A씨가 해당 환자를 한 번도 대면 진찰해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전화 진찰만으로 처방전을 발급했다면 위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 위반하는 행위가 된다. 설령 환자가 강력하게 요청해서 마지못해 전화로 처방전을 발행해도 마찬가지로 불법이다. 환자가 코로나19에 걸렸다고 주장하며 전화 진료와 처방전을 요구해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의료인은 선의에 따랐다가도 법을 어길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원칙적으로 어떠한 비대면 의료도 금지라고 가슴에 담고 조심하는 것이 위법 가능성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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