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유전질환, 맞춤형 RNA 약물로 치료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희귀유전질환 치료를 위해 개인맞춤형 RNA를 활용한 약물치료가 조만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국제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오직 한 명 또는 소수의 환자만을 위해 개발된다는 뜻에서 ‘n of 1’으로 명명된 이 치료법을 무료 제공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개인화된 치료법을 허가해주기 위한 지침을 개발 중이라고 《사이언스》는 전했다.

3년 전 미국 보스턴 소아병원의 신경과 전문의 팀 유는 7세 소녀의 치명적인 뇌질환을 일으키는 독특한 유전자 돌연변이에 맞춘 약을 10개월 만에 개발, 검사, 투여했다는 소식으로 인간유전학회(ASHG)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밀라센으로 알려진 이 소녀의 이야기는 유전자의 결함을 극복하게 해주는 ‘항감각 올리고핵산체(이하 ASO)’라는 RNA의 짧은 가닥을 이용한 개인 맞춤형 치료법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유박사 연구진은 밀라센의 게놈 염기서열을 분석을 통해 소녀가 CLN7이라고 불리는 유전자에 여분의 DNA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유전자로 만들어지는 전령RNA(mRNA)가 단백질 형성 지시를 방해했던 것. 연구진은 RNA에 달라붙는 ASO 합성을 통해 해당 mRNA가 제 역할을 못하게 막음으로써 밀라센의 세포가 제대로 된 단백질을 생성하게 해준 것이다.

올해 10월 온라인으로 열린 ASHG 학회에서 유 박사는 이런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발표를 내놨다. 올해 초 밀라센이 사망했다는 것. 밀라센은 2018년 초 ASO치료제가 척수액에 처음 주입될 당시 이미 눈이 멀었고 혼자 힘으론 걸을 수조차 없었다. 치료제가 투약되면서 발작이 줄고 약간의 근력이 회복되는 효과는 있었지만, 전반적 상태가 나빠진 끝에 결국 숨지고 말았다는 것. 신경퇴행성 질환에 대한 맞춤형 RNA치료는 더욱 이른 시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효과가 적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실망하기엔 이르다. 유 박사는 밀라센의 비극적 소식을 대체할 또 다른 어린 소녀의 희망적 이야기도 들려줬다. 밀라센의 소식이 퍼지면서 유 박사 연구진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 박사는 유전질환을 지닌 사람 중에서 10%에서 15%가량이 밀라센과 유사한 유전적 오류를 지녔기에 맞춤형 ASO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그 중에 2017년 3월에 태어난 이펙 쿠주가 있었다. DNA 복구 유전자의 결함으로 인한 신경퇴행성희귀질환인 모세혈관확장성운동실조증(A-T) 환자였다. 이펙은 2020년 1월부터 맞춤 ASO 척추 주입을 받기 시작했는데 당시 언어 지연과 같은 가벼운 증상만 보였다. 거의 2년이 지난 후 이펙에게는 추가적 증상이 발현되지 않고 있다. 유 박사는 “A-T의 심각한 증상은 5살 무렵부터 발현되기 때문에 성공을 선언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이펙의 아버지 메흐메트 쿠주는 현실적이다. 일반적 A-T환자는 9~10살 무렵부터 휠체어 신세를 져야하는데 이펙이 10대 후반까지 휠체어 신세를 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유 박사는 “이펙과 같은 A-T환자인 어린이 4명을 우연히 만났다”면서 “개별화된 약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우리의 실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비슷한 상황이 근위축성 측색경화증(ALS) 환자였던 제이시 험스태드에게서도 발생했다. 2019년 26살이던 제이시를 치료하기 위해 생명공학 회사인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맞춤형 ASO약도 FDA의 규제를 서둘러 통과했다. 치료가 시작될 무려 상황이 이미 심각했던 제이시는 2020년 5월 결국 숨졌다.

하지만 같은 돌연변이를 가진 다른 10명의 ALS 환자들이 제이시의 이름을 딴 ASO치료제 제이시퓨젠를 투약하게 됐으며 일부는 임상적으로 개선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미국 콜롬비아대의 신경학자 닐 슈나이더 교수가 소개했다.

아이오니스 사는 제이시퓨젠을 테스트하기 위해 올해 4월에 6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위약과 비교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맞춤형 ASO 사용을 다른 환자들로 확대하게 되면 동물실험비용(일반적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줄일 수 있다.

비진행성 유전 질환의 경우에는 맞춤형 ASO 치료제를 조기 투약하지 않아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미국 러시대 의료센터의 신경과교수인 엘리자베스 베리-크라비스는 아동의 지적 장애를 유발하는 엔젤만 증후군에 대한 ASO 치료제 임상시험을 이끌고 있다. 그 약은 UBE3A라고 불리는 유전자의 부계 복제를 차단하는 단백질 생산과 관련한 mRNA에 달라붙어 해당 유전자가 복제될 수 있게 해주는 한편 해당 유전자의 모계 버전의 문제도 보완해준다.

베리-크라비스 교수는 ASHG학회에서 “5명의 참가자 모두가 새로운 단어를 습득하고 잠을 더 잘 자는 등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고 말했다. 어린 아동일수록 효과가 좋았지만 십대들도 혜택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이 임상시험은 1년 전 중단됐다. 주사 부위 염증이 환자에게 일시적인 다리 약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ASO를 척수에 주입함에 따라 발생하는 잠재적 부작용이다. 하지만 아이오니스의 CEO로 재직하다 은퇴한 스탠리 크룩은 ASHG학회에서 미국 밖에서 더 적은 복용량으로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20년 1월, 30명 이하의 환자만 있는 초희귀유전질환에 대한 맞춤형 ASO치료를 가속화하기 위해 엔로렘(n-Lorem)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이런 질환을 지닌 35개 이상의 환자가족들과 함께 내년 초 첫 시술에 착수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몇몇 국가의 학술단체들 또한 맞춤형 ASO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유 박사는 더 많은 N-of-1 ASO 치료가 이뤄지더라도 “너무 빨리 기대치를 높이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펙의 아버지인 메흐메트 쿠주는 “이펙에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가 기다리는지 안다”면서 결과가 불확실하더라도 위험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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