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걸림돌’은 희생시켜야 할까?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98호 (2021-11-15일자)

아름다운 올가 공주의 슬픈 최후

11살 때의 올가

1895년 오늘은 당시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구세주로 생각했던 러시아 황실에서 경사가 났습니다. 오전 9시 니콜라이 2세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알렉산드라 황비 사이에서 첫 딸이 태어났지요. 황제는 ‘신성한’이란 뜻의 ‘올가’란 이름을 지어주고 기뻐했습니다.

올가 니콜라예브나 로마노프 여대공은 근현대사에서 비명에 떠난 비운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지요.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 작품 읽는 것을 좋아했고 승마, 피아노, 무용 등 다재다능했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어머니, 여동생 타티야나와 함께 간호사로서 병사를 돌봤고 자선활동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라스푸틴이 요승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를 가까이하려는 어머니와 갈등을 빚었다고도 알려져 있지요.

올가는 계몽군주였던 에카테리나 2세를 모델로 삼았으며, 혈우병 보인자였던 막내 알렉세이 황태자가 자신의 하인을 큰 소리로 꾸짖자, “에카테리나 2세는 하인을 꾸짖을 때에도 낮은 목소리로 했어요. 그렇게 해야 해요”라고 차분히 달랬다고 합니다.

올가는 루마니아 왕세자 카를과 혼담이 오갔지만 “나는 러시아인이고, 영원히 러시아에 남을 거여요!”하며 거절했습니다. 영국 데이비드 왕자와도 혼담이 오갔지만 같은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지요. 역사에 가정은 덧없지만, 만약 데이비드와 결혼했다면, 그가 에드워드 8세로 즉위한 뒤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동생인 조지 6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 딸인 엘리자베스 2세의 왕정이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올가(왼쪽)와 동생들.

올가는 아름다운 황녀였지만, 역사의 매서운 바람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자 아버지는 퇴위하고 가족은 혁명군의 감시를 받습니다. 동생들과 함께 볼세비키 군인으로부터 성희롱도 당하고, 거리에선 시민들로부터 야유도 받습니다. 가족은 이듬해 우랄산맥의 중심도시 예카테린부르크의 이파티예프 하우스에 연금을 당해 지내다가 보안 책임자였던 유로프스키에 의해 총살을 당합니다. 유로프스키가 “우랄 노동자 소비에트가 당신 가족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고 말하자, 니콜라이 2세는 “뭐라고 했나? 잘 들리지 않는데…”라는 유언을 남겼고, 올가와 알렉산드라는 성호를 긋다가 총성과 함께 쓰러졌습니다. 올가의 나이 22세였습니다.

다음날에는 올가의 이모 옐리자베타 대공비도 몇몇 황족과 함께 갱도에 갇힌 채 수류탄으로 살해됐습니다. 대공비는 남편과 사별한 뒤 수녀가 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고 봉사하며 살았지만 황족이란 이유로 폭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가와 가족의 시신은 1998년 7월 암매장된 곳에서 발굴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에 안치됐고, 2001년 황실의 여성들은 러시아정교회에 의해 성녀로 시성됐습니다.

덧없이 숨지고 100년이 지나 성인이나 성녀로 시성되면 뜻있는 걸까요? 젊었을 때에는 역사의 흐름에 거슬리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의라고 배웠지만, 요즘은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네요. 올가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지금 속속 루머가 바로잡혀지고 있는,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역사의 흐름 반대편에 서 있었던 죄일까요? 영국 왕자와 결혼했다면 비극적으로 숨지지 않았을 텐데…. 사람은 신념 앞에서는 무한히 잔인해지고 어리석어지는 건가요? 그래도 역사를 위해 누군가 희생시켜야 하나요? 혹시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런 일들을 정의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핫 닥터] 세계 관상동맥질환 지침 바꾸는 명의

 

이 주에 소개할 의사는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구본권 교수(54)입니다. 구 교수는 연세대 의대 출신으로 서울대병원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심장동맥의 혈액 흐름을 파악해내는 분야와 심장동맥에서 가지 친 혈관의 질병 연구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환자를 좀 더 치료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는 철학이 계속 성과를 내고 있지요.

☞구본권 교수의 호기심이 낳은 삶 보기

 


[오늘의 음악]

가수 이동원이 어제 식도암 투병 끝에 삶과 이별했다는 소식입니다. 향년 70세. 그의 아름다운 대표곡 두 곡 준비하면서 고인을 애도합니다. 첫 곡은 테너 박인수와 함께 부른 명곡 ‘향수’입니다. 정지용의 시를 아름답게 표현한 곡이지요? 당시 박인수가 클래식계의 비난을 받고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됐던 것을 돌이켜 보면…. 오늘과 슬프게도 어울리는 ‘이별노래’ 이어집니다.

  • 향수 – 이동원과 박인수 [듣기]
  • 이별노래 – 이동원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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